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원칙과 현실 사이에 낀 법관의 입장.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법원의 난동사태를 보면서 기억의 밑바닥에 있던 한 얘기가 떠올랐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내게 했던 사건의 개요는 대충 이랬다.
만 명의 신도를 가진 큰 교회가 있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목사는 고아원을 설립해 고아를 돌보는 등 여러 헌신적인 일들을 해 왔다. 그래서인지 교인들은 목사의 나이가 팔십이 넘었는데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이었다. 신도들이 귀를 기울이고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배당의 신도 중에 얼굴에 병색이 도는 신경질적 모습을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속에서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 예수를 믿지 않던 그 이전의 착한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야? 다 지옥을 가야 한단 말이야?’
그 소리는 그의 옆 허공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설교하고 있는 마귀를 처단하라’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강대상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점퍼 안에 넣은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목사 옆으로 다가선 그는 칼을 들어 목사의 목에 박아 넣었다. 잠시 후 피가 솟구쳤다. 예배당에 비명이 치솟았다. 그는 두 번 세 번 목사의 목을 칼로 쑤셨다. 노목사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재판에 회부됐다. 일심과 이심에서 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대법관은 청년이 심신상실의 상태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다시 재판을 하라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하소연을 들은 것은 다시 그 사건을 재판하게 된 고등법원 재판장으로부터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된 그 사건을 맡고 내가 그 청년을 두 번이나 정신감정을 했어. 의사들이 모두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는 거야. 법적으로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을 한 거지. 재판장인 나는 정말 난감했지. 그렇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데 그게 죽은 목사를 따르던 만 명의 신도들이나 세상이 납득을 하겠느냐구?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보내도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사회로 다시 내보내는 게 현실이었거든. 재판 때마다 신도들이 법정 주변에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나 그놈을 사형시키라고 시위를 했어.”
판사의 마음도 엄벌에 처하고 싶은데 정신병자에 대한 법규정 때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법이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하겠어. 그 사건의 선고일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지. 법정의 방청석에는 신도들이 꽉 차 있었어. 사형을 시키라는 그들 앞에서 내가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거야. 참 앞이 깜깜하더라구. 어쩔 수 없이 무죄 이유부터 말하기 시작하는데 방청석에 있는 신도들이 벽을 뚫고 미사일 같이 날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어. 법대에 부딪쳐 머리에 피가 흐르고 뺨이 찢어진 사람이 생긴 거야. 죽은 목사의 사랑을 받고 고아원에서 큰 사람들이지. 법정 안팎에 있던 사람들이 순간 폭도로 변한 거야. 법정의 의자들을 다 뒤집어 엎어 버리고 들고 있던 우산으로 법대를 찍어대면서 판사들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거야. 나와 배석 판사들은 기겁을 하고 도망쳤지. 폭도로 변한 사람들이 판사실로 올라오기 시작했어. 나와 배석판사들은 다시 도망가 숨었지. 배석판사들이 수시로 정찰을 했고 얼마 후에 법원을 빠져나가 다른 곳에 가서 숨었어. 내 신세가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 사건을 돌려보낸 대법관 말이야, 법 원칙에 충실한 건 좋지만 내 머리에 타는 숯불을 올려주는 건 뭐야? 법과 현실을 조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이심의 판결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법 원칙과 현실 사이에 낀 법관의 입장이었다. 요즈음의 대통령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나 법원은 난폭한 대중에 포위되어 있는 것 같다. 법원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도 보인다. 이 나라 지도자인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운명이 법원에 달려있다. 타오르는 숯불을 머리에 인 판사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원칙이 무엇인지 야수로 변한 극단적인 사람들이 아닌 일반 국민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용기있는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숯불을 머리에 인 판사들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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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6, 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