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첫사랑, 통천(通川) 이장집 딸

2000년 訪北 때, 꿈에도 못 잊은 첫사랑은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정주영 회장의 첫사랑은 그의 삶을 강단 있게 만들었다. 통천 이장 집은 동네 제일 부자였다. 면에서 동아일보를 유일하게 구독하는 집이었다.

정 회장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이장 집에 들러 다 본 신문을 얻었다. 그 당시 인기 연재소설 이광수의 '흙'을 보며 주인공처럼 경성에 가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두 살 많은 이장 집 딸에게 다음에는 변호사로 나타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매사를 열심으로 버텼다. 부잣집 딸과 그의 처지는 너무 차이가 나서 신문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감히 예쁜 아가씨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를 사모하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졌다.

네 번째 고향탈출에 성공하여 서울에서 사업을 성공시킨 정 회장은 느긋한 마음으로 고향을 찾았다. 중절모 하얀 양복에 백구두로 금시계를 차고 한껏 폼을 잡고 으스댔다. 하지만 그동안 그녀는 결혼하여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배려로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마련한 선물을 준 뒤 헤어졌다. 그날이 이승에서 그녀와 마지막이 되었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이익치 회장에게 자신이 북한에 가려는 이유를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첫번째는 국가와 민족의 통일, 두 번째는 첫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부탁해서 그녀를 찾아달라고 이익치에게 지시했다. 정 회장은 가회동에 첫사랑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라는 지시도 하여 이익치는 매물로 나온 전 화신산업 박흥식의 집을 70억 원에 매입했다.

고향과 첫사랑은 정 회장의 마음속에 항상 꽉 채워져 있었다. 정 회장은 2000년 초 자식들의 재산 싸움(일명 정몽구 정몽헌의 형제의 난)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 이는 건강에도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 그를 지탱시켜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성사의 공로로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갔다.

그러나 꿈에도 못 잊은 첫사랑은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정 회장의 꿈에도 그리던 첫사랑에 대한 간청을 이익치에게 전해들은 김정일 위원장은 보안요원을 풀어 그녀를 수개월 동안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헛수고였다.

전쟁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어 그녀가 청진에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녀의 가족들을 평양에 데려놓았으니 원하면 만나게 해주겠다고 정 회장을 위로했다.

정 회장은 북측 송호경 아태평화위원장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정 회장은 2년 전에만 알았다면 아산병원에서 고칠 수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극도의 쇠잔한 건강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 그 후 정 회장은 다시는 조선을 방문하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정 회장은 2001년 3월 하늘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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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른쪽 날개 2025-11-26 오후 10:45

    북측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수는
    없고 그녀가 살아있었어도 죽었다고 말했을 수도있다. 서울에 살 집을마련했다는 말을 했을텐데 살아있었다면 데려가겠다는 얘기이니 만약 보낸다면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어 북측으로서는 난감한 상황해 처해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데도
    정회장의 청을 거절한다면 정회장으로부터 얻는 단 꿀은 더이상 없을테고....... 그러한 발상자체가 정회장이 이미 정신줄을 놓은 치매 상태였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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