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프레이저, 포먼을 기리며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조지 포먼을 미워했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 우습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고 한, 어느 고승의 말씀이 있긴 하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을 수십 년 동안 미워해 왔으니 옹졸하다는 말로는 다하지 못할 무엇이 있을 것이다.

조지 포먼이 타계했다는 보도가 어제 있었다. 나는 그를 다만 TV 화면을 통해서만 알았다. 화면 속의 그를 꽤나 미워했다. 그냥 모르는 사람에 지나지 않은 그분을 지금까지도 미워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옹졸한 인간도 또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관심으로 지켜 보던 조 프레이저를 무너뜨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미워했으니 까닭없는 미움이란 게 이런 것일 터이다. 난사람에 대한 시기.잘투였을지 모른다.

나는 캐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조 프레이저란 선수가 클레이의 참피온 벨트를 빼앗아 갔다. 그를 알리 버금 가는 신급(神級)으로 좋아하면서도 미워했다. 역시 클레이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써. 하지만 조지 포먼은 오로지 미워만 했다. 그래선지 그가 타계했다는 보도를 보고서도 같은 시대 사람이었건만 마음 하나 쓰지 않았다. 조갑제 선생님께서 쓴 “알리에게 역전 KO 당해 더 유명해진 포먼, 세상을 떠나다!”를 읽고 양심이 찔리고 마음이 아파 이 글을 쓴다.

참피온 캐시어스 클레이와 도전자 조 프레이저의 경기를 다방에서 TV로 보고서, 우리가 하던 교과서적인 복싱과 너무나 다른 복싱 세계가 존재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 프레이저가 위빙과 더킹으로써 클레이에게 파고 들던 몸짓은 가히 예술적 몸놈림이었다. 마치 연체동물의 그것을 보는 듯한 놀라움이 아직도 내 머리에 어제의 일처럼 남아 있다. 조 프레이저가 신들린 듯한 동작으로 인파이팅을 하자 캐시어스 클레이의 나비 같이 날던 기술이 먹혀들지 않던 광경은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 프레이저가 음악을 좋아해서 스스로 악단(樂團)을 만들어 악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듣고서야 그의 춤 추듯 한 음악적 몸놀림이 이해되었다. 저렇게 싸우는 사람도 있구나 경탄하다가 마침내 내 마음의 푯대였던 캐시어스 클레이를 다운시키고 새 참피온이 되는 걸 보면서 조 프레이저에 대한 미움과 존경을 동시에 품게 되었다.

그후, 참피온 조 프레이저는 조지 포먼의 도전을 받았다. 마치 신들린 무당이 춤을 추듯 한 조 프레이저의 몸놀림이 이 경기에선 통하지 않았다. 복싱의 상대성이 증명된 것이다. 조 프레이저의 굴신력(屈伸力)이 먹히지 않는 것을 보고 조지 포먼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우상이었던 캐시어스 클레이를 꺾은 조 프레이저가 이겨야 나의 우상이 패배한 것의 위로가 될 테니까 말이다.

휴식 시간을 알리는 공이 울리자, 조 프레이저가 자기 코너에 갈려고 돌아섰는데 거구의 조지 포먼이 뒤에서 프레이즈의 뒷통수를 때려서 쓰러뜨렸다. 복싱에서 뒷통수 가격은 반칙이다. 더구나 휴식시간이라서 이미 돌아선 선수에 대한 가격은 프로가 아닌 아마튜어라면 그 자체로써 실격패를 당한다. 아무리 프로 경기라도 ‘경고(warning)’ 정도는 주어야 했다. 그러나 레프리는 ‘주의(caution)’조차 주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조지 포먼을 본격적으로 싫어한 이유였다. 싫은 그가 조 프레이저를 꺾었다. 조지 포먼에 대한 불길 같은 분노를 나는 애먼 다방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는 것으로 풀었다.

경기가 끝나자 다방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한 켠으로 밀어놓았던 탁자와 의자를 다시 세팅하기 위해 다방 아가씨들이 우리에게 일어나 달라 말했지만 조 프레이저가 패배한 충격으로 친구들과 나는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조 프레이저의 패배를 캐시어스 클레이의 패배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 레지 한 명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아재. 어떤 자슥들이 깽판 치요. 빨리 오보소.”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는 여전히 침묵 속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 같더니 “누가 그라는데?” 하는 성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서 보니 오동동에서 금은방을 하면서 복싱 심판을 하는 아저씨였다. 우리가 일제히 일어서서 인사를 하니, 그의 마음도 우리의 마음과 같았든지, 우리의 심정을 이해하는 눈치였고, “너거가 요서 와 이라노?” 했다. 우리가 “아입미더. 정신이 없어서 조금 지체됐지 금방 갈끼미더.” 대답했다. 이에 그 아재가 아가씨들에게 “내 앞으로 달아놓고 저 사람들에게 차 한 잔씩 돌려라. 금방 갈끼다고 안 하나.”했다. 그리고 우리의 배웅 속에 문을 등으로 밀며 나갔다.

캐시어스 클레이와 조 프레이저와 조지 포먼. 이 세 영걸이 복싱의 상대성을 천하에 드러내 알린 공로 또한 컸다. 얼마 뒤, 캐시어스 클레이가 참피온 조지 포먼에게 도전. 이겼고 클레이는 새로이 세계 헤비급 참피온이 되어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다.

저 경기를 통해 복싱의 재미가 더욱 두드려졌다. 알리는 조 프레이저에게 졌고, 조 프레이저는 조지 포먼에게 졌고, 조지 포먼은 알리에게 졌다. 세 사람이 정삼각형을 이루며 이긴 사람이 지고, 진 사람이 이기고를 연출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웃복싱의 일가를 이룬 무하마드 알리는 지독한 인파이팅을 하는 조 프레이저를 낯설어했고, 복서이기도 하고 파이터이기도 한 조지 포먼은 조 프레이저의 인파이팅을 대수롭잖게 취급했고, 아웃복싱의 태두 알리는 복서겸 파이터인 조지 포먼을 아웃복싱으로 이겼던 것이다.

복싱의 개화시대를 열었던 삼두마차가 조지 포먼을 끝으로 다 사라져 버렸다. 한때의 영광과 명예도 옷처럼 낡아져 사라졌지만 그들의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만세에 남을 것이다. 내가 옹졸하여 조지 포먼을 싫어했던 것을 뉘우치며 저세상에서도 세 분이 이승에서처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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