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본 자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對北 심리전

못 사는 상대의 열등감을 건드리고, 비난하니 反感만 조장…세뇌된 사상의 급소를 공략해야 대북 심리전을 아무리 해도 왜 넘어가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해 필자를 목숨 걸고 탈북하게 만든 것이 남한 전단이었다. 하지만 처음 접했을 때 이처럼 머리 나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였다. 북한 말로 써야 이해한다는 기본에 기본도 지켜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미국의 괴뢰라는 북한 선전을 아주 잘 확인해 주듯 영어식 단어들이다. 단적 실례로 웽그리아를 <헝가리>, 뽈쓰까를 <폴란드>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외 쩍하면 영어식 들이니 무슨 말인지 단어부터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전단 내용도 아주 저질스러웠다. 썩어 빠진 부르주아 문화라는 북한의 선전을 아주 잘 확인 해 주듯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체까지 드러낸 여자 나체 사진이다. 정 보내려면 스포츠 대회 일등한 수영 선수를 소개하는 식으로 했어야 했다. 거의 벗은 수영 선수이기에 나체 효과와 함께 스포츠라는 자연스러움이 있기에 사상적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짧은 치마 효과가 다 벗은 것보다 호감을 더 끌고 거북하지도 않은 것처럼 말이다.

기타 전단 내용들도 대부분 한심한 것들이었다. 심리전의 핵심이 뭔지도 모르고 보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마추어가 권투 경기에 임하는 격이다. 상대 선수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훈련(세뇌)받은 프로에 프로임을 모르고 덤벼드는 것 같다. 그러니 결과는 뻔한 것이다.

이 프로에 프로의 근간은 세뇌된 사상이다. 이 사상이란 급소를 공략해야 넘어가는 것이다.이 사상이 북한의 기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급소가 아니라 눈감고 마구 주먹질하는 격이다. 잘산다는 우월감, 그리고 상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비난이 대부분이다. 못 사는 상대의 열등감을 건드리고 거기다 비난까지 하니 반감만 조장된다.

이런 식의 대북 심리전은 현재도 그렇지만 멀게는 6·25 전쟁 때부터이다. 북한은 자기가 침략자이면서도 오히려 상대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지독하게 세뇌하였다. 그래서 상용 말부터 <미제 침략자와 그 괴뢰 남조선 도당>이라 정한 것이다. 인민군의 구호 자체가 <미제 침략자를 소멸하라!>이다. 이를 대응한 남한과 유엔군측 대응은 보면 기가 막히다.

용산 전쟁기념관을 비롯한 대북 전단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6·25전쟁은 너희 수령이 일으킨 것이란 것이 거의 없다. 그냥 너희 수령과 장교들이 너희를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다는 식이다. 이와 반대로 공산군 측은 조국을 침략한 자들과 싸운다는 명분을 세뇌하여 목숨 걸고 싸우게 만든다. 제공, 제해권이 없으면서도 3년 전쟁, 전후 지금까지도 버텨낸 저력인 것이다. 거짓을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만드는 이런 북한의 발 뒤축에서도 못 따라가는 것이 지금까지 남한의 현실이다.

아무리 거짓을 진실 이상처럼 포장했어도 진짜를 알아낸 나의 방법은 간단했다. 6·25 전쟁 초기 참전자들과 38선 주민을 조용히 만나 본 것이다.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란 말은 북한에도 쓰는 말이다. 아마도 이런 말 한 마디만 계속 반복하여 보냈다면 황당한 거짓말은 배겨나지 못했을 것이며 그 거짓말로 인해 무너졌을 것이다.

이런 간단명료한 대북 심리전 문구를 왜 여기 사람들은 생각지 못했을까. 머리가 나쁘다기보다 왜 중요한지 관심이 매우 부족한 것이다. 이는 사명이 아닌 밥벌이 카르텔 구조 때문이다.

30년 전 입국하여 국방부 대북심리전단에 가보니 탈북자를 한 사람도 쓰지 않고 있었다. 보다 못해 6개월만 일해주겠다고 하여 99% 받아들여졌는데 1%의 카르텔 입김에 무산되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밥그릇 보호 처신이었다. 대북심리전에 왜 영어가 필요한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 들어왔는데 너는 무임승차가 아니냐는 것이라고 한다.

대북 분야에 이런 구조는 30년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관련 언론 매체가 부르는 대부분 주역은 탈북 인사들이 아니다. 밥그릇이 확실한 대북 관련 부서들에서는 더욱 심하다. 체험은 그 어떤 만능 박사라도 대치할 수 없다. 좌파가 대세를 이루는 해방 후와 6·25전쟁 때 나라를 세우고 공산 침략을 막은 주역은 북한을 경험한 실향민들이었다.

북한 문제는 어쩌면 이 현실부터 개선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또 살아본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묻지도 않고 한다. 그러니 헛다리 짚어도 한참인 것은 좌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우파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그 대표적 최근 실례를 들어보자. 가장 우파적 윤석열 정부가 큰마음 먹고 평양에 뿌린 전단 내용을 보면 참 기가 막히다. 수치도 전혀 맞지 않는 풍요 자랑에 김정은 가문 사치 비난 내용이 전부다.

대북 심리전의 핵심 즉 사상적 콘텐츠가 뭔지 개념도 모르는 이들이 작성한 것이다. 3만 4천 명의 북한에서 살다 온 이들과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제 맘대로이다. 정치도 이런 식인 한밤중 도깨비 같은 게엄령으로 인해 탄핵되어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었으니 설상가상이다.

