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윤석열이 아닌 자연인 윤석열이 애처로워 이 글을 썼다.
어제(11.30)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與, ‘전한길은 하나님 선물’ 尹 옥중편지에 “국민께 반성문부터”》
우리나라의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게 됐다. 정치의 본래 목적은 없어지고 정전(政戰)과 정술(政術)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이 논평자 역할까지 한다. 논평자나 구경꾼의 몫까지 앗아가는 여기에 초미세 먼지만한 동정심도 없다. 그러고서야 이 땅의 만민과 동물, 초목과 산해(山海)가 다스려질 리 만무하다. 여당이 “국민께 반성문부터”라고 한 인식 수준으로 보건대, 앞으로도 정치다운 정치는 있기 어렵겠다.
자기네 입장을 살리기 위해 국민을 끌어들인 것도 역겹지만 반성문 운운한 데서는 절망감이 든다. 타인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타인의 양심을 지배하는 짓이다. 과연 같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반성을 요구할 자격도 없는데 반성문까지 말했으니 그런 마음가짐에 정치다운 정치를 하겠는가. 윤석열은 1심 판결도 나지 않았다. 이재명은 대법원 유죄 환송에 국민께 사과하고 대통령질하나? 더민당이 몰인정한 발언을 해대면 도리어 이재명이 상처 입는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겠다. 윤석열이 죄인일지라도 그는 양심범이고 이재명은 파렴치범인데 이재명을 봐서라도 저럴 일이 아니다. 비평자에게 맡길 일을 정치가 하니까 저런 우를 범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전한길은 하나님 선물”이라 하든 말든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 기껏해야 인정 투쟁(認定鬪爭)이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더민당은 국민까지 불러 써서 타인의 발언을 조롱하는가. 저 말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은 더민당이 애용하는 ‘국민’조차 가타부타할 바 아니고 윤석열의 하나님만이 할 것이다. 국민은 그런 일에 불리어 가서 쓰이는 존재이지도 않다.
‘전한길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말에 부도씨(浮屠氏)는 냉소할 수 있고, 무신자(無神者)는 비소(誹笑)할 수 있고, 더러는 신앙심을 존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이 나온 바람에 공경하고 삼가는(敬謹)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더민당은 거봐라는 듯이 침묵하며 가만히 있으면 차라리 나을 텐데 굳이 저렇게 반응했다. 어디 찔리는 데가 있는가. 없다면 히스테리일 것이다 (부도씨·浮屠氏:불교 신자).(비소·誹笑:헐뜯으며 웃는 웃음)
사람이 급하면 누구나 ‘엄마’ 하듯 하나님도 부른다. 나는 탈장 수술을 받기 전에 하느님을 많이도 불렀다. 꼴란 수술에도 그러는데 감옥에 갇힌 사람이야 오죽하겠나. 오늘로써 144일 째 갇혀 있다. 갇힌 사람은 어디에고 기대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말했을 수 있고 이로 보아 신앙심으로 버틴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이르면 듣는 이의 귀엔 혹 거슬리더라도 남의 신앙심 때문에라도 못 들은 척하는 게 인간적이지 않겠나.
더민당은 대저 속이 좁다. 호승지벽 탓일 거다. 감옥에 있는 사람 곧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사람이 저런 말을 한 것에 대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릴 여유도 없어 보인다. 누가 잡으려 쫓아오나? 더민당이 자꾸 저러면 표현의 자유 압박을 넘어 입틀막 한다는 비판을 사게 된다. (호승지벽·好勝之癖:타인과 겨루어 이기기만 좋아하는 버릇)
원래 야당은 투쟁적이고 도전적이며 여당은 여유롭고 수세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야가 각각 거꾸로 논다. 국힘당은 투쟁적이지 못해서 망할 것이고 더민당은 투쟁적이라서 망할 것이다. 비록 투쟁심을 타고났더라도 타인의 신앙이 담긴 말 한 마디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다. 지금 더민당에 필요한 것은 면인정쟁(面引廷爭) 정신일 것 같다 왕조국가에서도 신하가 임금 앞에 서서 그러지 않았던가.(면인정쟁·面引廷爭:신하가 임금에게 기탄없이 말하고 임금과 쟁론함)
판사가 피고에게 징역형을 줄지라도 반성까지 요구할 권리는 없다. 반성을 하고 안 하고는 양심의 자유이다. 몇 해 전 신문에 난 일인데, 피고가 실형 선고를 받은 후 악에 받쳤든지 재판장에게 “징역을 주었으면 됐지 왜 나에게 반성까지 요구하냐.”고 항의했다. 이후 판사가 그러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사람이 나날이 깨어나고 이지(理智)가 발전하고 있음을 높다랗게 앉은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알고도 무시했을지 모른다. 더민당을 판사에, 국민(윤석열)을 피고로 대입할 수 있을 것인 바, 더민당이 저 판사처럼 반성 요구까지 하면 종국엔 국민에게 떠받치고 만다.
윤석열과 전한길 두 사람의 언행범절이 아름답다. 모르긴 모르되, 학자나 법관, 검찰, 의원 등이 해바라기처럼 이재명을 바라보며 줄을 대려고 난리도 아니다. 다른 구석에서는 이재명과 척을 지지 않으려 판사직을 내던진 판사도 있고 재판을 열지 않는 법원도 있다. 이 판국에 전한길은 갇힌 이를 위로하고 갇힌 자는 ‘하나님’을 말한다. 저 순일(純一)한 모습이 좋다. 윤석열에 대한 전한길의 절개, 하나님에 대한 윤석열의 절개이겠는데 이를 일러 고절(高節:높은 절개)이라 할 것이다. (순일· 純一:다른 것과의 섞임이 없이 순수한 것)
나는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에도, 검찰총장일 때도, 대통령이 되어 잘 나갈 때도 그를 “만세의 원수”라 했다. 때문에 여기서 비판도 당했다. 찬란했던 사람이 감옥에 갇혔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고통이 심할 것이다. 이제 저 말을 더는 하기 싫고 할 필요도 없어졌다. 정치인 윤석열이 아닌 자연인 윤석열이 애처로워 이 글을 썼다.
반성을 요구할 권리, 인간에게는 없다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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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1, 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