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

"장래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두 학생이 정말 훌륭하다"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손녀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학교가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 같다. 내가 살아 왔던 세상도 그랬다. 군대에서도 군번이 빠른 사람이 먼저 진급했다. 회사원도 판검사들도 평생 서열대로 줄을 서고 살았다. 대학 재학 중 고시 합격을 하고 빨리 검사장이 되고 대법관이 되는 사람들의 성공을 보면 부러웠다. 능력이 없는 나는 주제를 비교적 일찍 알고 줄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출세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못가질 것은 안 가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식대로 살아왔다. 꿈을 내 능력 범위 안에서 가지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그런 사고구조는 사춘기 소년이었던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뒷짐을 지고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던 교장선생님이 벤치에서 자고있는 학생을 보더니 잠시 후 담요를 가지고 와서 덮어주었다. 따뜻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교장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훈시를 했다. 노인이 된 지금까지 교장선생님이 했던 이 말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봤다. 거의 다 의사나 법조인이 되겠다고 했다. 교장으로서는 너희들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속에서도 나는 장래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두 명의 학생을 보았다. 그 두 학생이 정말 훌륭하다고 교장선생님은 생각한다. 세상이 좋다는 걸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여러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선택해서 평생 그 길을 가기 바란다.”

어렸던 나는 교장선생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기억해 둘 뿐이었다. 교실로 들어가면 앞 벽 위에 붙은 액자 속에 붓글씨로 깔끔하게 교훈이 적혀 있었다.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출세하고 돈 벌어서 잘살아야 할 것 같은데 교훈에는 그런 게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자유가 뭘까 문화가 뭘까 평화가 뭘까 나는 의문이었다. 막연히 그게 좋은가 보다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학생들 사이에 선풍을 일으키는 한 선생님이 있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영어는 뒷전으로 하고 교실마다 돌아다니면서 이런 말을 했다.

“너희들 앞으로 세상을 살 때 머리 좋다고 주판 튕기며 계산하면서 살지 말고 정(情)으로 살아. 인생은 사고파는 거래가 아니라 주고받는 정으로 살아야 해. 서울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정이 있어야 인간이 되고 진짜 성공할 수 있는 거야.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거로는 인생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할 수 없어.”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는 교육은 부자집 아이나 가난한 집 아이나 학교에서 공평하게 시켜야 한다면서 부잣집의 개인과외 요청을 거절했다. 교사들이 과외로 짭짤하게 부수입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교장선생님은 좋은 교사라고 소문이 난 사람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로 모셔 왔다. 선배들은 이어령 선생님과 ‘원형의 전설’이라는 소설을 쓴 장용학 선생님의 얘기를 해주기도 했다. 두 분 다 한국문학의 거두였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사회에서는 명문이라고 했다. 서울대를 많이 들어가서보다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나의 두뇌 속에는 학교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뿌려놓은 생각의 씨가 깊게 뿌리박혀 있는 것 같다.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이따금씩 할아버지가 다가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꼭 남과 경쟁하고 일등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공부 안 해도 사람마다 다 살아갈 수 있다.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한글을 이주일 배운 게 공부의 전부다. 그래도 잘 살았다. 할아버지는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 정치 쪽은 눈을 돌리지 말아라. 그 사람들의 끝은 꼭 감옥인 것 같더라. 그냥 평민이 되어 조용하게 살거라.”

할아버지에게 배운 평민 교육이었다고 할까. 아버지가 내게 전해준 보통 사람의 행복론도 있다. 아버지는 고등학생인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는 말단사원이야. 그런데 사장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해. 사장은 회사의 이익을 내려고 항상 골치가 아프지. 그런데 말단인 나는 돈 받은 만큼 성실하게 일만 해주면 돼. 그리고 휴일이면 산에도 가고 낚시도 가. 사장은 걱정하지만 말단사원인 나는 즐거워. 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나는 좋은 조상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것 같다. 노년에 동해의 조용한 바닷가에서 사는 것도 그 덕이 아닐까.

42.195 킬로미터를 뛰어야 하는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세상이 말하는 성공은 어느 정도 지점에 있는 것일까. 젊어서는 그게 삶의 끝이고 화려하게 피어난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생 칠십년이 넘게 살아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들은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성공이라는 것도 꿈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면서 배역에 취해 자신이 배우인 걸 망각하고 왕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손녀에게 대학입시는 인생 마라톤 스타트 지점에서 몇 키로 안되는 거리라고 알려주고 싶다. 거기에 죽을 둥 살 둥 너무 에너지를 쏟으면 지친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인생 마라톤의 완주가 성공이라는 걸 깨우쳐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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