본 주제로 돌아가자, 일례로 나라면 6·25전쟁 때 이렇게 했을 것이다. 압도적인 제공권을 가져 폭격할 때 전단부터 뿌리겠다. 전단 내용에는 이런 비극의 원인이 전쟁을 일으킨 너희 수령이며 이 비극을 종식시키기 위해 폭격하겠다. 그러니 미리 대피하라!

대표적 반미의 증오심은 6·25 전쟁 때 미군 비행기의 폭격에서 비롯되었다. 평양만 해도 평양 인구보다 더 많은 폭탄이 퍼부어져 초토화되었다. 만약 폭탄 비용의 천분의 1을 전단 뿌리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극의 원인이 미국이 아니라 수령에 향하게 하고 한편 인명을 존중하여 미리 대피하라고 하였으면 말이다. 또 수많은 전장들에서도 전단부터 뿌려 이러한 효과를 나타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피를 훨씬 적게 흘리고도 거짓말하는 적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심리전 효과를 가장 잘 구현한 것이 모택동 팔로군이다. 그 결과 거대한 중국 대륙을 장악하였다. 소련도 못 가지고 있던 B29 폭격기까지 무장한 장개석 군대였다. 하지만 농민군에 불과한 모택동 군대에 진 비결은 간단하다.

적의 군대라도 우리 같은 노동자 농민의 자식이다. 항복한 자를 절대 죽이지 말며 치료해주고 먹여주고 여비를 주어 보냈다. 그 효과는 입 전단화되어 중무장한 수많은 장개석 군대를 항복하게 만들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공산당인 모택동이 가장 잘 구현한 것이다. 자유세계에서는, 아니 당장 한반도에는 이런 위인이 언제나 나타날까.

전단 효과의 결정적 열매는 전단 내용이다. 민간인 첫 대북풍선원조인 저로서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돈이 아니라 전단 내용 쓰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북 전단 내용의 핵심은 사상 콘텐츠를 담는 것이다. 사상 콘텐츠란 김일성 3대 세습의 정체를 알려주는 것이다. 세뇌된 만큼 우리도 세뇌로 대응 즉 반복 또 반복하여 알려주어야 한다.

세뇌한 만큼 세뇌로 대응할 핵심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8·15 해방자는 수령이 아니라 미국이며 6·25 전범자는 미국이 아니라 수령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수령이 곧 국가라는 북한인데 수령이 넘어지면 넘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상적 콘텐츠 외에 소리들은 거의 보낼 필요가 없는 시대에 이르러졌다. 잘산다는 소리들은 이미 한류를 통해 퍼져있기 때문이다. 반동문화배척법을 비롯한 3법을 만들고 청소년까지 총살하는 것을 보면 확인된다. 이미 남한에 의해 문화 흡수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대북 방송을 들어보면 수령의 정체를 알려주는 사상적 콘텐츠가 주가 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케이팝이 어떻고 하며 가무를 틀어주며 여기 식으로 방송한다. 왜 이것이 한심한 것들인가.

외부 전파 자체를 차단한 북한에서는 라디오를 비롯해서 그 수단이 극히 적다. 또 발견되면 처형될 각오를 하고 듣는 시간은 대부분 짧은 순간들이다. 한가하지 않은 이 순간에 잘 산다는 소리나 유행가는 당치않은 것이다. 도무지 상대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방송들인 것이다.

이런 상식도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 자리를 독차지하였고 거기다가 묻지도 않고 제 맘대로 하는 교만 때문이다. 묻지도 않는 교만은 묻다가 자리를 떼 울 가 봐 하는 심리가 있기에 더욱 그런다.

그러나 말거나 북한에는 문화 콘테츠 즉 한류가 퍼져있다. 이에 결정적 역할은 조선족과 북한 내 장사꾼들이다. 재미가 있어 돈이 되니 퍼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못하는 것이 사상 콘텐츠이다. 한류 같은 문화콘텐츠도 총살하는 판에 사상 콘텐츠는 어림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남한 정부는 좌우로 오락가락, 했다 안 했다 한다. 좌우도 건드릴 수 없게 철학을 세워야 하나 그런 나라가 아닌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정부이기에 민간인으로서 탈북자로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북 풍선을 첫 개발하여 날린 원조가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는 관이 해야 할 일은 고사하고 민간 특히 가장 취약 계층인 탈북자가 어렵게 하는 쪽박마저 깨버리고 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선거로 정권을 세우는 나라이기에 표를 가진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이 호소가 먹히려면 국민이 바로 인식해야 하기에 이 글을 쓰게 된다.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 국민 주권 정부라고 하기에 더욱 그렇다. 소인이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돌아오지 않는 광야의 메아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남은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후기>
대북 심리전하면 주요하게 대북 전파와 전단을 말한다. 이것을 정치 10단이라고 하는 박지원은 백해 무익하다고 했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새 정부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역설적으로 이들의 똑같은 특징은 북핵에 절실한 달러를 가져다 준 사실이다. 이들은 주적의 요구를 잘 들어주었고 현재는 알아서 기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대역죄가 아니라 통치행위로 포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대역죄 분위기를 없애려고 주적이 아니라고 연막을 뿌린다.

재삼 상기할 것은 - 대북심리전을 가장 싫어하는 이들은 김정은과 그에 온갖 편의를 들어주는 박지원, 이재명 같은 세력이라는 것이다. 눈과 귀를 가리고 굶어죽고 맞아 죽는 노예 처지의 북한 국민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현실이 허용되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다. 그 주요인은 대북 심리전을 아무리 해도 왜 넘어가지 않을까이다. 보다 효과적이었다면 표를 쥐고 있는 국민이 지지할 것이다. 반대로 이를 반대하는 자들이 정권까지 잡게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반성의 입장에서 이 글을 전개하였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