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의 전리품(戰利品)이란 오명(汚名)을 벗어나려면 1980년 언론통폐합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공영방송 KBS와 MBC의 경영권 장악을 둘러싸고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MBC에 대한 쟁탈전이 심각하다. MBC의 대주주(70%)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야당은 지금까지 누려 온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9명이다. 1988년 제정된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라 이사 9명과 감사 1명을 선임하고 MBC에 대한 관리감독과 대표이사 등 임원 선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사와 감사 선임은 관례에 따라 집권여당이 6명, 야당이 3명을 선임해 왔다.
MBC는 외형은 공영방송이지만 경영 형태는 상법(商法)의 적용을 받는 '주식회사 문화방송'이다. '주식회사 문화방송'은 지역 계열사의 임원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MBC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는 독립된 공익재단이지만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MBC 영업이익의 100분 15를 해마다 출연받아 방송문화 창달과 복지분야 등 공익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MBC는 방송광고공사가 관리하는 광고수입의 6% 범위 내에서 방송발전 기금을 부담하고 있다. 실제는 4.6%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문화진흥회'는 전리품(戰利品)이나 다름없다. 집권당이 다수의 이사(理事)를 확보한다. MBC는 가련한 존재다. '방문진'에 영업 이익의 15%를 출연하면서도 방송광고공사에도 특정지분의 수익금을 바쳐야하는 신세의 공영방송이다.
MBC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1988년 이후 집권세력에 따라 잘 나눠먹던 MBC에 대해 거대야당과 좌파성향 시민단체, 좌성향 교수단체, 기자, PD, 노조 등 직능단체들이 욕심을 부리고 나선 것이다. 현행 11명인 KBS의 이사 수와 9명인 '방송문화진흥회(MBC)'의 이사 수를 21명으로 확대 구성하자고 나섰다. 그들에게 절대 유리한 방안이다. 이런 음모를 담아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그래서 3명의 방송통신위원장(직무대행 포함) 탄핵을 무기삼아 입법독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여 다시 국회로 돌아갔지만 공영방송 KBS, MBC를 애완견으로 키우려는 민주당의 거대한 공영방송 장악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슬픈 운명의 공영방송 MBC의 역사를 살펴보자. MBC의 발상지(發祥地)는 부산이다. 1959년 4월15일 부산시 중구 중앙동 4가에 자리잡은 '부산문화방송 주식회사'가 호출부호 HLKU 1161 킬로헬스의 전파를 발사한 것이다.
창사이념(創社理念)은 '어린이에게 꿈을! 청년에게 이상(理想)을 가가호호에 위안(慰安)'이다.
초대사장 김상용은 대한해협을 넘어오는 일본 방송전파를 막고 우리의 고유한 민족문화를 지키고자 큰 꿈을 품고 일어선 것이다. 김상용은 캬바레업과 장의업(葬儀業)으로 모은 재산을 방송사 설립에 투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9년 9월 창사 5개월 만에 경영난에 봉착했다.
김지태가 부산문화방송의 경영권 65.5%를 인수하여 다음해 4월 회장직에 취임했다. 부산문화방송은 3·15와 4·19를 거치면서 시위현장을 생중계하는 방송언론으로서의 위력을 크게 발휘했다. 부산 하나만으로 경영난을 해결하기 어렵게 되자 부산문화방송은 서울지역에도 민간 상업방송을 소유하여 부산과 서울을 연결하면 경영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서울 진출을 시도 했다.
당시 서울에는 부산문화방송 초대사장 김상용이 '서울문화방송'의 허가권을 받아놓고 있었고, 화가 고희동이 '서울민간방송'을 장면 정부로부터 허가받았다. 그러나 김상용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 혁명정부에 의해 허가가 취소됐다. 고희동도 허가는 받았으나 시설비 등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이때 김지태가 고희동으로부터 '서울 민간방송' 허가권을 인수하여 '한국방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김상용의 '서울문화방송'이 허가 취소되자 '한국문화방송'으로 사명(社名)을 바꿨다. 1961년 12월2일, 인사동에서 첫 전파를 발사하였으니 오늘의 MBC가 서울에서 터를 잡게 되었다.
당시 경영진은 고희동이 회장, 김지태가 사장, 김종한이 사장 직무대행이었다. 인사동에서 정동으로 이사했다. 1969년 8월8일 TV가 개국됐고 1980년 5공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제휴사의 주식 51%를 인수하여 21개 제휴사를 계열사로 확보했다. 지역 MBC의 경우 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던 10% 지분을 KBS에 출연하도록 했다가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제정되어 MBC 주식 70%를 가진 대주주가 되고 정수장학회가 30%를 소유하게 되었다.
MBC는 한때 경향신문도 인수 '문화방송·경향신문'이 되었다. 경향신문과 분리되면서 서울 정동사옥을 경향신문에 넘겨주고 여의도 신사옥을 거쳐 상암동으로 이전하였다. MBC는 이런 과정을 거쳐 전국지상파TV, 라디오(AM.FM), 2000년 iMBC, 2001sus, 2005sus, 지상파 DMB 등 MBCPLUS, MBCsport 등 세계적인 방송그룹으로 대약진을 한 것이다.
MBC가 빛나는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정쟁(政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울 뿐이다. 권력의 애완견으로 놀아나는 기형적 공영방송 MBC가 1980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필자의 희망 사항이다.
'기형적 공영방송' MBC의 역사(歷史)
- 문무대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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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3, 19: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