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毛允淑 시인이 여성이란 이유로 '퇴계사당' 참배를 거부당한 날, 한 강연장에서 '천추의 恨"이라며 울먹였다. 600년 만에 열린 금녀(禁女)의 벽.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첫 여성 원장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이배용(78) 국가교육위원장이다. 소수서원 운영위원회는 지난 7월4일 소수서원 당회의 의결에 따라 이배용 위원장이 소수서원 원장으로 추대했다. 이배용은 도감단으로부터 망기(望記. 통지. 추대혹은 임명장)를 전달받고 직을 수락했다. 본격적인 활동과 임기는 오는 '10월 추계향사(鄕祀)'부터 시작된다. 한국서원 600여 년 역사에 여성으로서 서원(書院) 원장에 추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7월5일 매일경제신문 보도 인용).

이배용 신임 원장은 "조선시대는 여성이 서원의 문턱도 넘지 못했는데 역사라는 게 상생으로 나아가는 힘을 받는다"고 밝혔다. "제가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해 유림(儒林)들이 제일 고마워한다"고도 했다. 이 원장은 2019년 한국의 산사(산지승람)와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당시 영주시 순흥면 소재 소수서원을 비롯해서 도산, 옥산, 병산, 남계, 도동, 필암, 무성, 돈암서원 등 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소수서원은 1543년 경북 영주 순흥에 세워진 뒤 1550년 퇴계 이황의 건의로 명종이 현판을 하사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됐다. 퇴계선생도 소수서원에서 수학했다.

이배용 원장은 2020년 도산서원 추계향사에서 최초의 초헌관(初獻官)도 지냈다. 소수서원 역사 428년, 우리나라 유교역사 600년의 폐쇄적 벽을 허물어 뜨린 것이다. 초헌관은 종묘제례 등에서 첫번째로 신위(神位) 술잔을 올리는 제관(祭官)이다. 초헌, 아헌(亞獻),종헌(終獻)이 있다.

이배용은 또 "서원은 제사만 지내는 곳이 아니라 사립교육기관이었습니다, 제사 기능은 이어져 오고 있는데 교육 기능은 근대 서양학문이 밀려 오면서 뒤로 밀려 나갔지요. 서원은 출세지향적이기보다는 마음을 닦는 수신제가(修身齊家) 기능을 했던 만큼 오늘날 인성교육의 장이 돼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배용 원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과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현재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다. 소수서원은 1542년(중종 37년) 8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이곳 출신 성리학자 안향(安珦) 선생을 배향(配享)하는 사당을 설립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여 1543년 8월11일에 완공했다. 안향 선생의 영정을 봉안했다.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배용 원장이 우리나라 최초로 "600년 금녀의 벽을 깼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인이 추로지향(鄒魯之鄕) 안동에서 남긴 어록(語錄)도 함께 소개한다.

알려진 대로 모윤숙 선생은 시인이자 외교관으로 UN총회 등에서 크게 활약했다. 모윤숙은 1959년 가을 어느날, 문학강연회 참석차 문인들과 함께 안동을 방문했다. 여유시간이 있어 '도산서원'을 방문했다. 동행한 남성들은 '퇴계사당'을 참배했으나 모윤숙 선생만은 참배를 허락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날 밤 안동여고 강당에서 문학강연을 하면서 모윤숙은 호소했다. "안동 양반이 지체높다는 얘기는 일찍이 들어왔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환영받은 이 모윤숙이 여성이란 이유로 '퇴계선생 위패' 앞에서 절 한번 드릴 기회를 허락받지 못한 것은 천추의 恨"이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 때의 모습이 지금도 필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초대 상공부장관 임영신도 도산서원에서 이퇴계 선생을 모시는 사당에 참배하지 못했다는 당시 보도도 있었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