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은 돈이 없으면 자유가 아니라 노예 생활인 것 같았어요."
<박쥐 인생 4>
"윤 선생 같이 남한에서 북한으로 자진해서 월북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어떤 사람들인가요?“
내가 물었다.
"남쪽에서 범죄 저지르고 도망 온 사람도 있고, 더러 호기심에 온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사실은 먹고살 수 없으니까 간 거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내 정체를 알고부터는 천대하기 시작했어요. 회령 초대소에서 함경도 다른 도시로 보냈어요. 거기는 무지무지하게 추운 곳이었어요."
윤 선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옮긴 곳은 방이 여러 개 있는 싸구려 여관같이 지은 이 층 건물이었어요. 그중 방 하나에 묵었는데 어떻게 추운지 이빨이 덕덕 부딪칠 정도였어요. 처음 조사받을 때 따뜻하던 방이 생각났어요. 화장실 변기들도 전부 얼어붙어 버리고 건물 전체에서 한 곳만 공동으로 썼어요. 어떻게나 춥고 떨리는지 거기는 지옥이었어요. 북으로 잘못 갔다고 속으로 후회했죠."
그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처음에는 아파트와 일자리를 주겠다고 하더니, 그 친구들 전부 나한테 사기 친 거죠. 나를 다시 남쪽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자 친절하게 대해 주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냉정하고 무뚝뚝해졌어요. 나도 이판사판으로 막가는 심정이 됐습니다. 죽을 건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한 번은 나를 감시하는 여자가 나를 쓰레기 취급하면서 너무 깔보길래 나도 울컥해서 '쌍년'이라고 욕을 했어요. 패 죽여 버리고 싶더라구요."
윤 선생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가 다시 격앙되었다.
"그랬더니 어떤지 아세요? 그 여자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북조선이 '쌍년들과 종놈들이 세운 나라인지 몰라서 왔느냐'고 길길이 날뛰더라구요.”
그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깊은 정서와 연관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은 남한을 지주, 매판자본가, 친일파의 썩은 나라라고 비난했었다. 해방 후 북한 인민위원회는 머슴들과 건달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윤 선생은 북한 체제가 가진 계급 의식의 뿌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나를 담당했던 북한 사람이 판문각까지 데리고 오더니 거기서 남쪽으로 밀어버렸어요. 남측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한테 잡혀서 바로 서울구치소로 갔죠.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한다고 했어요. 서울구치소 안이 따뜻하고 괜찮았어요. 구치소 안에서도 독방을 줬어요. 재판을 받았는데 판사가 그동안 얘기를 듣더니 집행유예를 선고해서 감옥에서 내보냈어요. 왜 그랬는지 몰라요. 석방된 후에도 갈 데가 없는데 말이죠. 나와서는 전과자들이 모이는 노숙자 합숙소에 갔다가 변호사님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일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사람이다.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아본 그의 체험은 관념 속에 사는 나보다 더 정확한 진실을 쥐고 있었다.
"도로 쫓겨오지 않았으면 그곳에 계속 살았을 것 같아요? 자유롭게 북한과 남한중 살 곳을 선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윤 선생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저는 당연히 남쪽이죠."
“왜죠?”
"거리를 돌아다닐 자유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보니까 만정이 떨어졌죠. 가난해도 자유로운 여기가 좋아요."
자유. 그것이 그가 북에서 깨달은 가치였다. 그와 반대의 경우인 탈북자들의 내면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자유를 느끼며 감사하고 있을까. 그게 통일문제에 있어서 본질이 아닐까.
나는 지난해 봄, 한 탈북 여성을 만났었다. 그녀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남쪽으로 내려와 보니까 나는 인간이 아니더라구요. 북한 어투를 쓰는 것만으로도 놀림당하고 조선족보다도 못한 밑바닥 인생입니다. 딸하고 먹고 살라고 보니까 술집 접대부까지 해 봤어요. 남한은 돈이 없으면 자유가 아니라 노예 생활인 것 같았어요. 그래도 북은 가난하지만 여기보다 차별이 덜해요.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고 하면 도로 가고 싶어요. 그리고 북의 굶어죽는 가난을 말하는데 미국 때문인 걸로 알고 있어요.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어서 북도 수출하고 사람들이 외국 나가서 돈을 벌어 올 수 있으면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남한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았다.
오래 전에 국토가 나뉘어졌다. 오랜 시간의 단절은 이제 민족이나 문화까지 다른 존재로 바뀐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대한민국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남과 북은 정신적, 문화적 동일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공허한 이념이나 역사에 가위 눌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윤 선생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 파장은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먹던 음식들은 이미 치워진 지 오래였고,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쌍년들과 종놈들이 세운 나라인지 몰라서 왔냐"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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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2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