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는 작은 불의에는 크게 분노하고 큰 불의에는 작은 분노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위선적이면서 멍청하고 무능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사망했다. 이 사람이 미국 대통령을 하던 시절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 잡지에서 카터 대통령이 저녁 10시에 집무실에서 신문을 읽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어린 마음에 ‘내가 자는 시간에 신문 읽으며 휴식한다니 미국 대통령은 참 바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미 카터가 박정희 정권과 인권 문제로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인권유린에 비판적이었다면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그 만 배의 분노를 느꼈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자행된 인권유린을 다 합쳐도 김일성 김정일의 하루치도 안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미 카터가 영어식 표현으로 Sense of proportion(비례감, 경중완급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정희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판적이던 사람이 김일성을 만났을 때 북한의 인권이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한 마디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없다. 마치 남한의 종북 좌파들이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파렴치한 위선과 흡사하다. 인권을 문제삼아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좌파들은 만약 그 자리에 김일성 동상을 세운다고 하면 아무 말 안할 것이다. 저들에게 인권이란 오직 박정희 전두환에게만 들이대는 잣대일 뿐이니까.
만약 지미 카터가 반대로 북한의 인권을 위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잔인한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북한 정권과 싸웠더라면 박정희 정권 당시의 행동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균형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김일성과 환하게 웃으며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뱃놀이도 하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분노를 느꼈다. 같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지만 빌 클린턴은 미국인 기자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단 한번도 독재자 앞에서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100살까지 살며 퇴임 이후에 더 빛났다는 찬사가 쏟아지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부산에 사는 소시민인 나의 눈에는 노벨평화상에 눈 먼 위선자로밖에 안보인다. 보편타당한 가치인 인권에 대한 분노조차도 선택적으로 하는 이중적인 사람. 작은 불의에는 크게 분노하고 큰 불의에는 작은 분노조차 보여주지 못했던 비례감을 상실한 아주 멍청한 사람이 지미 카터란 사람이었다.
경중완급(輕重緩急)에 대한 균형감각이 없던 사람
- 부산386(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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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2, 20:41












적극 공감,동의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면 환장하는 미국 기준에서 보면 어떤지 몰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대통령이었지. 사사 건건 타국 인권문제에 간섭하고, 이란 대사관 점령당하고, 인질 구조하려다 구조대 전멸해 개망신 당하고…오죽 쪼다짓만 했으면 재선에 실패했겠나. 전형적인 좌파 포퓰리즘, 위선의 샘플이었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같은 놈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