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에서 장기표 선생의 이름은 차마 지울 수가 없다.
지인이나 친구의 부음(訃音)을 받으면 조문하는 일과 함께 또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집에 돌아와서 망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나의 휴대폰에서 삭제하는 일이다. 지울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고 지우고 싶지 않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는 말씀대로 삭제하고 만다. 망인(亡人)의 빈소 앞에서가 아니라 내 방에서 서로의 인연이 다 하였음을 확인하는 셈이다.
신문에 속보로 뜬 장기표 선생의 부음 소식을 읽었다. 나는 정신없이 섰다 앉았다 하는데 내자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울먹였다. 기어이 가시고 말았으니 이제 무슨 말을 더하리오. 다만 “누구만 못해서 여기에서 그치고 말았을까”란 말만을 되풀이하고 서 있었다. 지금도 그 말을 되뇌고 어느덧 입에 버릇이 되어 오늘도 중얼중얼했다. “그 재주로써 어찌 여기서 그치고 만단 말인가.” “어찌 여기서 그치고 만단 말인가.”
그 와중에 상주들이 어디든 통지할 정신이 어찌 있겠는가. 그래서이겠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사회장으로 한다는 연락을 ‘문자’로 보냈는데 나같은 범부(凡夫)에게도 빠트리지 않고 연락해 주는 고마운 마음에서 역시 장기표 선생이 몸담을 만한 조직이구나 싶었다.
내가 선생에게 배운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냐마는 한 가지는 평생토록 실천하고 또 한 가지는 평생토록 기억한다. 하나는 장기표 씨 본인이 개발한 운동법이라며 가르쳐 준 것인데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바로 발딱 일어나지 말고 손과 팔을 잠시 흔들어 주고 발과 다리도 흔들고 나서 굽혔다가 펴보고 한 뒤에 천천히 일어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저 말씀을 들은 날 이후부터 아침마다 그렇게 했다. 지금까지는 무심코 실천했지만 부음을 들은 날 이후부터는 선생을 생각하면서 실천한다. 나머지 하나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든가 뭐든가(여러 죄목으로 여러 징역을 살았으니 무슨 죄명인지 잊었음) 하여튼 그가 민주화운동으로 징역을 살고 있을 때 나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 “사람 사는 것. 그것 별것 아니다.”
그는 입이 무거워서 백 근에서 한 근도 모자라지 않았다. 긴 도피생활 끝에 붙잡혔고 형을 선고받아 징역을 살았다. 그때에 그에게 “그동안 어디에서 은신해 있었습니까?” 내가 물었는데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부산 태종대에 있는 절이었음을 말했다. 그 절집 주지(住持)의 고마움을 못 잊어 해마다 수국이 필 무렵 그 절에서 행사를 할 때 반드시 참석해서 축하문을 쓰곤 하였다.
내가 이제야 장기표 선생 추모사를 쓰는 이유는 다른 분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비록 글을 잘 짓지는 못하지만 나도 추모사를 아니 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더라도 유명인사들의 추모사에 앞서서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많은 분이 추모사를 앞다투어 쓰는데 나 같이 하찮은 사람이 거기에 같이 하면 꼴이 우습지 않겠는가. 다른 한편으론 계구우후(鷄口牛後)의 가르침도 있으니까 조용해지면 쓰려고 작정했었다. 마침 최보식 기자도 이렇게 썼다.
“장기표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자 갑자기 '장기표 칭송' 비슷한 게 일어났다. 우리 시대의 양심, 우리 시대의 영웅, 우리 시대의 정의…, 어떤 측면에서 충분히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렬하게 그를 칭송하는 이들은 왜 장기표가 살아있을 때, 그가 현실 정치에서 거듭 실패할 때나 말년에 특권폐지 정당을 할 때는 관심이 없거나 손을 내밀거나 지지하지 않았을까.”
내 마음이 저와 같았으니 눈에 뜨이는 추모사는 모조리 읽었고 찾아서도 읽었다. 물론 조갑제 선생의 “내 취재수첩 속의 장기표”도 읽고, “진짜 민주투사 張琪杓 선생 별세!”도 읽었다. 조갑제 선생의 추모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필력강정(筆力扛鼎)하고, 야정(野情)하기가 당대에 짝할 문장 없음이 확실하다. 이런 문장가도 장기표를 마음에 사복(思服)하니 저런 명문(名文)이 속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장기표. 그는 유독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졌던 사람이다. 내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분이 계실 땐 그래도 든든하던데 이젠 마음부터가 쓸쓸하다” 그분이 사람을 어떻게 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어쩌면 그분이 너무나 인간적인 탓에 때로는 모질어야 되는 정치가로 성공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만약 그분이 국회의원을 하고, 장관을 하고, 대통령을 했다면, 그의 선심(善心)과 재능이 어찌 나라 안에서만 쓰였겠는가. 그는 “사람이 자기의 착한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삼독(三毒) 때문이다”고 자주 말해 주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임종정념(臨終正念)하였을 것이다.
지인이나 친구들, 동창생이 사망하여 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내 휴대폰에서 삭제된 게 많지만, 장기표 선생의 이름은 차마 지울 수가 없다 언제까지나 지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그때 지워질 것이다
"사람 사는 것 그것 별것 아니다"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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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30, 08:41












이중건 님. 저도 감사 드립니다
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도 그렇게 장기표 전번을 지우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