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닥쳐온 현실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헬 조선’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
귀한 댓글을 하나 받았다. 늙은 내가 ‘헬 조선’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자신의 사례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얘기해준다고 했다. 그는 헬 조선이란 먹는 밥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에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빈부격차를 얘기했다.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할 여성이 드물다고 했다. 신혼 때 돈에 쪼들리게 되면 불행하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이 드물고 자녀 양육도 힘들다고 했다. 남자도 그 누구의 귀한 아들인데 왜 남자만 헌신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런 시궁창 같은 현실을 ‘헬 조선’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 팬이라고 하면서 내가 쓴 소설 ‘여대생 살해 사건’의 표지를 덧붙였다.
내가 보기에는 총명한 분이고 글도 잘 쓰는 것 같다.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나 통찰력도 대단한 것 같다. 현실 인식이나 논리도 치밀해 보인다. 그가 말하는 헬 조선의 상황을 내 젊은날에 도입해 보았다. 달동네 두 평짜리 단칸셋방에서 석유풍로와 등산용 코펠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그 쪽방이 천국같이 생각됐다. 진짜다. 전에 암자의 뒷방이나 고시원 생활을 해서 익숙해서 그런가.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라면 한 그릇 끓여먹고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추리소설 한 권을 읽으면 행복했다. 돈에 지독히 쪼들렸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 진열된 반짝이는 사과를 본 적이 있다. 주머니에 오백 원짜리 동전이 달랑 한 개였다. 다행히 그걸로 사과 한 알을 살 수 있는 때였다. 사과 하나를 들고 쪽방으로 가서 아내에게 건네줬다. 아내가 그걸 받아 들고 행복해 했다. 그 사과에 밴 나의 사랑을 감지한 것 같았다.
안정된 직장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 아내와 비빔밥 한 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은 적도 있다. 불행을 느끼기보다는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어려서 가난하게 살아오고 고비를 겪어온 나는 불행을 느끼는 감각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둔했던 것 같다. 어떤 철학이 있어서도 아니다. 발전할 전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 속에서 딸을 낳았다. 내 형편에 맞추어 키웠다. 딸은 가난한 애비를 만난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젊은 날 ‘나도 그랬소’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나는 그걸 지옥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특별한 희망을 가졌던 기억이 없다. 어떻게 되겠다는 계획이 없이 매일 닥쳐온 현실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비교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는 했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세상은 불공정했다. 그걸 인정해야만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음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내게 절망감이 검은 안개같이 가슴에 가득 찼던 순간이 있었다. 가난한 신혼생활이었다. 아내가 두 번째 아이를 가졌다. 나는 희망이 없었다. 아내가 발작적으로 저항을 하고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 적이 있다. 세상이라는 황량한 벌판에 무기력하게 혼자 서 있는 나를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내게 그분이 다가왔다. 나는 행운아였다. 그분은 내게 성공이나 부(富)를 얘기하지 않았다. 막 쓸 그릇으로 만들었으니 타고난 그릇대로 살라고 했다. 세상에서 왕이나 귀족 역할을 준 경우도 있고 왕궁의 문지기 역할을 준 사람도 있다고 했다. 문지기 역할을 맡겼더라도 거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그분의 계시가 맞다는 생각이었다. 부모를 생각해 보고 조상을 생각해 보았다. 대대로 가난하고 세상에서는 아웃사이더 집안이었다. 세상에서 어떤 역할이든지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내 계획대로 내 생각대로 세상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세상이라는 물속에 머리통을 처박고 죽으면 죽으리라 마음 먹으니까 뭔가가 내 허리를 잡고 물 위로 띄우고 있었다. 나는 안정된 직업을 선물 받았다.
집도 받았다. 아이들도 무난히 다 가르쳤다. 그리고 내 기준이지만 나는 부자가 됐다. 속인의 속박을 면할 수 있는 돈을 가지면 나는 부자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화롭게 늙어가고 있다.
댓글을 보낸 분이 팬이라고 하면서 내가 쓴 소설을 끝에 붙여 넣었으니까 묻고 싶다.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젊은 판사 부부가 구름 위에서 사는 것인가. 그 젊은 판사는 전문중매쟁이의 소개로 준재벌집 딸과 결혼해서 처가에서 마련해준 강남의 고급빌라에 살았다. 돈 걱정 없고 안정된 직장에서 미래는 보장되어 있었다. 그 판사는 천국에 사는 것인가. 나는 그 젊은 판사야말로 ‘헬 조선’에 사는 가장 불쌍한 존재로 보았다. 비록 그보다 공부를 못하고 돈 없이 살아도 그렇게는 살지를 말라고 하고 싶다.
사법연수원 시절 오랜 법관 생활을 한 교수가 미혼의 예비 법조인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가르치는 걸 들었었다.
“여러분보다 인생과 직업을 조금 먼저 앞서간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결혼할 때 결코 물질적 조건을 염두에 두지 마십시오.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사람은 우선 집이라도 마련해 주겠다는 제안이 있다면 유혹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그동안의 고생도 이겨낸 여러분인데 노력하면 그런 것은 반드시 여러분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을 뛰어넘기 위해 공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손에 넣기 쉬운 재물은 반드시 불행이라는 병균이 묻어오기 쉽습니다.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송두리째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만들어 가는 그 과정에서 그리고 성취하는 데서 진국 우러나듯 우러나는 것입니다.”
나는 헬 조선을 말하는 젊은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집과 직장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쓰레기통에 처넣지 말라고. 단칸방과 가난이 싫다는 여자 그리고 공주같이 받들라는 여자는 먼저 차버리라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당신만의 길을 당신만의 음악과 박자에 맞추어 용감하게 가라고. 그렇게 사는 비결을 다들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나는 그때를 지옥이라 생각하지 않나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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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4, 1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