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첫 사랑 女도 뼈에 사무친 토대(성분)

열세 살 딸을 둔 성혜림은 왜 다섯 살 연하 김정일의 연애에 응했나. 공산주의의 꿀 같은 매력과 마약 같은 중독성은 평등이다. 하지만 실제 겪어 본 이들의 고통은 한결같이 불평등이다. 공산주의 북한에서 불평등의 극치는 토대이다. 대학을 갈 때도, 간부로 임명될 때도, 결혼 상대를 고를 때도 우선 묻는 말이 있다. 이는 토대 또는 성분이라고 불러지는 말이다.

아무리 뛰어나도 토대 가 나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토대가 좋으면 타고난 축복이 되고 나쁘면 절망을 타고 났다. 변증법적 유물론인 공산철학이 가장 원수로 보는 것이 형이상학이다. 과학 분야인 유전학을 형이상학 사상으로 취급하여 숙청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이 사실은 이런 형이상학을 더 야무지게 따진다. 그러기에 토대가 나쁘면 이를 갱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바치려 한다. 자본 사회에서 돈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것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무수한 사례의 대표적 인물이 김정일의 첫 사랑 성혜림이다.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무소불위 아버지의 아들이다.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쁘고 애 어린 처녀들을 얼마든지 부인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럼에도 5살 연상에 13살 딸까지 있는 유부녀인 성혜림을 첫 사랑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는 토대란 뼈에 사무친 상대 성혜림이었기에 더욱 가능했다.

김정일은 성혜림을 통해 아들 김정남을 낳았고 그렇게 기뻐 죽을 정도로 이뻐했다. 이는 김정남과 함께 했던 《김정일 로열 패밀리: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의 수기》로 증명된다. 하지만 이한영은 이 수기를 쓴 1년 후 암살된다(1997년). 성혜림이 낳은 김정남 역시 2017년 이복 동생 김정은에 의해 백주에 독살된다. 독살 전에 김정일이 죽었으니 망정이지 아마 살아 있었더라면 이 충격으로 죽었을지 모른다.

삼천 궁녀를 부인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의 김정일이지만 왜 하필 5살 연상에 유부녀인 성혜림이 첫 사랑일까. 김정일은 7살 어린 나이에 엄마(김정숙)가 죽었다. 훗 엄마가 김성애이지만 본 엄마를 죽인 원수 같아 정을 부칠 수가 없었다. 엄마 없이 자란 그 공허함을 5살 연상의 성혜림이 채워주었다. 엄마 같기도 하고 부인 같기도 한 것이 성혜림이었던 것이다.

한편 김정일의 첫사랑을 받아 안은 성혜림은 어떠했을까. 원래 정상적이면 개인과 나라를 위해서 사양했어야 한다. 무소불위 권력자의 요구이기에 싫어도 무조건 응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니다. 성혜림은 자진하여 이 기회를 가장 적극 받아들였다.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의 토대를 일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잘 증언해주는 것은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쓴 <등나무 집> 저서이다.

성혜림의 부친 성유경은 경상도 창원 대 지주의 3대 독자이다. 일본 유학의 인텔리이지만 공산주의를 신봉했다(남로당). 첫 부인을 제치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일본 유학생 출신 여자와 재혼한다. 물려받은 그 많은 토지를 평민에게 나누어 줄 정도의 행동하는 공산주의자이다.

이러한 신념의 공산 활동은 서울 서대문 형무소 감으로 6·25 전쟁을 맞는다. 전쟁 3일 만에 인민군이 갑자기 진주하지 않았다면 처형되었을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후 그는 공산 간부인 부인과 함께 당연히 평등주의 북한을 위해 헌신한다.

하지만 차별은 날이 갈수록 가혹하게 다가온다. 공산당이 가장 싫어하는 지주 출신에다 남 출신에 남로당이기 때문이다. 남로당 당수 <미제 고용간첩 박헌영>처럼 처형되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마지막 직업이 마차 사업소 여물 주는 노동자이다. 북한 최고의 신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주필까지 했던 부인마저 토대에 걸려 한직으로 내려 앉았다가 권고 사직당한다.

이런 막막한 가족사와 자신과 후대를 위해 토대를 갱신해야 했다. 마침 북한 최고의 좋은 토대인 김정일이 연애를 해오니 이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과 온 가족이 최고의 토대로 갱신된다.

하지만 또 다른 불행이 설상가상이다. 연상에 유부녀란 영부인 처지는 절대 권력자와 기름과 물같이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들 김정남과 떨어져 정배 가듯 먼 모스크바에서 은폐 생활을 해야 했다. 그 후과로 신경 환자가 돼버린다. 하지만 생명의 기둥이었던 언니 성혜랑의 아들과 딸들이 먼저 탈북하더니 언니마저 탈북한다. 언니와 함께 하려다가 아들 김정남을 생각하여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그 뒤로 얼마 못 가 외롭고 쓸쓸하게 자기 이름 석자도 떳떳히 밝히지 못하고 죽어 갔다(2002년). 그 죽음은 그 아들 김정남으로 이어진다(2017년). 이런 줄 알았으면 언니와 함께 제네바로 탈북하였다가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권이 붕괴되듯 북한도 그렇게 되지 않는 한 토대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 필자도 부친이 남로당, 남 출신이란 토대로 인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군 읍 3개의 고등중학교에서 2등의 성적으로 김일성 종합 대학에 당연히 갈 수 있는 자격임에도 간부 자녀에게 밀려났다. 이 부당함으로 학교 선생님들과 부친이 중앙당에 신소하겠다고 들고 일어나자 김대 다음 순인 김책공업대학에 응시 자격을 받았으나 아무리 우수한 성적이라도 결국 토대가 걸려 못 갔다. 심지어 지방대인 남포농업대학마저 최우수 성적임에도 안 되어 검정으로 대학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최근 알게 된 탈북 1호 등단 작가이며 국제펜망명북한펜센터 이사장인 김정애의 장편소설 <북극성>의 주제가 어쩌면 토대이다. 타고난 글 재주와 화가 기질이 있었음에도 토대로 인하여 꽃을 피울 수 없었다. 그 토대란 낯도 코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월남자라는 것이다. 실제 남한에 와보니 그런 월남자는 없었다. 근거도 없는 월남자 딱지가 그 손녀에게까지 가혹하게 작용한 것이다. 극심한 생활고로 탈북하지 않았으면 그 타고난 재능들은 무참히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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