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대신 '아파트'를 택한 성자(聖者)

환난(患難)이 다가올 때 두 팔을 벌릴 수 있을까. <손에 쥔 사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

신학대학교 총장인 그는 성자같이 보였다. 조금 과장한다면 그 속에 예수가 들어있는 사람 같다고 할까.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고 그래서 대학도 신학과를 갔다고 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국내 명문대학에서 평생 신학교수 생활을 했다. 목사이기도 한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다니던 전통 있는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기도와 공부로 일생을 학같이 조용하게 살아온 분이었다.

신학대학에서 그를 총장으로 모셔갔다. 총장을 맡은 그가 학교를 바로잡아 가려고 하자 갑자기 교내 분위기가 시끄러워졌다. 부정의 가르텔로 구성되어 있는 기존의 기득권층에서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그동안은 학교의 박물관용으로 물건을 하나 사도 공사를 해도 거기서 생기는 이권을 나누어 먹는 존재들이 있었다. 밥그릇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조직적인 힘은 강했다.

그들은 터무니 없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학생들을 선동했다. 그들은 망신주기 수법으로 총장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는 것 같았다. 교문 앞에 시위학생을 배치해 총장이 학교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총장실의 문을 납땜으로 봉쇄해 버리기도 했다. 총장이 학교에 들어오면 몇몇 학생들이 총장을 들어서 교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가짜뉴스에 세뇌된 학생회 간부들과 이권으로 연결된 동창회 간부들의 모략과 비난에 그의 멘털이 조금씩 붕괴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굴욕감을 견디면서 잘 견뎌내는 것 같았다.

망신주기가 통하지 않자 상대방의 허위고소 작전이 전개됐다. 검찰청에서 소환장이 왔다. 일단 고소를 당한 이상은 검찰청에 가서 진술을 해야 했다. 그는 검사실 서기 앞의 접이식 철의자에 앉아 잡범처럼 조사를 받았다. 마침내 그의 내면에서 피가 흐르고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원로 교수로 존경받던 그였다. 수많은 신도들에겐 우상같이 섬김을 받던 목사였다. 그는 평생 그를 받들어 주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강한 고난이 온 것이다. 그는 가지고 있던 명예와 업적들이 모두 없어지는 상실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악마의 압박들은 더욱 강하게 왔다. 악마들은 심지어 그에게 법률자문을 하는 변호사인 나를 변호사 협회에 진정을 하기도 했다. 적장을 넘어뜨리기 위해 그 칼에 창을 꽂는 행위라고 할까. 그런 일을 종종 당해 왔다. 나는 총장이 꿋꿋하게 버텨 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느 날 신학대 총강인 그가 내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

“이제 내가 항복을 하고 사표를 쓰려고 합니다.”
“왜요? 잘 버텨 오셨잖아요?”
“잘못한 건 없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지키야 할 게 있습니다.”

그는 믿음과 소신을 잘 지켜왔다. 마지막으로 뭘 지켜야 할까.

“그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제 집사람과 살 작은 아파트입니다. 사표를 안 내고 더 버티면 그 아파트마저 빼앗아 버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불붙은 장작같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인간적으로 이해가 갔다. 동시에 의문이 일었다. 그는 평생 자기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교수 목사 총장의 명예를 주신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하던 내가 총장에게 물었다.

“변호사로서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나 역시 크리스쳔으로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평생을 십자가를 우러러보는 외길 인생을 걸어오셨다면 지금은 당당히 양팔을 벌리고 그 십자가에 올라가셔야 하는 건 아닐까요?”

“종교적으로는 엄 변호사님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십자가를 지기 싫습니다. 아내와 여생을 보내야 할 아파트가 내게는 더 소중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혼돈이 왔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오는 것은 끝없는 환난이다. 그게 다가올 때 두 팔을 벌리고 고난을 받아들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비겁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도 같은 부류의 옹졸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그 얼마 후 몇 명의 변호사들이 모인 모임이 있었다. 나름대로 명상센터도 다니는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중 한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일반 사람들 열 명중 여덟 명은 자기가 손에 쥔 사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심리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 중에도 일부만 합리적인 이성이 있는 거라고 그래요. 겉으로는 이성적인 사람도 자기 문제에 닥치면 감정에 기울어져 버리고 그 순간적으로 일어난 기분이 전체적인 일의 성패를 결론내는 거죠.”

손에 사탕을 가득 쥔 아이는 움켜쥔 손을 풀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탕이 자신이고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좁은 병 속에 손을 넣어 바나나를 집은 원숭이는 도망갈 일이 생겨도 그 바나나를 꼭 쥐고 있다가 인간에게 잡힌다. 내가 손에 꼭 잡고 놓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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