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되고 관습화된 평등은 三代를 간다.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쓸지 않는다>는 속담은 수천 년 경험의 정답이다. 하지만 평등의 독은 수십 년 만에 수천 년을 무너뜨리는 파괴력을 지녔다. 평등은 공산주의와 같은 의미이다. 평등은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마치 이것은 영생하고 싶은 종교심과 같은 것이다. 평등의 반대 불평등 역시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평등을 원하면서 불평등을 원하는 이중적 본능이 있다. 이는 공산 국가들에서 가장 잘 증명하였다. 평등은 관념이지만 불평등은 현실인 것이다.
평등은 꿀 같지만 극약이다. 첫째로 일하지 않게 만든다. 둘째로 일하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로 인심이 박하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사람은 웬만해서는 굶어 죽지 않는다. 하지만 평등이란 극약을 마시면 대량 굶어 죽게까지 만든다. 공산 종주국 소련에서의 공산화(1930년대)로 유럽의 빵 바구니 우크라이나에서마저 수백만 명을 아사시켰다. 중국의 공산화(1950년대)로 수천 만 명을 아사시켰다. 북한의 공산화(1958년)는 6·25 전후 공산 진영의 지원으로 대량 아사는 면했으나 결국에는 피하지 못한다. 공산 진영이 무너진 1990년대에 아사자는 수백 만 명으로 폭증한다.
평등의 독이 퍼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직접 체험한 바를 열거 하련다. 아니 그러기 전에 독자들이 익숙한 유명인들의 말부터 인용한다.
한국의 자랑, 세계적 기업 삼성 경영자 이건희의 말 -<하나를 하는 자는 하나를, 열 백을 하는 자는 열 백을 하라! 하지만 남의 뒷다리는 제발 잡아 당기지 말라!> 한국의 자생 사회주의자로서 두레 마을 창립자 김진홍 목사 사모의 말-<일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궨찬다. 더 큰 문제는 일하는 자를 괴롭혀 쫓아내는 것이다>
북한 과학원에서 가장 젊은 연구사였던 필자, 그만큼 순수한 탐구의 열정가였다. 국가가 부여한 연구 과제는 3개였지만 27개를 하였다. 9배나 더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칭찬이 아니라 공공의 적으로 된다. 연말 연구 사업 총화 때마다 어떻게 하나 트집을 못 잡아한다. <저 어린 놈 때문에 연구 과제만 늘어나게 생겼다.>는 군중 심리이다.
홍원 수산사업소에 한 달간 작업 동원 나갔을 때 33개의 발명을 하였다. 하지만 가장 좋아해야 할 직장장이 가장 반대를 한다. <당신 때문에 공짜 동원 노력을 못 받게 되고, 발명품이 고장나면 우리만 고생하게 생겼다.>
소련 유학 출신, 탈북하여 소련에서 32개 발명가 장덕수의 말 -<열심히 일해 잘살 자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자를 타도해서 나누어 먹자는 군중 심리이다.> <처음엔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보인 사회주의 제도가 결국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 넣었다.> <모든 분야에서 주인이 없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안됨을 깨닫게 되었다.> 장덕수는 1990년대 KBS 인기 드라마 <붉은 별 아래 청춘을 묻고> 주인공이다.
평등은 <쌀 독에서 인심난다>속담의 반대 속담을 만든다. 장덕수의 글-'소련 사람들은 평등 관념이 깊숙하여 자기보다 더 잘살면 적대적이다. 잘 살면 모리 간상배로서 총살시켜도 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군중 심리가 팽배하기에 고급 양복 입고 다니는 것도 꺼렸다. 자가용 사고서도 미안해서 함부로 타고 다닐 처지도 못되었다. 어쩌다 비싼 물건을 사게 되면 빚을 내서 샀다고 변명해야 했다. 연구소에서 일 잘한 이에게 몇 천 루불도 아닌 거의 균등에 가까운 20 내지 30루불 상금을 주어도 야단들이다. 잘살지 못할 바에야 똑같이 못 살자는 사회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서 필자도 생생히 경험했다. 1977년 연구소 시험포 작업 분조장을 1년 할 때이다. 분조장이 작업 평가를 하여 조원들에게 노력 점수를 주게 된다. 노력 점수에 따라 월급이 책정되는 것이기에 이해 관계와 직결된다. 일 많이 한 조원에게 노력 점수를 더 주게 되면 말이 참 많다. 남자들은 군대를 거의 다 뽑아가기에 조원들은 거의가 여자들이다. 여자들의 말은 참으로 많다. 그 시달림에 엇비슷하게 로력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말은 잦아지지만 그 대신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는 사라진다.
