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억지로 껍데기 인맥 만들지 말고 만나는 사람과 악연(惡緣)을 만들지 말아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의 갑질이 거론됐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보좌관을 머슴같이 부리면서 5년간 46회 갈아 치웠다는 것이다. 뭉개려는 분위기를 보좌관 집단이 성명을 발표하면서 저항했다. 갑질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을들의 저항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의 인성을 보려면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데리고 있는지를 살피라고 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있다. 평생 가구점을 하며 살아온 그는 스스로 나가지 않는 한 직원을 해고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전과자를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하고 젊었던 직원이 노인이 되어 앉아 있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미운 사람을 인내하고 감싸고 가야 해요.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에 오는 충만감은 대단하죠. 경험해 보면 하나님은 밉상인 사람을 통해 어려운 일을 완성시킬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도 다 감싸안아야 하는 겁니다.”

그는 거의 성자(聖者) 수준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지켜봤다. 위선이 아니었다.

노숙자 시설을 오랫동안 관리하는 목사가 있다. 그가 데리고 일을 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창녀촌의 깡패 출신도 있고 알코올 중독자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삼십 년 이상 부리고 있었다. 한번은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흠이 있다고 멀리하거나 내쫓으면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거짓말이예요. 또 어떤 사람은 수시로 주먹질이구요. 사람마다 단점이 있지만 장점을 보고 참아줘야 합니다. 식당 아줌마도 말을 듣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참고 다음에 다시 시키고 그래야지 그걸 기회로 내쫓으면 안돼요.”

나는 그의 인내가 존경스러웠다. 성경 속의 로마군 장교가 있었다. 그는 노예가 아프다고 해서 식민지인 예수에게 사람을 보낸다. 당시 노예는 하나의 물건이었다. 예수는 무시해도 되는 식민지 평민이었다. 예수가 가장 칭찬한 사람이 그 로마군 장교였다. 그 반대의 경우도 봤다. 한 재벌그룹의 오너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룹 회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아무리 가깝던 놈이라도 그 앞에서 눈 똑바로 뜨고 ‘너 해고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 옛날부터 머슴은 되게 살리라고 했어. 잘해주면 이놈들이 기어 오르니까.”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가려면 그렇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십은 다양할 수 있다. 그 회장의 밑에 있던 대학 동기는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 양반 정이 없는 사람이야. 인간적인 향기도 없고.”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였다. 거대한 군사조직을 움직이던 나폴레옹은 졸고 있는 병사를 보고 대신 보초를 서주었다. 승리를 위해 부하 수백만이 죽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나폴레옹이었다. 로마를 세계 제국으로 만든 시저는 사령관 시절 전선에서 항상 병사들과 같이 먹고 그들 틈에서 망토를 덮고 땅바닥에서 같이 잤다. 그런 게 부하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진정한 리더십이 아닐까.

나는 권력의 실세였던 분을 잠시 보좌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분을 모시고 함께 차를 타고 청와대 부근을 지날 때였다. 그분이 갑자기 차를 세우게 하더니 길가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 팥빵을 세 개 사 왔다. 진열장 속의 팥빵을 보니까 어린 시절의 향수가 피어올라서 그랬다고 했다. 그는 빵 한 개는 운전기사에게 그리고 한 개는 나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그가 먹었다. 그는 기사에게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분과 둘만 있을 때였다. 그가 다정한 어조로 내게 이렇게 가르쳤다.

“자네도 앞으로 운전기사나 보좌관을 둘 기회가 있을 거야. 보좌관이나 운전기사는 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막 대하면 안 돼. 특별한 인연인 거야. 형제나 가족같이 인정을 써 줘야 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결정적이지. 싫어하는 사람이나 보기 싫은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으면 이미 90%는 성공한 거야.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적은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억지로 껍데기 인맥 만들려고 하지 말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악연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적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거야.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원수가 되기 쉬워. 빨강과 파랑은 다르지만 썩음을 통해 보라가 되는 걸 알아둬. 권력도 그래. 내가 근처에 있어보니까 직권을 남용해야 권력의 맛을 느끼지 원칙대로 하면 일하느라고 피곤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지. 그게 내가 느낀 권력의 본질이야. 알아두게”

내가 보좌관으로 모시던 그는 형님 같은 그런 존재였다. 인연을 맺은 지 사십년인데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사회에 갑질이 난무한다. 지위나 돈으로 약자를 억지로 꺾으려는 설익은 행위다. 사람을 진정으로 굽히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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