인간이란 내남없이 어떤 중독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시절 최달곤 교수님이 강의한 내용은 기억이 바랬지만 이 말만은 평생 가슴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술이나 도박, 여자에게 중독될 수 있죠. 그건 광범위하게 인간에게 퍼져 있는 것이니까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요. 그런데 권력에 중독되는 건 그렇지 않아요. 특수하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약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질 수 있어요. 여러분은 고시에 합격하더라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 후 나는 살아오면서 권력 중독자를 많이 봤다. 나이 팔십이 되도록 선거 때만 되면 몰래 가서 후보 등록을 하고 가족을 속 썩이는 법대 선배를 보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되어 한 번 권력의 맛을 보면 중독이 되는 것 같았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소녀 시절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미녀 여배우와 사건의 의뢰인 관계로 알게 됐다. 세월이 가고 그녀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걸 봤다. 주역이 아니고 조역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만난 자리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드라마가 끝이 나고 출연진이 동남아에 가서 쫑파티를 하기로 했죠. 주인공이 여왕처럼 떠받들어지는 걸 보니까 인기가 높던 왕년이 떠오르더라구요. 인기도 중독이예요. 거기 빠지면 안되요. 나는 연기가 끝나면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주부로 돌아오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요.”
그녀는 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난 현명한 여성이었다. 인간이란 자각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내남없이 어떤 중독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탐욕도 위선도 중독이다. 남 탓도 다 중독이 아닐까. 다만 중독에도 그 종류와 질이 다양하다. 한단 계 아래의 중독이 술 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같은 게 아닐까. 변호사를 하면서 중독성 관음증 환자도 본 적이 있다. 멀쩡한 택시 기사가 남의 집에 숨어 들어가 몰래 부부의 섹스를 훔쳐보다가 징역을 살았다. 나는 차라리 창녀촌에 가서 해결하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관음증도 중독성이 있어서 창녀촌은 싱거워서 아무런 재미가 없다고 했다.
오늘 내가 중독을 얘기하는 것은 대도의 경우도 도둑질에 중독이 된 게 아닌가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독은 도덕이나 참회의 잣대로만은 재기가 힘든 것 같다.
나의 추론을 확인시켜 준 것은 대도 사건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이따금씩 대도의 행동을 해석해주고 예측까지 해준 나레이터 역할을 한 장물아비였던 남자다. 그는 신비한 인물이었다. 도둑 세계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대도가 일본의 감옥에서 징역을 살고 있던 어느날 장물아비인 그가 불쑥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지나가다가 들렸다면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님은 대도가 왜 일본에서 다시 도둑질을 시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도는 독지가들로부터 받은 성금도 매월 상당액이 됩니다. 경비회사 임원으로 취직을 했으니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죠. 그런데도 왜 다시 도둑질을 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양심에 울리는 보통 사람들은 하라고 해도 도둑질을 하지 못한다. 도둑질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프로의 세계에는 나이가 없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대도는 프로예요. 도둑질 그 자체에서 오는 스릴이라고 할까 짜릿한 쾌감 때문에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빛을 비추어 주어도 돈이 있어도 그걸 하는 거예요. 제가 예를 들어볼까요?”
“해보시죠.”
“제가 젊은 시절 대도와 함께 인사동의 한 여관 이층에 묵은 적이 있어요. 그 방에 예쁜 선풍기가 있었어요. 대도는 그걸 훔치겠다고 했어요. 사실 우리 주머니에는 거액의 현찰이 있었어요. 지폐 몇 장을 주면 당장 살 수 있었지만 대도는 그게 아니었어요. 걸리지 않고 훔치는 그 쾌감을 즐기는 거죠. 대도는 점퍼 안에 그 선풍기를 넣고 창문을 통해 여관을 내려왔죠. 대도에게 도둑질은 그런 쾌락이었습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알려드리죠. 제가 대도와 함께 조선호텔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죠. 대도가 말없이 잠깐 나갔다가 훔친 물건이 든 가방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건 탐욕도 필요도 아닌 제삼의 특질이죠. 지독한 중독이라고 할까.”
“그러면 일본에서 징역을 다 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대도는 그 앞날이 어떨까요?”
나는 그 부분이 궁금했다.
“사람에 따라 도둑질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비참해질 걸로 봅니다. 칠십 정도부터는 좀도둑으로 변할 겁니다. 힘이 없어지니까요. 변호사님은 더 이상 대도를 도와주지 마세요. 도와줘도 이용하려고 하지 참회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그 친구를 저주하는 건 아닙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그 친구를 사랑하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까요. 먼 훗날 그 친구가 진짜 참회한다면 그때 가서 저는 도울 겁니다.”
그 후 다시 세월이 흘렀다. 일본 감옥에서 형기를 마친 대도가 다시 돌아와 생활을 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더이상의 인연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뉴스에 대도가 나오고 있었다. 마포 부근에서 좀도둑질을 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검거됐다는 것이다.
“대도 맞죠?”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고 묻고 있었다.
“아니예요, 저는 그냥 노숙자예요.”
대도가 졈퍼로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를 변성시켜 말하고 있었다. 중독으로 대도의 영혼은 죽은 것일까. 죽음만이 그 중독을 끊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대도 사건에 매달렸을까. 세상은 나를 왜 대도의 분신으로 여기고 조롱하고 돌을 던질까. 어떤 변호사도 그가 맡은 피고인과는 별개다. 그런데 나는 왜 혼이 나고 있을까. 그의 도둑 중독은 내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 책임이다. 세상 무대에서 대도의 배역을 준 것도 그분이다. 단단히 따져 물어보고 싶었다.
도둑 중독-걸리지 않고 훔치는 쾌감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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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8, 08: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