칼기 폭파범 김현희 수기 <나도 여자가 되고 싶어요>에서의 한 구절을 보자. 외교관인 부친 덕에 식용유를 더 구입, 하지만 요리할 때 냄새가 이웃에 퍼져나갈까 조심스러웠다는 구절이 있다.
평등이란 관습은 감사 대신 질투를 불러온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 평등이다. 평등이란 관습은 탈북하여서도 관성력을 유지한다. 모스크바 망명 때 탈북자들에게 숙식 보장, 유엔(UNHCR)을 통해 남한에 오도록 하는 은인의 역활을 한 것이 필자이다. 하지만 탈북 동료 치고 고마워하는 이를 보질 못했다. 나 때문에 남한에 와서도 밥그릇을 팽개치며 신경질을 부린다. 그 이유는 자신보다 내가 더 인터뷰와 기사에 많이 난다는 것이다. 벌목공보다 과학원 출신이 더 인기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참을 수 없어 밥그릇을 팽개치며 화풀이하는 것이다.
또 다른 생생한 체험을 언급한다. 이른바 <대북전단 원조>가 필자이다. 대북 전단은 폐쇄 북한을 상대한 통일의 기본 운동이다. 통일을 가장 염원하는 탈북자들이므로 당연히 환영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질투심은 이를 무색케 한다. 지지 성원은커녕 심술을 부리는 이웃 탈북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곁집 탈북자는 나의 집에서 향수 냄새가 나서 못 살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트집으로 주거 침입하며 난리를 친다. 그 처·자식까지 심지어 한 아파트 탈북자까지 집단적으로 출근길을 막아서서 그런다. 생면부지의 또다른 탈북자는 술에 잔뜩 취해서 새벽 1시경에 우리 집 문을 발로 차고 난동을 부린다.
남들이 보건데는 참으로 이해가 안될 만큼 이상한 현상이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가 24시간 신변 경호를 받는 것이 <배가 아파 죽을 맛>인 것이다. 이는 그 탈북자가 톡방에서 노골적으로 한 말이다.
*몇 달 전에 사망 소식을 받았는데 위문 갈까 하다 혹시 생트집 잡힐 것이 우려되어 안 갔다.
사실 프라이버시란 없는 24시간 신변 경호를 저는 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조용히 대북 풍선 하는 나의 활동이 이 신변 경호를 통해 노출되기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왜 자신들은 경호해주지 않느냐며 질투하는 것이다. 설사 24시간 경호를 해주면 사생활에 지장 된다고 거부할 것이 뻔해도 그렇다. 최근에도 어떤 탈북자는 필자의 신변 경호를 취소하라고 경찰청 앞에 가서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시위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탈북인은 나 때문에 단체 회장으로 세워지고 감옥에서 석방도 된 이다.
이렇게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질투의 대상은 필자 뿐이 아니다. 탈북 인사로서 최초로 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 태영호에 대한 질투도 보통이 아니다. 한 의사 출신 탈북인은 태영호가 국회의원 되면 광화문 광장에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탈북자 치고 의사이면 대단한 지식인이다. 그러니 질투는 이른바 하층 탈북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질투심은 고위급 탈북인들 모임에서도 확인되었다. 김일성 대학을 비롯한 유수한 북한 대학 출신들인 이들 거의가 태영호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 얘기만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들 탓하기 전에 평등이 낳은 산물이라 해야 한다. 이렇게 세뇌되고 관습화 된 평등은 삼대를 간다고 경전은 지적한다. 따라서 통일이 되어 북한 사람들과 교류할 때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여기 식의 표풀리즘까지 가세하면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평등의 독은 이렇게 파괴적이고 지독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망해야 끝나는 평등의 毒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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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31, 09: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