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들이 오면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맞아들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그들의 주머니 속을 살폈다.
<누룩>
나이가 지긋한 사무장이 내게 말했다.
“의뢰인이 찾아와 저를 두들겨 패려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권투를 했대요. 그리고 변호사님을 위선자라고 욕을 해요.”
변호사는 감정 노동자다. 공감해주면 그들은 내가 변호사라는 걸 잊는다. 계산서를 내밀면 배신당한 것처럼 분노한다.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로부터 피해를 받은 여성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우리는 악마를 상대로 싸우는 데 동의했다. 승소했다. 나는 변호사비를 받았다. 얼마 후에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이 돈만 아는 나쁜 놈아. 두고 봐라.’
피해 여성들을 소개한 사람이 편지로 보냈다. 인터넷에 내 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료로 하는 척 위선을 떨더니 왜 뒤로 돈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같이 투쟁하는 동지로 착각했다.
대도라는 도둑이 있었다. 그의 석방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무료 변호였다. 방송진행자가 말하는 걸 들었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스타 범죄자를 만나 한번 뜨려고 하는 것 같네요”
유명한 탈주범의 무료 변호를 한 적이 있다. 마지막에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놈아”
법정도 냉랭했다. 나를 보는 판사의 눈에 위선자를 보는 비웃음이 비쳤다. 내 가슴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한 메이저 일간지의 컬럼에 내가 올랐다.
‘장교 출신이고 정보기관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가 어떻게 인권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위선자다.’
글을 쓴 논설실장은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들어준 일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가장 많이 먹은 욕이 위선자였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다.
의뢰인들이 오면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맞아들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그들의 주머니 속을 살폈다. 돈 냄새가 풍기면 문 밖 엘리베이터까지 달려가 허리를 굽혔다. 음식을 배달온 사람에게는 무관심했다. 내 밑에서 오래 일해온 직원을 투명 인간 취급했다. 그저 구석에 둔 소품같이 여겼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넨 기억이 없다. 순간순간 위선의 탈을 쓰고 있었다. 그게 탈인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타인의 욕은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의 나를 봤다. 탈을 쓰고 있었다. 한번은 그 탈을 벗어보려고 했다. 신학대학교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다. 연단 위에 섰다. 성직자가 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는 때가 가득 묻은 죄인입니다. 유혹을 견디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가 무릎을 꿇는 인간입니다. 연단에 서 있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을 끝내고 나가면 어둠 속에서 무슨 죄를 저지를지 모릅니다.”
강연이 끝나자 신학 대학장이 다가와 나의 손을 잡았다. 감동하는 눈빛이었다. 탈을 벗었는데 그 속에 있는 또 다른 탈로 그를 대했다. 예수가 말했다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누룩이 내 몸으로 들어가 나는 부풀어져 버렸다. 나는 그 속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십여년 전 수도자로 이름이 알려진 96세의 엄두섭 목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노환으로 작은 아파트의 구석방에 누워 있었다. 그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평생 일선(一善)도 못했어. 다 위선이야”
죽음을 앞둔 노인의 고백이었다. 나도 노인이 되어 동해 바닷가를 거닌다. 내가 위선자라는 걸 아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지금 쓰는 글 속에도 위선이 섞여 있을 것이다.
“이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놈아”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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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3, 1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