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수 탈북인의 두 번째 수기(手記)/'죽음에서 살려준 은인(恩人)이지만 살아난 다음 그 집의 돈을 다 가지고 사라졌다.'
배부르고 따스한 온돌방에서 문득 북한 생각이 난다. 20세기도 다 저물어가는 1997년 2월15일 오후었다. 김정일 생일 전날이다. 그때는 북한의 전 지역에서 식량배급이 끊겨진 때이다. 북방 추위의 눈보라 속을 뚫고 산에 가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그 안의 얇은 층을 낫으로 긁어 송기떡을 해 먹을 때이다.
가을과 봄철엔 논의 벼 뿌리를 캐어 그것을 가공하어 계떡을 해 먹는 가정들이 부지기수였다. 봄철엔 돋아나는 나물이고 독풀 가림 없이 뜯어다 솥에 데쳐내어 가루를 몇 숟가락 넣어 멀건 죽을 먹는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당의 구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졸라매던 1997년 2월 15일. 하루 한 끼로 견뎌내는 그때 나의 친구이자 직장 부문 당비서는 나에게 한성희 동무 집에 가 보자고 한다. 난 그때 조립반 세포비서였고 한성희는 나의 작업반 성원이었다. 김정일 생일 전날이라 바쁜 일정 속이지만 한성희 집을 가정 방문하였다.
부모들은 굶어서 한 달 건너 연이어 몇 달 전에 돌아가셨고 한성희 3형제만 남아있었다. 그때 한성희는 24세이고 여동생하고 11살 되는 남동생이 있었다. 아래 두 동생 아이들 이름은 생각 안 난다. 집이라야 고등 중학교 창고를 빌려 온돌을 놓고 부엌엔 가마 두 개를 걸 수 있게 개조한 것이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기가 차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북방인 청진의 겨울 날씨는 한국에서 제일 춥다고 하는 겨울 날씨는 보통 날씨이다. 며칠 전 눈 내린 뒤라 바깥 날씨는 눈 기운이 있어 쌀쌀하였다. 한성희네 집은 음지라 오후이건만 햇빛은 볼 수도 없고 어두침침하였다. 창문도 없는 집이기에 더욱 어두침침하다.
한성희 세 형제는 요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덥고 누워있었다. 부엌에 있어야 할 가마(솥)는 시장에 나가 팔았는지 그 자리에 어디서 주워왔는지 철판을 덮어놓았다. 우리가 들어서자 한성희는 직장 부문당비서와 작업반 비서가 왔다고 간신히 일어나 앉았었고 두 동생은 눈도 뜨지 못한다.
그들이 누워있는 아랫목 벽체만 내놓고 나머지 3면 벽체와 이불을 깔지 않은 곳에는 하얀 성에가 5cm 정도는 되게 끼었다. 그 찬 기운의 성에가 조금씩 조금씩 그들에게 침범하여 가고 있었다. 한성희는 그저 이렇게 삼 형제가 죽으려고 한다고 울면서 말한다. 나는 가슴속에서 울컥 하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고 집안과 한성희 형제들을 한참이나 보았다. 부문당비서도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도 겨우 굶지 않을 정도로 밥을 먹는 정도었다.
우리는 그래도 조금 움직여서 동생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위로하는 그 이상 더 할 말도 없고 해서 그의 집을 나왔다. 부문당비서와 헤어져 집에 온 나는 아내에게 방금 본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런데 반응은 더 놀라웠다. 그 형제들을 빨리 가서 집으로 데려오라는 것이다. 우리도 애가 두 명이다. 진희는 4살. 신혁은 돌 지난 지 한 달 된 애기들이 있는데~~괜찮겠느냐고 하니 그건 둘째 문제고 우선 죽어가는 그들을 알고서야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나면서 빨리 데려오라며 가마(솥)에 물을 다 채우는 것이었다. 그들이 오면 목욕부터 시켜야 한다면서~~
나는 친구인 부문당비서집에 가서 방금 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그와 함께 다시 한성희 집으로 갔다. 아무 것도 없지만 집 문짝이라도 뜯어갈까 삼형제 집에 열쇠를 잠그고 그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막내는 얼마나 먹지 못 하였으면 다리가 새 다리처럼 약해져 걷지도 못하기에 내가 업고 왔다. 11살 되는 남자 애건만 네 살짜리 나의 딸보다 더 가벼운 듯하었다.
부문당비서는 "진희 엄마 정말 고맙소" 하며 이때까지 없던 인사를 해서 웃었다. 더운 물을 통에 하나 가득 채워 가지고 위생실(북에선 화장실을 위생실이라고 한다)에 넣고 한성희와 여동생 보고 들어가 씻고 나오라고 하었다. 아내는 자신의 속옷들을 한성희와 여동생에게 꺼내 주었다. 그 다음 막내 남자 동생도 목욕시켰다. 막내 속옷은 없어 아내의 옷으로 입혔다.
