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이 줄었기로서니 비혼(非婚) 출산 조장이라니

무조건의 출산 장려는 무조건의 야만화이다. 지금이라고 서양 오랑캐(洋夷)가 없겠나. 서양 물질문명이 우리보다 앞서 발달하다 보니 우리도 그와 같이 발전하려고 열심히 따라 했다. 그 부작용인지 부지불식간에 서양 것이라면 쪽을 못 쓰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서양인이 하는 것은 죄다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이다. 어제(8.30) 조선일보 ‘만물상’ 제목은 '비혼 출생'이다. 프랑스가 비혼 출생을 묵인한 결과인지 출산율이 다소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선지 ‘만물상’은 우리도 그걸 따라 하자는 듯이 말했다. 이쯤 되면 서양 오랑캐의 행실을 배우자고 나선 것이 아니라 할 수 없겠다.

비혼 출생이 뭔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낳은 아이이다. 아이는 낳았지만 결혼한 사이가 아니니 수틀리면 각각 돌아서면 그만이다.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되며 그 아이의 장래는 또 어떻게 되겠나. 프랑스는 우리보다 그런 방면의 복지가 좋아서 우리처럼 고아의 서러움을 모르고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다만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을 바라고 우리도 비혼 출생을 장려하자 하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인구 수입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이전에는 ‘고아원’이라 이름했지만 지금은 고아원이란 이름이 없어졌다. 그만큼 고아의 서러움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부모가 이혼했다고 해서 그런 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상적으로 들어간 아이도 18살이 되면 나와야 한다. 거기를 나오면 갈 데가 없어서 미리 고민하고 방황하던 아이들에 관한 보도가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짓게 했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다. 신문이 그렇게 보도하여 슬프게 해놓고서 이제와서 그런 점은 내몰라라 비혼 출생을 장려하듯 말해서야 되겠는가.

이전에는 자식이 부부의 끈이라 했다. 부모가 이혼할 일이 있어도 자식을 위해서 서로서로 참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아이 낳고 사는 사람의 바른 자세 아니겠는가. 비혼 동거는 남녀가 싶게 만나서 쉽게 헤어짐을 위한 것일 수 있다. 남녀 당사자들의 행복만 고려한 것이지 출산까지 따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비혼 관계에선 출산을 안 하는 게 또 다른 생명을 불행하지 않게 하는 것일 터이다. 손바닥 뒤집듯 쉽사리 헤어져 버리면 그 사이에서 난 아이는 어쩐단 말인가. 이때 말할 수 있는 것은 “‘비혼 출생’은 아이의 행복 따위는 논외로 친 것이다”가 될 것이다. 이럴진대 ‘비혼 출생’ 장려라니.

신문은 프랑스 대통령의 비혼 출생을 예로 들었는데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일반인의 비혼 출생을 논하면서 대통령을 예로 들 수가 있나? 일반인의 비혼 출생 성공을 예로 들려면 일반인이 비혼 출생에서 성공한 것을 예로 삼아야 한다. 프랑스 대통령은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한 부분에 불과한 비혼 출생 성공을 예로 든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 하겠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성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장성하게 되면 의외의 다른 문제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톨레랑스 사회다. 반면에 우리 사회는 ‘분노 사회’이다. 아래는 어제 (8.30)중앙일보의 한 기사 구절이다〈‘분노 사회’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 사회에 타인에 대한 관용이 부족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양창순(양창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사회가 ‘감정’을 가르치지 않았고, 당연히 감정을 다스리는 법도 안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단 ‘분노’라는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저런 나라는 핏줄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혈연을 우선한다. 저런 나라는 우리나라의 고아를 입양하고 공부도 시켜준다. 우리도 그러는가? 우리도 그런다면 왜 우리가 '고아 수출국'이란 부끄러운 소리를 듣겠나. 그리고 우리에게 복지 개념이 없을 때에도 그들은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반면에 우리는 거주하는 아파트를 두고도 아이들끼리 계층이 생겼고, 엄마들은 자기 아파트에 타인이 못 들어오게 학생이 등교하는 길도 막았다는 보도가 수시로 나온다. 이런 사회적 여러 여건은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서양도 가까스로 시작한 비혼 출산을 무턱대고 따라 하면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겠는가?

여기서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차면 쏟아진다(物極必反 器滿則傾)는 말이 떠오른다. 서양 물질문명이 극에 달하다 보니 원시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된 것이다. 원시사회는 모계사회였다. 아버지는 누구든 관계없이 엄마가 낳기만 하면 됐다. 지금의 '비혼 출생'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다 약속하며 친지와 지인의 축복 속에서 결혼했으면서도 헤어진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황차 ‘비혼’이겠는가? 부모가 이혼하면 자식들이 상처 받는다.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의 비혼 출생을 예로 든 것은 무책임하다. 성혼한 부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무조건의 출산 장려는 무조건의 야만화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함이라지만 ‘비혼 출산’ 조장은 지나치다. 출산율이 줄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있다. 사회의 목탁이란 신문이 여론을 선도하지 않고 도리어 막된 풍조를 따라하는 것에 분노가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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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丁 2024-08-31 오후 8:37

    적극 공감합니다. 이런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읽고 나는 욕부터 내뱉었는데 무학산님이 절제된 문장으로 조리있게 반박해주셨습니다. 길거리 개처럼 아무하고나 흘레 붙어서라도 새끼 낳아 인구 늘리자고 장려하는건가. 낳아놓고 팽개쳐 버리면 나라에서 책임지고 키워주자는 말인가. 결국 또 해외수출 할 거 아닌가. 이런 걸 인구 감소 대책이라고 내세우다니, 조선도 맛이 갔다. 일개 재야 논객만도 못한 신문이 됐다.“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옛날, 극장에서 영화 본편 상영 전 보여주던 대한 뉴스에 나오던 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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