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딸들> 장융(張戎)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공통점.
장융의 아버지는 등소평과 함께 혁명을 한 고급 당 간부였다. 그의 딸 장융은 영국에 유학하여 <대륙의 딸들>이란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공산주의의 중요한 목표는 당원도 일반인과 똑같은 규칙을 지키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아버지의 신념이었다. 이런 이유로 타인보다 자기 가족에게 특별히 더 엄격하고 가혹했다.
만주에서 쓰촨으로 이동하는 1600km에 달하는 고된 행군길에도 당신의 자동차에 아내를 태우지 않고 걷게 했다. 자동차를 탈 직급이 안된다는 이유이다. 결국 어머니는 첫 아이를 유산한다.
아버지가 중국식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례식을 금지할까봐, 아버지의 가족들은 할머니(=아버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알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이상과 신념은 문화대혁명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자신의 대쪽같은 기질을 억누르지 못하고 문화혁명이 불러온 재난을 설명하며 마오 주석에게 중지해 달라는 편지를 썼고, 이 불경스러운 행동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했다. 목에 커다란 간판을 매달고 매일매일 탄핵 대회에 끌려다니며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겪었고, 감옥에서 고문을 받았고, 급기야 정신 분열을 일으키며 어머니를 위협했다.
어머니도 탄핵 대회에 끌려다니고 이곳저곳에서 고문과 구금을 당했다. 아버지가 수용소에 있는 동안, 아내와 자식들은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방문했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를 감싸주고 보호해 준 사람들은 그가 하위 순위로 밀어냈던 아내와 아이들뿐이었다. 그 후 모두 지방의 오지로 추방되었다.
노동을 위한 사상개조라는 명목으로 지독한 환경 속에서 힘든 노동과 잔인한 매질을 당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평생을 바쳤던 이상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가족들에게 모질고 가혹하게 대했던 것들에 대해 사과하며 자신을 질책했다.
어느날 오후 집에 돌아가자 아버지가 부엌에 있었다. 그는 시멘트로 된 커다란 화덕에 불을 피우고 책들을 던져 넣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남자의 고통스럽고 가슴이 터지는 듯한 성난 흐느낌이었다. 발작과도 같은 격렬한 흐느낌 중간중간에 그는 발을 구르고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나는 너무 놀라 감히 그를 위로할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를 두 팔로 안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있는 돈을 모두 책에 쏟아부었었다. 책들은 바로 그의 인생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산주의를 위해 온갖 사선을 넘어 월북한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새벽 1~2시까지 연구소(과학원)에 있다가 퇴근하는 나였는데 어느날 집 가는 길 논판에서 통곡 소리가 난다. 한밤중이니 놀라 뛰어가 보니 아버지였다. 집에서 울분을 토할 수 없어 허허벌판에 나와 통곡하신 것이다.
그 방황은 자살 아닌 자살로 마감하셨다. 남조선 방송을 듣다 발각된 경력으로 자신과 자녀의 출세길은 막혔다. 가장 가슴아파 하신 것은 자식의 전망까지 망친 것이다. 군(郡) 내에서 2등의 성적으로 중앙대학(김일성대, 김책공대)에 당연히 가야 할 자격임에도 막혔다.
심지어 지방 대학인 남포농업대학마저 문건(성분) 불합격이었다. 그 대신 검정으로 대학 자격증을 쥐었기에 가장 젊은 연구사로 되었다. 10여 년 걸리는 과정을 2년 만에 검정으로 마쳤기에 가장 젊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상처는 가셔지지 않았다. 더구나 감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것이다. 북한의 권력은 생산적인 일보다는 권력을 위한 감시가 진짜 일인 것이다. 남조선 방송을 들은 남 출신이기에 간첩이란 의심이 끊어지질 않는다.
60 정년을 앞두고 인생을 마감하려는 결심을 하신다. 간첩 성분이 되느니 도둑놈 성분이 차라리 나은 선택인 것이다. <이승만의 5·10 망국선거 반대> 지하 투쟁 경험이 풍부하시기에
습격(도둑질)을 기가 막히게 잘 하셨다. 주요 관공서에 어떻게 침투하였는지 물건들을 훔쳐다 웃방에 쌓아 놓으셨다. 웃방은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 훔친 물건들은 고스란히 보관만 되었다. 드디어 들켰다. 하지만 도둑의 본질이 아님에 당적(黨籍)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실패>를 교훈 삼으셨는지 두 번째는 방법을 달리하셨다. 도둑 현장에서 들켜 매맞아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는 맞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현장에 나타난 안전원(경찰)의 삼바리 오토바이로 이송되는 과정에 차체에 머리를 받아 지주막 출혈로 사망하셨다.
아버지가 도둑놈으로 죽으셔 너무 수치스러웠다. 연구소에서 가장 멋진 처녀 계정혜와의 첫 사랑을 물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게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인 줄은 점차 깨달아 간다. 북한에서 자살은 반역이다. 그 자녀까지 반역자로 연좌제로 걸린다.
아버지로서는 간첩의 혐의자 자녀로 되기보다는 또 그냥 자살자가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아버지가 남긴 말이 생생하다. "정치(공산주의)는 최대의 협잡이야!"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죽음>의 영향으로 모두 안 가는 저 북쪽으로 가게 된다. 그때는 예상을 못했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탈북할 기회를 못 얻었을 것이다. 신적(神的)으로 표현하면 그때 아버지는 '너는 저 북쪽으로 가라! 그리고 자유를 찾아라!'라고 하신 것 같다. 이것을 나는 <쉰들러 리스트>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묘사한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유대인들 앞으로 소련군 장교가 말 타고 나타나 가리킨다. <너희는 저기로 가라!> 그게 본향(本鄕)의 땅 이스라엘이었다.
정말로 이스라엘 국가는 2천년 만에 재탄생되었다. 정말로 북쪽으로 가는 통에 탈북하여 아버지의 본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유의 땅에서 아버지와 아들로서 대를 이어 말한다. '공산주의는 공상(空想)주의이다! 사회주의는 사기(詐欺)주의이다!'
정직한 공산당원의 말로(末路)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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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7, 2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