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용이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는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억울한 옥살이’ 사례로 깨진 세종대왕의 ‘어린 백성’ 신화 -중증 장애인에 기준을 둔 사회시설을 지식사회에 적용

한국인에게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문의 ‘어린 백성’ 구절은 기독교인의 주기도문 그 以上으로 되뇌어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국민 대다수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고 모든 이의 國政 참여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어리석은 백성’이 국가의 ‘중심 話頭’가 되어야 함은 어색하지만 여하튼 어리석은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누구나 배울 글을 만들었던 바 지금은 국가의 모든 표현의 기준이 거기에 맞춰있다. 이로 인해 知的向上을 해야 할 중간계층의 앞길을 막게 되는 현상은 누차 거론된 바 있다. 그러면 과연 그토록 집중적인 보호를 받은 ‘어리석은 계층’은 억울한 일이 없게 되었는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면서 이십 년 옥살이의 피해자의 再審이 있었다.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청춘을 빼앗긴 한 인간의 고통에 대중은 분노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히 과거 부실 수사의 문제를 넘어 우리 국민이 오랜 시간 공고하게 믿어왔던 하나의 神話를 무너뜨리고 있다. 바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어린 백성‘ 즉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을 구제했다는 신화다.

필자는 事情에 의해 장애인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은 바가 있다. 해당교육 강사가 하는 말이 모든 사회시설은 最弱者를 위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次上位 弱者’도 편리하게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피의자진술서와 訊問調書(신문조서)는 한글로만 작성하게 되었다. 사회적 최약자(중증 장애인)를 기준으로 시스템을 맞추면 모두가 편해질 것이라는 이른바 유니버설 디자인的 思考가 언어 정책에도 반영된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쓰기 편한’ 한글전용이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는가. 결론을 알고 나서 뒤늦게 세심하게 살펴본 화성사건 누명피해자의 진술서에는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불과했던 피해자의 수준에 맞지 않는 세련된 문어체와 한자어 표현 등 불러준 대로 받아쓴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누군가의 압력이 있었음이 추정되었지만 법원과 사회는 쉽사리 이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모든 언어적 표현을 한글이라는 하나의 평평한 틀로만 규격화해 놓으니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쓴 글인지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쓴 글인지 언어적 개성과 수준의 차이가 얼른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획일화된 한글체계가 피해자의 무고함을 증명해 줄 學歷과 知的水準의 端緖(단서)를 지워버려 억울한 옥살이를 방조한 것이었다.

본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취지는 무조건적인 문자 통일이 아니었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은 쉬운 언어를 쓰게 하되 知的 상위계층과 학자들은 더 깊은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배려한 구조였다. 언어정책이 지적 하향평준화를 강요하여 품격 있는 談論을 제한당하니 사람들은 자신의 미묘한 감정이나 정교한 논리를 나타낼 어휘력을 잃어 意思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면 욕설이나 거친 표현으로 분출하곤 한다. 국가는 이런 현상을 물리력으로만 막으려 하니 국민은 어디에 전화문의를 하거나 공공시설을 이용하려면 욕설하지 말라는 예비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훈계를 받아야 한다.

진정으로 억울한 백성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단순히 제도를 보여주기 式으로 만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인의 지적수준과 언어취향이 그대로 담길 다층적 언어토양을 회복해야 육백년 전 세종대왕이 꿈꾸었던 진정 제 뜻을 펴고 사는 모든 백성들의 나라가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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