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목사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소년 시절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마음을 함께 하는 친구다.

“나 요새 교회 안 나가.”

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삶에서 모범생 같던 그였다. 주일이면 빠짐없이 부인과 함께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 했었다.

“왜?”
그에게 어떤 회의가 들었는지 궁금했다.

“나보다 어린 목사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그리고 화려한 가운을 입고 권위를 내세우려는 행동도 눈에 거슬려. 인터넷만 틀면 세계의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다 들을 수 있는데 왜 굳이 교회라는 장소에 가야 하는지도 의문이야.”

그의 말에 나도 동의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교회에서도 뒷방 노인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필요성은 세대에 따라 다르다. 내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녀석이 벌을 받고 나서 글을 써서 아버지 책상에 올려놨는데 성경 속 탕자의 비유를 인용한 거야. 탕자의 아버지처럼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주실 수 없는냐고 말이야. 교회가 아이들한테 성경을 통해 정말 중요한 걸 알려주는 것 같아.”

교회는 아이들의 영혼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곳이었다. 내가 다섯 살 때였다. 교회에서 요한복음 삼장 십육절만 외우면 달걀을 준다고 했다. 열심히 암기하고 얻어먹었다. 그 구절이 평생 기억의 벽에 화석이 되어 있다. 일곱 살 무렵 시골 할머니댁 뒤쪽 산자락에 작은 교회가 있었다. 진흙벽에 회칠을 한 창고 같은 교회였다. 산소통으로 종을 만들고 나무망치로 쳐서 소리를 냈다. 봉사를 온 이십대 청년 전도사한테서 매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서울로 돌아갈 때 아이였던 나를 꼭 안아주었던 온기가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있다.

돈에 쫓기고 삶이 고통스럽던 삼사십대 교회는 나의 피난처였다.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예배당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면 내 영혼이 신성한 곳을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믿음 깊은 성직자의 한 마디가 내 정신의 양식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젖꼭지를 물리고 우유같이 부드러운 말씀으로 먹이는 것 같았다. 훌륭한 성직자는 성인들에게는 씹을 때 적당한 저항감이 있는 말씀을 먹여주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칠십대가 됐다. 교회에 가보면 이제는 조용히 물러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서나 아는 척하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주책맞은 늙은이가 된 것 같다. 나보다 젊은 목사의 눈길에 인내하는 빛이 보인다. 돌이켜 보면 세월이 흐르고 믿음의 학년이 올라갔는데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요즈음은 인스턴트식품 같은 설교도 많이 유통되는 것 같았다.

이제 와서야 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보이던 것도 새로 다르게 느껴진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설계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교회의 여러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다.

하회마을을 갔다가 아담한 한옥에 십자가를 올린 시골 교회를 보았다. 정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 좋아 보이는 목사가 몇 명의 신도를 앞에 놓고 설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괜찮아 보였다. 학위를 자랑하는 검은 줄을 친 화려한 가운을 입고 수천 명 앞의 무대 위에서 가르치는 모습보다 겸손해 보여서 좋았다.

한국의 고유한 문화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적 정서에 맞는 교회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교회란 건물과 인간 조직만을 의미할까.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가 적힌 성경이 본질적인 교회는 아닐까. 북한에는 장독대 뒤에 숨겨놓은 성경을 몰래 보면서 기도하는 노인들이 존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교회 건물은 오래 전 없어졌지만 성경교회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공자님의 말씀도 건물로 존속한 게 아니었다. 종이 위에 먹으로 쓴 글씨인 경전으로 그 생명이 이어져 오고 있다.

또다른 교회가 있다. 하나님은 우주에도 존재하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깊은 내면 영혼 속에도 계신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영혼은 우리 내면의 지성소이다. 그곳에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다고 한다. 내면으로 들어가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그걸 마음교회라고 부르고 싶다. 어린아이일 때는 우유 같은 걸 먹고 어른이 되어서는 딱딱한 식감의 말씀을 먹고 노인이 되어서는 내면에서 그분이 주는 만나를 먹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친구와 내면의 교회와 노년의 기도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