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총량(總量)은 비슷하다

자기 자리에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와 비교하면 가난해도 부자가 된다>

북평 오일장에 군고구마를 사러 갔다. 얼굴이 넓적한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가 봉지에 고구마를 가득 담고나서 옆에서 잘 구워진 커다란 고구마 하나를 덤으로 집더니 봉지 위에 올려놓았다. 따뜻한 장터의 인심이다. 그가 순간 다시 옆에 있는 고구마를 들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건 한쪽이 약간 타버렸는데 껍질을 벗기고 드시면 속은 괜찮을 거예요. 꿀고구마예요.”

그가 활짝 웃으면서 내게 한마디 던진다.

“손님 그냥 크게 웃고 사세요. 한번 웃어 보세요.”

그는 내가 침울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의 말에 화답해서 나는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소리 내서 활짝 웃어 보라니까요.”

육십대쯤의 그는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시골마을은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많았다. 지난해 이곳 동해에 있는 작은 드럼학원을 두 달 가량 다녔다. 갯마을 출신이라는 육십대 중반쯤의 드럼 선생은 젊은 시절 객지로 나가 생활을 하다가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통신 기술자 생활을 하면서 기타와 노래를 배웠다고 했다. 그때 어깨 너머 본 드럼이 늙어서 시골 도시에서 밥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허름한 다가구 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자랑하듯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한여름이면 바닷가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불러요. 버스킹이죠. 내 CD가 2백 장이 팔린 운 좋은 날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내가 유명가수인 소리새인 줄 알고 와서 싸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는 자신을 일류가수로 오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오늘은 오래 전에 우연히 스친 일이 있던 무명 소리꾼 최씨도 슬며시 생각 속으로 걸어들어오는 것 같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가 했던 이런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어렸을 때 창에 미쳐서 민요, 가요 닥치는 대로 배웠죠. 평생을 잔치집과 밤무대를 전전했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삼 년 전부터는 그나마 나를 불러주던 게 뚝 끊겼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봉사겸 나환자촌을 다녔는데 거기서는 나를 열광했어요. 모두들 제 손을 잡아보려고 난리들이더라구요. 저같이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고 던져진 놈도 나환자촌에서는 스타예요.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더라구요.”

화려하지 않아도 들에 핀 풀꽃처럼 자기 자리에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름답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번쩍거리는 조명을 받고 박수 위를 떠다녀도 자신을 잃지 않고 겸손한 스타들을 보면 그들도 아름답다. 아침이슬을 작곡한 김민기씨가 내게 인기와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진짜 가수라고 평한 사람이 있다. 그 가수와 둘이 만나 여러 시간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중 이런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저는 그저 음악 하는 게 좋았어요. 평생 살아오면서 그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음악이었어요. 물론 밥먹고 살아야 하니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업소에 나가 천대와 푸대접을 받은 적이 있죠. 음악은 괜찮은데 못생겼다고 쫓겨나기도 했어요. 안경을 써서 손님들이 싫어한다고 하기도 하고 댄스곡을 하지 않고 비틀즈 풍을 연주한다고 나이트클럽에서 쫓겨나기도 했어요. 그래도 나는 음악밖에 몰랐어요. 어느 비오는 밤이었어요. 어두웠던 과거만 사랑할 수 있다면 내일을 향해 행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날 밤 그걸 노랫말로 만들고 곡을 붙였어요. 그 노래가 독수리가 되어 나를 태우고 하늘 높이 높이 올랐죠. 저의 출세작이었죠.”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었다.

“가난했을 때 저는 기타와 전축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어요. 인기가수라는 소리를 듣는 지금도 큰 욕심은 없어요. 그저 같이 음악을 즐기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하고 있을 때가 정말 행복해요.”

인기를 얻기 전이나 후나 그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는 헛된 그림자에 현혹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있거나 없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인간들 각자 행복의 총량은 비슷한 게 아닐까. 그리고 행복은 욕심 그릇을 작게 할수록 넘치는 게 아닐까. 그 욕심 그릇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알맞을까. 나의 경우 살아오면서 욕심 그릇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 모양이다. 미국의 최고 부자 카네기에게 얼마의 돈이 있으면 만족하겠느냐고 다른 사람이 물었었다. 카네기는 조금만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요즈음 내게 성경은 모든것의 기준을 알려주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예수는 자기 정도 먹고 입고 그가 살던 집에서 사는 정도로 자족할 수는 없느냐고 내게 묻는 것 같다. 예수를 기준으로 하면 삶 자체가 감사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예수보다 백 배 천 배 잘살면서도 나는 불만이 많았다. 나는 먼지같이 못난 존재인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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