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초기

떨어져 생활하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가정도 안정되고 좋을 것 같았다. 결혼 생활은 부모님 떠나 둘이 분가하여 살면 장가가고 시집간 것이고,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는 것은 처가살이다. 집사람은 자기 집을 떠나 우리 집으로 시집왔으니 분명히 시집을 온 거고 시어른과 함께 살았으니 시집살이라는 말이 맞다.

가끔 어머니와 집사람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좀 아부도 떨고 어머니에겐 어머니 말씀 옳아요, 집사람에게 가서는 당신 이야기가 다 맞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나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심판 보고 재판을 하다 보니 두 사람에게 모두 점수를 딸 수 없었다. 그때 좀 지혜롭게 처신할 걸…

집사람이 낯선 곳에 와서 친구도 없고 집에 있으면 무료할 것 같아 집사람을 위하여 예식장 하던 150평 되는 장소에 미술학원을 열었다. 서울 강남의 미술 교사가 와서 학원을 한다니 학부모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통학버스도 운행했다. 원생들은 노랑 유니폼에 모자도 쓰고, 가방도 예쁜 걸 들게 하니 모두 귀여운 병아리 같았다.

또 입시생들을 위한 실기 교육도 하였다. 가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무료로 하였고, 지역 복지 센테에 가서 미술 봉사도 하고 그렇게 7년을 하였다. 남자 직원을 채용하였는데 그 직원의 잘못된 행동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공부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장성하여 좋은 대학 교수도 하고, 모두들 좋은 결과를 얻었고 지금도 고맙다고 스승의 날에는 모두 모여서 찾아준다. 그것이 큰 보람이다.

나는 테니스 구단을 창단하여 일을 마치면 테니스장으로 갔다. 지역에서는 우리가 초창기다. 시청으로부터 부지를 무상 임대받아 전용 구장도 가지고 당시 전국적으로 드물게 야간 경기를 할 수 있는 조명 시설까지 가진 구장이다. 이곳저곳 원정 경기도 다녔다.

테니스를 하다 보면 조를 짜서 내기를 하고 끝나면 저녁을 먹는다. 다음 순서는 고스톱이다. 당시 3명만 모였다 하면 고스톱을 친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얼마나 고스톱 열풍이 불었나 하면 초상집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밤이 새도록 한다. 남자들은 부인에게 거짓말로 이때 친구 삼촌 친구 아버지 많이 돌아가시게 했다. 어떨 땐 같은 친구 삼촌을 두 번씩 우려먹다가 마눌하고 다투기 일쑤였고 초상집 부조를 빌려서 몽땅 잃고 상주와 다투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생겨서 그런지 초상집에 화투는 일절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고, 밤새워 포커와 고스톱을 했다. 1년 넘게 하다 오면 담배 냄새가 옷에 배지 않았겠는가?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고도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때가 결혼 초기라 집사람이 느꼈을 기다림의 고통을 평생 두고 회개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멋으로 담배도 피웠고 술도 마셨다. 그 후 고스톱이나 포커는 구경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술도 담배도 절대 하지 않는다.

나는 골프를 일찍 시작했다. 동네 선배 때문이다. 이 선배는 탁구, 당구, 테니스, 공이라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당시에는 골프 연습장이 없던 때라 선배는 자기 집에 가마니를 쳐놓고 거기다가 드라이브 연습을 하고 나를 데리고 그 더운 여름 감천 냇가 모래밭에서 연습하고 했다. 이 선배가 지금 골프에 죽고, 골프에 사는 한국 아마츄어 골프계의 대부 L 회장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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