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행복한 9급 교도관

"제 부모나 선생님, 판검사 말도 듣지 않는 놈들인데 제 말을 듣겠어요?" 나의 개인 법률사무소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애환을 털어놓았다. 오늘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젊은 9급 교도관의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그가 겪은 교도관 생활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가 말을 시작했다.

“서울구치소의 가장 먼 감방에서 변호사 접견실까지 거의 1킬로미터의 어두운 통로를 하루에도 여러 번 재소자를 데리고 다녀야 해요. 완전군장하고 연병장을 뛰던 군대시절보다 더 힘들죠. 그게 몸으로 힘든 거구요. 그리고 서울구치소는 대통령, 재벌 회장부터 높은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와요. 그분들을 보면 감옥에 와서도 계속 높아요. 저보고 ‘어이 친구’라고 하기도 하고 ‘어이 간수 이리 와 봐’ 하기도 해요. 검사실도 그래요. 구속된 피의자를 데리고 가면 서너 시간 조사할 때가 많은데 조사가 끝나면 검찰 서기가 ‘어이 이봐 데려가’라고 반말로 내뱉어요. 같은 공무원이고 높지도 않은 검찰 서기를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어요. 높다는 검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요. 심지어 검사실 여직원까지 ‘아저씨 저 사람 데려가세요’ 하고 명령하는 거예요. 저 같은 말단 교도관의 계급장을 닭발이라고 해요. 닭발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낮은 계급이라 그런지 굴욕감을 느끼고 직업에 회의를 느꼈죠. 교도관이라고 하지만 죄수를 교도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제 부모나 선생님, 판검사 말도 듣지 않는 놈들인데 제 말을 듣겠어요? 죄수들을 보면 정말 이기주의자들이예요. 혼자만 편하게 지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그런데 그만두고 나니까 이제야 정말 닭발을 달고 싶어지는 거예요. 잃고 나서야 자기가 가졌던 것의 가치를 알게 되나 봐요. 나름대로 그 자리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직종은 달라도 처음 공무원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 비슷하지 않을까. 존중받고 일에 보람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직업이나 보람은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면이 있다. 탈주범 신창원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징역을 살 때 감방 안에서 번역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면회 오는 가족이 없는 외토리였죠. 우리를 담당하던 9급 교도관이 자기 돈으로 영어 일어 사전을 사주고 틈틈이 영자 신문과 책을 구해줬어요. 그분은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징역형을 시작할 때부터 마음을 바로잡고 뭔가 배우는 걸 습관화하라고 했어요. 출소 때가 되서 기술을 배우려면 늦는다고 했어요. 그 분은 단칸방 살림을 하면서도 안경이 깨져서 책을 못 보는 사람을 위해 박봉을 털어 안경을 사주기도 했어요. 그 분은 푹푹 찌는 여름이면 직원 식당에서 얼음을 얻어 가득 통에 담아 우리 목공반으로 와서 나누어주기도 하고 겨울에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추억의 떡볶이를 같이 만들어 먹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업무에는 깐깐한 사람이었죠. 부정하게 감방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없는지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고 챙겼어요. 적당히 넘어가는 게 없어요. 제가 탈주하자 그분이 징계처분을 받고 좌천됐죠. 근무 소홀이라는 거죠. 한 마디 항변도 안 했다고 그래요.”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천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또 다른 착한 교도관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감옥에 있는 아빠에게 크레파스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철창 안에 갇혀있는 아빠는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감옥생활이었다. 어느 날 아이에게서 다시 편지가 왔다. 아빠가 보내준 크레파스 선물을 받아서 너무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감방을 지키는 교도관 한 사람이 그 사연을 알고서 몰래 크레파스를 사서 보냈던 것이다. 정월 초하루 차례를 지내고 고기 한 덩어리를 신문지에 싸서 감방 안의 장기수에게 몰래 던져준 교도관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교도소 안에는 제복을 입은 그런 천사들이 종종 있었다. 한밤중에 감방 복도로 와 무릎을 꿇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간부도 있었다.

교도관 한 명이 재소자 한 사람만 따뜻하게 해줘도 세상의 온도는 많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내가 사십대 중반쯤 죽음의 서약서에 싸인을 하고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깊은 혼수의 상태로 들어가기 직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지 못한 게 후회됐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을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기주의자인 나는 자기가 없어지는 순간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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