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자식들

그곳 아이들은 나이가 차면 교대로 감옥에 한 번씩 갔다. <빈민가 출신 두 남자>

육십년대 내가 중학생 시절 본 풍경이다. 상계동의 황량한 벌판에 바라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따금씩 떨어져 있는 공동변소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겨울이면 땅바닥에 질펀하던 오줌이 노랗게 얼어붙어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의 빈민촌 모습이었다. 어둡고 비좁은 골목에서는 악다구니와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빈민촌의 아이들은 골목에서 주먹질을 배우며 수채가의 독초같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의 숙부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중학시절 나는 종종 그곳에 가서 자기도 하고 그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가장 주먹이 강하고 독한 아이가 영웅이었다. 이따금씩 순경들이 판자로 된 문을 드르륵 열고 독사같은 눈길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나도 한번 그 눈길과 마주친 적이 있다.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자에 대한 눈빛과 빈민에 대한 경찰의 눈길은 달랐다. 그곳 아이들은 나이가 차면 교대로 감옥에 한 번씩 갔다와야 했다. 파출소 순경들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 범인이 되어주어야 했다. 그 동네는 운동가들이 빈민운동을 하는 대상 지역이기도 했다.

내가 장교로 근무하던 전방부대에서 삼청교육대를 담당했다. 빈민가였던 상계동 출신의 아이가 잡혀 와서 경비병에게 나를 안다고 자랑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극한상황에서 구원의 빛이 내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소리 없이 그를 석방시켰다. 법무장교인 나와 보안부대 헌병 장교가 위원이 되어 석방할 권한이 있었다. 그들에게 슬럼가의 애환을 설명해 주었다.

제대를 하고 변호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상계동에서 자란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어려서 상계동에서 같이 자라던 아이들이 모여 조폭이 됐어요. 부모 없이 자란 친구가 두목이 됐는데 어려서부터 싸움을 잘하고 대장 노릇을 했었죠. 그 친구가 택시 운전을 하더니 어느 날부터 차라리 건달을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그 친구가 어느새 조폭 두목이 되어 지역을 확 장악하더라구요. 그 친구가 어느날 부터 외제승용차를 타고 폼을 잡더라구요. 없이 산 놈들이면 돈이 생겨도 겸손해야 하는데 튀니까 권력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잡혀가서 검찰청 지하실에서 죽을 정도로 맞고 재판에 회부됐어요.”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폭력조직은 꽤 단단한 것 같았다. 그들의 교과서는 '대부'라는 이태리 마피아 영화였다. 그들은 이미 범죄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세상이 그런 놈은 죽여야 한다고 해도 저는 끝까지 도울 겁니다. 이년 전이었어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앞이 전혀 안 보이는 거예요. 강원도 산골에서 칠면조나 키우고 시나 쓴다는 놈이 어디 돈이 있겠어요? 집사람 역시 밭에 나가 일해주고 품값을 받는 정도죠. 내 소식을 들은 그 친구가 급히 와서 저를 수술시켜 줬어요. 저는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요. 그가 잡혀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마 설악산 가는 길에 찻집이라도 하나 차려주고 저보고 시를 쓰라고 했을 거예요.”

빈민가에서 유년 시절 소년 시절을 함께 한 끈끈한 우정이었다. 나는 그를 변호했다. 법정에서 그가 처참한 고문을 받은 상황도 주장했다. 외면하는 판사의 옆 얼굴에는 얼핏 비웃음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마지막 변론을 앞두고 구치소로 접견을 갔을 때였다. 조폭 두목인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부탁할 게 있는데요. 제 어린 시절 빈민가 얘기는 판사한테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형을 받아도 판검사 그 사람들한테 그 시절을 얘기하고 동정받기는 싫어요. 빌지도 않을랍니다.”

나는 그의 자존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어린 시절 받은 고통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적용되는 형벌에는 판사가 눈을 감아주는 고문도 있었다. 그들은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세상은 관념적으로 죄인을 규정한다.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남들을 정죄한다. 변호사란 이따금씩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 죄인들과 함께 걸어주는 직업이다. 대학시절 김동인의 소설 ‘감자’를 읽었었다. 빈민굴에서 자라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내는 주인공의 얘기다. 작가는 극한의 가난과 절망에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해피 엔딩은 천국에 가서야 이루어지는 것인가. 칠십년이 넘게 살아왔어도 아직 세상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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