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버지는 문둥이였다

“나병에 걸린 걸 알고 죽으려 했는데 도무지 죽어지지 않더라구요" 그날 나는 논산에서 이십여 리 정도 떨어져 있는 나환자촌을 갔었다. 타는 듯한 뙤약볕 아래 진흙바닥이 거북이 등같이 갈라져 있었다. 햇볕에 나온 지렁이 한 마리가 몸부림을 치는 게 보였다. 마을은 적막감이 돌았다. 블록 담장 옆에서 태양의 열기를 견디며 접시꽃이 서 있었다.

나는 일을 마친 후에 그 마을의 이장을 만났다. 나보다 몇 살쯤 위로 보이는 그는 나병이 완치가 됐다고 했다. 그래도 병이 지나간 상흔은 깊었다. 얼굴의 피부가 코끼리 껍질같이 거칠었다. 왼쪽 눈동자는 노랗게 변색이 된 채 흉한 모습이었다. 마음이 얼마간 열렸는지 그 노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충청도의 명문이란 소리를 듣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나병에 걸린 걸 알았어요. 우리 시절 문둥이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아시잖아요?”

그건 죽음보다 더 한 지옥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 주위에는 문둥이라고 부르는 나병환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공포였다. 조금만 접촉이 되도 병이 옮는 것으로 알았다. 문둥이들이 병이 낫기 위해 어린애를 납치해다 간을 빼먹는다는 소리가 돌았다. 아이들은 길에서 문둥이가 지나가면 돌을 집어서 던지곤 했다. 문둥이가 구걸하러 와도 얼굴을 찡그리고 멀리서 밥을 땅에 놓곤 했다. 그들은 바퀴벌레 같이 박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가족이 버리고 세상이 버렸다. 나는 그 이장 노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병에 걸린 걸 알고 죽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죽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참 목숨이 질긴 거예요. 그 얼마 후부터 난 거지가 됐어요. 구걸하러 가면 밥 대신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죠. 어떤 때는 매도 몹시 맞았어요. 그러는 사이에 내 고교 동기들 소식을 땅바닥에 버려진 신문 조각에서 보기도 했어요. 시장이 되고 대사도 되더라구요.”

나는 그의 아픈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묵묵히 그저 듣고 있었다.

“문둥이는 목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문둥이로 사는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시절은 나라에서도 문둥이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죠. 저는 문둥이들이 모여있는 산골로 들어왔죠. 문둥이끼리 닭을 치고 돼지를 기르고 자립을 하자는데 뜻을 모았어요. 그게 이 마을의 시작입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약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병이 낫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세상은 우리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어요. 코가 문드러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없는 흉터를 보고 사람들은 계속 우리들을 문둥이로 취급했죠. 그래서 지금도 우리끼리 이렇게 모여 삽니다. 전혀 전염될 염려는 없습니다. 제 경우는 젊어서 독한 나병약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이가 드니까 여기저기 쑤시지 않는 데가 없어요. 이제야 죽을 때가 된 것 같아요.”

오랜 세월 고난을 겪은 그의 영혼은 죽음을 안식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가 무덤덤한 어조로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 막내아들 이 놈이 아주 공부를 잘해요. 지난해 서울대학교 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져서 지금 재수를 하고 있는 중이죠. 그렇지만 내가 문둥이 아버지라 근처도 못가요. 먼 풍문으로나 듣죠.”

말을 하는 아버지의 어조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그 노인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예전에 보았던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있던 아들이 돌아왔다. 그 사이 엄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렸다. 문둥이가 된 모녀는 도시에서 쫓겨나 바닷가 절벽 아래 있는 문둥이 굴 속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와 딸은 뭉개진 피부를 가리기 위해 얼굴과 손에 천 조각을 감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이 문둥이 굴로 엄마와 여동생을 찾아간다. 엄마와 여동생은 멀리서 그를 보고 동굴 안 깊숙이 숨어 들어간다. 너무 보고 싶은 아들이고 오빠지만 더 이상 만나서는 안되는 운명이다.

아들은 개의치 않고 굴 안으로 한 발 한발 걸어 들어간다. 그는 어두운 동굴 바위 뒤에 웅크리고 있는 엄마와 동생을 발견한다. 그는 뒤에서 엄마를 가슴에 안는다. 잠시 후 동생도 끌어안았다. 그들의 볼에서 하얀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간절함이 순간 하늘에 닿은 것 같다. 기적이 일어났다. 엄마와 딸의 피부가 씻은 듯 깨끗해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버스 창 밖을 스치는 초록색 들판을 보면서 나도 문둥이였던 아버지를 서울대학생인 아들이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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