그리고 그들에게 먼저 쌀죽을 쑤어 먹였다. 몇 달 만에 따스한 집과 쌀죽, 그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진희와 신혁이는 남모를 사람들을 보니 신기한 듯. 또 밥도 아닌 죽그릇도 넘 신기한 듯한다. 그리고 죽을 먹고 파하던 딸애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한성희 형제에게 처음부터 기름기 있는 것을 먹으면 설사하기에 차츰차츰 몸에 온기가 있을 때 밥도 먹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아내는 한성희보다 두 살이나 아래로 22살이었다.
아파트 단칸방에서 우린 하루를 보냈다. 사람은 집이 작아 못 사는 게 아니라 마음이 작아 못 산다. 근데 다음날 우린 온 몸이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몇 달을 씻지도 않은 그들 몸에 있는 재산이란 이(蝨)와 서케였다. 그들의 재산들이 우리에게로 밤새 돌진하였던 것이다.
안해는 삼 일 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그들의 머리에서 이와 서케를 잡아냈다. 머리칼은 검은 머리칼인지 흰 머리칼인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이와 서케가 끼었다. 옷은 갈아입혀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머리엔 이·서케가 바글바글, 끔찍한 것이다. 안해는 얼마나 놀랐을까? 매일 목욕하다시피 하고 옷도 거의 사흘을 갈아입히니 그 많던 이들도 없어졌다.
이 소문은 갑자기 동, 기업소에 쫙 퍼졌다. 어린 부부가 삼 형제를 집에 데려다 살렸고 키운다고. 사실은 건강을 회복시켜 내보내려 하였는데.도움의 손길이 쏟아져 들어 온다. 그 덕에 죽은 잠시. 이밥에 돼지고기까지 정신없이 먹을 수 있었다. 사실 우리도 겨우 연명하고 있던 차로 내일은 어떻게 되든 돼지고기 국을 정신없이 먹었다.
이렇게 회복을 시켜가는데 우린 밥상에서, 그들은 방바닥에 먹게 한 것이 걸렸었다. 남들이 혹 집에 들어왔을 때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 하랴~ 말로는 데려왔지 자기들만 밥상에서 먹고 데려 온 애들은 방바닥에서~~
그 후부터 우리는 바닥에서, 한성희네 삼 형제는 밥상에서 먹게 하었다. 한성희 형제가 회복된 열흘 후부터 나가 장사하라고 꽈배기를 팔게 하였다. 본전만 잃지 말고 나머지 이윤은 너희가 가지라고.
꽈배기 만드는 집 가서 그것을 새벽마다 나는 자전거로 날라왔다. 오후 늦은 시간에 아내와 함께 어떻게 잘 팔고 있는지 시장에 나가 보기도 하였다. 하루하루가 모르게 삼형제 얼굴엔 뽀얗게 되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정말이지 한 가정도 힘든데 3명이 더 불어나 식구는 7명 되었다.
각자 소 부대로 다녀야 할 시점에 우린 대 부대가 되었다. 힘들었지만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희망과 그들 모두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했다는 그 기쁨으로 힘든 줄도 몰랐고 웃음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런데 4개월 후 그 삼형제는 간다 온다 연락도 없이 집의 돈을 다 가지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돈으로 어디 가서 굶지 않고 장사를 잘 해 잘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덮었다. 그때 아내에게 정말 미안해 어쩔 바를 몰라했던 내가 떠오른다.
2018.7.19일 8.10분 주님 함께 계시는 집에서 찬송가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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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기를 전하는 필자의 후기 댓글
죽음에서 살려준 은인이지만 살아난 다음 은인의 집의 돈을 다 가지고 사라졌다. 이것을 이해하기가 북한 사람이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심양에서 공안(경찰)출신 조선족은 말한다. 중국에까지 밀려와서 떠도는 탈북자들이 너무 불쌍하여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들여다 숙식시켰다. 같은 동족이기에 더욱 동정심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나의 집안에 쓸 만한 것들을 다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짐승만도 못한 탈북자라며 다 잡아 북송해야 한다고 치를 떤다. 북한과 비슷한 중국에 있는 동족도 인간성 파괴가 뭔지 모르는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나를 바난하는 탈북자가 있다. 15년 전 중국 베트남 등지 사경에서 도와 달라고 한 탈북 청년이다. 그를 돕기 위해 바쁜 속에서도 15일간 중국, 러시아 현지에 갔었다. 물론 무상으로 도운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기를 마르타(실험용 쥐)로 사용했다고 비방한다.
마르타라면 자기가 아니라 내가 마르타이다. 그것은 내가 먼저 탈북하여 넘어온 길로 그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15년 지나도 감사는커녕 뒤통수를 치는 그를 나는 이해를 한다. 김 부자 3대 세습이 저렇게 인성을 파괴한 세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
김 父子 3대가 만든 인성(人性)이 파괴된 세상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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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8, 1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