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부자가 수채가에 떨어진 밥알을 냉수에 씻어 손자들 보는 앞에서 먹었다.
<바위소금>
내 앞에서 먹던 그가 젓가락으로 얼른 내 냉면그릇 속의 계란을 가져다 입에 넣었다.
“어? 내 계란 왜 가져가?”
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남긴 거잖아? 아까워서”
그는 금융그룹의 회장이었다. 은행과 계열 금융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백년 동안 한국의 부자 명문가로 알려진 거부 김경중의 증손자였다.
에거트라는 미국 학자가 그의 증조부 김경중을 조선 최초의 프로테스탄트라고 논문에 썼다. 줄포에 있는 그의 초가집 앞 길에는 솥이 걸려있었다.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밥을 얻어 먹었다. 어느 날 그는 어린 손자들을 부엌 앞에 모이게 했다. 그는 수채가에 떨어진 밥알을 냉수에 씻어 손자들 보는 앞에서 먹었다. 조선 말 최고의 부자가 그랬다. 그의 증손자인 금융그룹 회장 부부와 차를 같이 타고 가다가 우연히 그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인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요새는 죽으면 전부 화장장에 가서 바로 태워버리는데 그 수의값이 아까워. 내가 죽어서 화장장에 갈 때 수의를 입고 괜히 돈을 쓰기가 싫어. 그냥 팬티만 입고 갈 거야.”
듣고 있던 부인이 말했다.
“그건 좋은 데 당신 저승에 가서는 조상님들을 만나 뵐 텐데 그래도 팬티 차림은 좀 그렇잖아?”
“그건 그러네. 평소에 입던 낡은 청바지 정도는 입고 가야겠네.”
나는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 회장을 잘 아는 친구가 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그 회장 부부 대학 시절 내가 봤지. 그때 양평동이 아주 변두리 외곽인데 거기 야학이 있었어. 천막을 쳐놓고 대학생들이 공장 다니는 아이들에게 영어나 수학을 가르쳤지. 그 부부가 야학 선생으로 만났어. 재벌가의 아들인데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야학의 천막이나 학용품을 다 댔어.”
소금 같은 짠돌이는 그 회장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유전자에 들어있는 것일까. 내가 형님처럼 모시는 분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항상 미소가 가득한 분이었다.
“형이 갑자기 죽었어요. 나보다 두 살 위인데 죽은 형을 생각하고 많이 울었어요.”
침울한 표정이었다.
“영정사진 속에 있는 형을 보면서 울다가 한편으로는 픽 웃었어요. 이번에 백억 원이 넘는 한강변 새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었거든. 들어가서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죽었어요. 노인이 된 나이에도 신던 운동화를 꿰매고 또 꿰매서 신었다니까요. 옷도 한철에 두 벌씩만 두고 그걸 갈아입고 살았어요.”
살만하면 죽는 건가.
“그런데 형님 상가에서 내가 울다가 웃은 이유는 거기서 형님 친구인 소금 삼총사를 보고서죠.”
그가 씩 웃었다.
“평생 형님하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두 분이 죠. 이분들도 돈이 많은 데 지독하게 짠 거예요. 우리 형님은 보통 소금이죠. 친구 중 한 분은 별명이 왕소금이예요. 지난달에도 친구 셋이 모였는데 시계가 오후 여섯 시를 가리키니까 벌떡 일어나 ‘자 이제 집으로 갑시다’라고 하더래요. 돈 쓰는 게 아까워서 집에 가자고 하는 거죠. 다른 한 분은 꽃소금이예요. 자기를 위해서는 돈을 아껴도 손자가 스마트폰과 갤럭시 패드를 사달라고 하면 무조건 다 사줘요. 딸한테는 아예 카드를 맡겨 놓는다니까요. 그러면서 자기는 점심에 싸구려 짜장으로 한 끼를 때우고 말이죠. 왕소금 꽃소금이 보통 소금인 형님 상가에 오신 거죠.”
부자에도 상재 중재 하재가 있다. 하재가 상위 부자가 된 걸 봤다. 그 중 하나가 다음 얘기의 주인공이다. 어려서부터 사귀어 온 동네 친구가 있다. 몇천억을 가진 부자가 됐다. 그는 길거리 좌판에서 싸게 파는 흠 있는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항상 등산용 조끼 차림이었다. 나는 그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가끔씩 기부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는 돈이 너무 아까워”라고 말했다. 얼마 전 그가 큰 수술을 받고 난 후 말했다.
“수술을 하고 나서 마음이 달라졌어. 내 빌딩 관리인에게 몇천만 원 줬지. 평소에 짜던 내가 그러니까 놀란 것 같아.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구. 갑자기 엎드려서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면서 나에게 넙죽 절을 하더라구.”
“소금이 불을 통과해서 죽염이 됐네”
내가 농담같이 말했다.
아내는 내가 ‘손이 굽었다’고 한다. 돈을 쓸 줄을 모른다는 의미다. 없는 집 아들인 나는 쓸 것도 아낄 것도 없었다. 늙어버린 지금 통장에 돈이 있어도 그건 그냥 숫자일 뿐이다. 나는 바위 소금이다.
‘네 안에 소금을 지니고 이웃과 화목하라’
친구들에게 밥을 자주 사야 하는데 나는 늙어도 쫄보다.
왕소금, 꽃소금, 보통 소금, 바위 소금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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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7, 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