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의 ‘눈물 한 방울’

“남편이 죽기 전에 태도가 달라진 게 있어요. 누구한테나 감사하다고 하는 거예요. " 다가구 주택에서 혼자 살던 남자가 죽은 게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국밥 한 그릇 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쓴 글과 함께 십만 원이 담긴 봉투가 옆에 놓여 있었다. 자신의 시신을 치워줄 사람에 대한 인사였다. 그 방 책상 위에는 전기와 수도 고지서와 옆에 그에 맞는 돈이 놓여 있었다. 그는 저세상으로 건너가면서 그의 장례비 백만 원도 놓고 갔다. 깔끔한 죽음이었다. 한 독자가 댓글로 내게 알려준 내용이었다. 그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어머니도 그 비슷한 죽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 내게 돈을 주면서 몇 가지를 지시했다. 그중 한 가지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셨다.

“해방 후 서울로 시집을 왔는데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면 앞집 서너 살짜리 꼬마가 와서 옆에서 혼자 놀곤 했어. 귀엽게 생겼는데 정이 들었지. 내가 죽으면 그 아이를 찾아서 내 마음이라고 하면서 돈을 전해 주거라.”

나는 장례를 치른 후 어머니가 새댁 시절 본 그 꼬마를 수소문해서 찾았다. 그는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내 말을 듣던 노인의 짓무른 눈에서 맑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어머니는 평생 무섭게 절약했다. 아깝다고 썩은 음식까지 먹고 고통으로 뒹굴기도 했었다.

한 기자가 죽음을 몇 달 앞둔 이어령 교수를 찾아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공포는 없으신지요?”
기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이 없어요.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라는 사람은 죽음을 연구하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니까 감당을 하지 못했어요. 그걸 본 기자가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죠’라고 물었더니 로스는 ‘지금까지 내가 말한 죽음은 타인의 죽음이었어요.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말했던 이어령 교수가 죽은 지 벌써 삼년이 넘은 것 같다. 어젯밤 우연히 이어령 교수의 부인이 한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걸 봤다. 그 부인이 남편의 아팠던 과정을 담담히 얘기하고 있었다.

“걷지 못하게 됐을 때 남편이 펑펑 울었어요. 혼자서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섰다가는 무너지는 거예요. 평소 컴퓨터로 글을 썼는데 더 이상 손가락으로 더블 클릭도 안되는 거예요.”

인간은 소멸 이전에 망가져 가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는 것 같다. 부인이 말을 계속했다.

“남편은 죽음을 앞두고 스케치북을 준비해서 거기다 손글씨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몽테뉴의 수상록같이 매일 일기식으로 썼어요. 마지막 책을 만들고 죽겠다는 각오였죠. 그 일 때문에 항암 치료도 거부했어요. 스케치북의 남은 면이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남편이 기도했어요. 그걸 완성할 때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그래도 끝부분은 쓰지 못하고 죽었어요.”

화면에는 그가 썼던 마지막 부문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죽기 직전 뭘 썼을까. 이런 문장이 클로즈업 되고 있었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부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남편이 죽기 전에 태도가 달라진 게 있어요. 예전에는 어디서 선물이 와도 바빠서 감사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죽기 전에 보면 누구한테나 감사하다고 하는 거예요. 감사의 편지도 써서 보내구요. 예수를 믿고 나서 그렇게 된 건지도 몰라요.”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그가 한 최대의 설교다. 죽음의 순간은 진실하다. 죽는 순간의 침묵조차도 많은 걸 알려주었다. 나는 여러 죽음을 보면서 삶을 배웠다. 죽은 이어령교수가 쓴 마지막 책의 제목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 그건 어떤 의미일까. 죽은 어머니의 마음을 전달할 때 해방 무렵 꼬마였던 그 노인의 눈에서 나온 하얀 눈물이 겹쳐졌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눈물 한 방울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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