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든 '장마당' 세대, 한류를 접한 세대를 통제할 수 있을까.
북한 사람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처음 해외에 대규모(1만5790명) 나간 것이 1972년 소련 벌목공이었다. 내가 일했던 직장에서도 벌목공으로 갔다 온 선배가 있었다. 그 밑천으로 구입한 사진기로 결혼식과 아이 돌 생일 때 부 수입이 좋았다. 선망의 물건인 소련제 tv, 전축(레코드 라디오)도 있어 부자 반열에 들었었다.
초기 벌목공 파견인들은 성분이 나쁜 이들을 아오지 탄광에 보내듯 보냈지만 상황이 금방 뒤바뀌었다. 뇌물을 고이고 벌목공에 가려는 추세로 변화되었다. 그만큼 북한보다는 훨씬 부자가 되는 길이었다.
한편 1977년 외화벌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분위기에서 수천 명 단위로 리비아 건설자로 파견되었다. 직장 선배가 리비아에 갔다 왔기에 잘 아는 실례이다. 리비아는 소련 벌목공보다 수입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모집은 철저히 당원들로서 성분이 좋은 자들로 구성되었다.
세계에서 라디오 인터넷을 불허하는 유일 폐쇄 북한임에도 이러한 대규모 해외 파견은 남한에서 받은 자극이 컸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한 밑천으로 '한강의 기적'을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번 러시아 파병 역시 남한의 베트남 파병을 본뜬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해외 파견 근로자는 통제가 가능한 조건에서 대규모 보냈다. 소련의 시베리아 밀림 속, 리비아 사막 속에서 외국이지만 외국인과 별로 접촉되지 않는 조건이었다.이런 조건에서 북한의 생활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놓고 통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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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실례로 해외 파견은 내가 있던 농업과학원에서 경험한다. 1977년부터 아프리카 기니와 탄자니아에 김일성 농업 연구소를 차리고 <주체 농법>을 전수한다는 차원에서였다. 여기에 파견되었던 선배 연구원의 말들 중에서 특이한 것을 기억한다. 해외 이동 과정 거리 관광을 하게 될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5명 일행인데 2명이 관광하면 3명이 엇바꾸어 감시했다고 한다.
한편 북한 내에서 무기 단속은 남한보다도 매우 철저하다. 사격한 후 탄피 하나가 분실되어도 비상이 걸려 그것을 찾을 때까지 기합을 받듯 수색을 해야 한다. 이렇게 무기가 분실된 지역은 김 부자가 지나갈 수 없는 곳으로 지정된다고 하였다.
이런 북한에서 1만 명 이상의 군대를 해외에 파견했다고 한다. 전장은 시베리아 밀림과 리비아 사막같이 통제할 장소는 아닌 것이다. 거기다가 무기를 든 방어, 공격적인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쉽다. 또 군인들은 수령의 나라 혜택이 아니라 '장마당'에서 자란 세대들이다. 또 한류를 접한 세대들이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러시아만 나와봐도 눈이 뒤집히게 발전되고 풍요로운 모습에 놀란다. 1992년 6월 탈북 노정인 우스리스크 역전에서 북한 벌공공들과 조우한 적이 있다. 소련이 방금 붕괴되어 아주 망했다는 소리만 듣고 나온 벌목공들다. 그런데 정작 역전 근방의 매대들을 둘러보고 그들이 그런다. "야! 다 망했다고 그러더니 뭐 이렇게 잘 사냐" 붕괴된 소련이지만 북한보다는 훨씬 풍요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33년 지난 오늘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된 인민군 군인들을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많은 탈영 군인들이 생겨날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아도 북한보다 훨씬 풍요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보고 깨닫는 자들이 될 것이다.
김정은의 러시아 파병 도박이 과연 성공할까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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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1, 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