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들은 처음부터 민주적인 사람들이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에 대해 자유, 평등, 인류, 보편, 정의, 사랑 등 좋은 점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문재인과 이재명 정권의 운동권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가 거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특히 요즘의 이재명 정권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에 맞서 최루탄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들의 용기를 ‘민주주의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라 믿었다.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이 이 땅의 자유를 가져왔다고 굳게 신뢰했다. 하지만 그들이 ‘운동권’이라는 명패를 달고 주류 권력이 되어 보여준 지난 시간들은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들은 처음부터 민주적인 사람들이었는가?
이제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어쩌면 그들의 투쟁은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 기저에 깔려 있던 진짜 동력은 독재 타도가 아닌, ‘출세와 부(富), 그리고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에 대한 박탈감과 반발심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들에 대한 질투, 그리고 그 자리를 뺏어 차지하겠다는 권력 의지가 ‘민주화’라는 성역의 옷을 입고 위장했던 것은 아닌가.
이러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것은 그들의 ‘선택적 정의’다.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절차의 공정성과 보편적 인권을 생명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타협과 공존의 원리가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했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외침 역시 기만이었다. 그들이 ‘타도’를 외친 것은 강자의 횡포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강자를 끌어내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앉기 위함이었다. 그 증거로 그들은 권력을 잡자마자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기득권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 아니, ‘우리 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 어떤 불법과 비리에도 눈을 감아주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반대편의 티끌은 태산처럼 부풀려 단죄하면서도, 자기 편의 잘못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며 덮어버리는 내로남불의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법치’마저 유린했다.
자기 편이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 행태는 이제는 너무 당연한 운동권의 가치관이 되었다. 앞으로는 내로남불이라고 하지 말고 운동권스럽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가장 결정적인 위선은 이것이다. ‘북한 인권’ 앞에서의 침묵이다. 입만 열면 민족애를 부르짖고 인류애를 강조하던 그들이, 정작 동포가 겪는 지구상 최악의 인권 유린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독재에 저항했다는 그들이 세습 독재 정권의 참상에는 눈을 돌린다. 이는 그들이 말하는 인권이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철저히 정파적 이익을 위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우리는 착각했다. 그들이 독재와 싸웠기에 민주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순진한 오류였다. 그들은 그저 권력의 이동을 원했을 뿐, 권력의 속성 자체를 바꾸려 한 적이 없다. 이제 ‘민주화 세력’이라는 낡은 훈장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참칭(僭稱)하여 권력을 탐하고, 진영 논리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며, 보편적 인권마저 외면하는 위선. 이것이 바로 가면을 벗은 그들의 진짜 얼굴이다.
민주화라는 가면(假面), 위선(僞善) 덩어리의 좌파정권
- 소월하인(회원)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25-12-04, 04: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