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언어는 형식 그 자체가 중요하다

왜곡된 표기법으로 전통언어의 틀을 무너뜨리는 것은 민족정신과 국가체계의 파괴이다. 근대 이후 우리 문단의 일률적 한글강제에 따르지 않았던 작가 張龍學은 ‘우리의 문학을 하기 위하여 한글로만 문학을 해야 한다’는 자들에 相對하는 인터뷰에서 ‘그 나라 문학의 정신은 그 나라의 문학에 담긴 思想에 있지 글자에 있지 않다. 설령 우리가 로마字를 쓴다 해도 문학에 담긴 정신이 우리의 것이면 우리 문학이다.’고 했다.

張龍鶴의 견해는 순수한 문학의 관점에서는 옳았다. 한국어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러시아문학이지 한국문학이 아니다. 하지만 對蹠者(대척자)들이 ‘한글문학’을 고집한 것은 실상 한국문학을 이어가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소설을 이용하여 韓民族을 ‘개조’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글소설’은 ‘한 나라를 바꾸려면 그 나라의 소설을 바꿔야 한다.’는 중국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일본에 망명한(1898~1912) 이후 日帝의 문화정책(1919)에 따라 한국현대소설의 樣式이 정착한 후 계속 이어지는 것이었다. 對蹠者들의 ‘한글문학’ 追驅는 張龍鶴에게 질타를 받는 그런 억지주장이 아니라 민족의 언어형식을 파괴하려는 철저하고 치밀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한글문학’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언어의 형식이 아닌 것이다. (그 以前 新小說까지는 설령 ‘한글’로 씌어졌다 하더라도 ‘한글語彙’는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종호 等 대척자들은 장용학에게 이론적 반박을 하지 않고 ‘억지주장’의 굴레를 벗으려 하지 않았다. 이미 문화적 ‘權勢’를 쥐고 있는데 굳이 논리적 승리가 아쉽지 않았으며 또 만약에 그들의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表露한다면 ‘민족진영’에서도 같은 근거를 찾아 방어에 나설 것을 우려했기에 그들은 知而不言하며 오직 그들의 목적을 향하여 왔던 것이었다.

맑스 思想의 뿌리인 헤겔은 『정신현상학』 의 ‘文化敎養과 現實界’ 단락에서 ‘國權에 관련한 언어의 內容은 形式自體이고 言語自體이며 言語規則이 된다.’고 하였다.

“倫理秩序界에서는 法律과 命令으로서 現實界에서는 商議하는 狀況이어야 言語는 要素를 內容으로 가지며 內容의 形式이 되지만 여기서 內容은 形式自體이고 言語自體이며 言語規則이 된다.”
—『精神現象學』 (朴京範 譯, 恩範商會, 2024年 - 340面)

이렇게 언어의 형식은 國體의 유지에 절대적인 요소이다. 그렇기에 어느 민족의 국권과 문화정체성을 해체하려는 외세나 반대세력이 최우선이자 최대로 공격하는 표적은 언어이다. 醫師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기관으로 심장을 가리키듯 헤겔은 민족과 국가라는 보편 공동체를 받치는 핵심적인 기둥이 언어(Sprache)임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우리 근대사에서 이 사실을 먼저 학습한 자들은 ‘醫師’가 아니라 이 나라 이 민족을 말살하고 국권을 빼앗으려는 ‘强盜’들이었다. 민족의 연속성을 단절하려는 세력이 먼저 그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醫師가 심장을 보호하기 전에 强盜가 먼저 심장을 공격한 格이었다. 민족파괴 집단이 먼저 민족의 생명줄을 알아내고 그에 對한 파괴를 해왔고 민족을 지켜야 할 쪽에서는 해당되는 지식이 없었으니 지금의 결과가 나왔다. 지금이라도 생명을 지키려는 쪽에서 생명줄에 관한 지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언어의 형식을 지킨다는 것은 한 공동체가 오래 축적해 온 정신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제라도 민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모든 이들이 헤겔이 파악했던 언어 형식의 중요성을 知覺하여 韓民族 언어의 正形을 지켜야 할 것이다.

通常的 思考로 언어는 단지 ‘뜻만 통하면 되는 전달도구’ 혹은 ‘의미를 담는 껍데기’로 간주된다. ‘학교라 부르든 스쿨(School)이라 부르든 뜻만 통하면 그만’이라는 ‘실용주의적’ 思考는 언어가 가진 민족적 역사적 實體性에 無知한 所致다. 헤겔은 국가와 민족의 실체인 언어의 내용은 형식 자체이고(Inhalt ist die Form selbst) 언어 자체이며 언어규칙 그 자체라는 的確하고도 위대한 명제를 設定한다. 일상적 인간관계와 사회적 거래에서 언어는 법률로서 명령으로서 혹은 이익을 다투며 상의하는 수단으로서 機能한다. 이때는 특정의 목적이나 용건을 전달하는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인이 利己와 主觀을 버리고 국가라는 보편적 실체에 영혼을 바치는 단계에 이르면 언어의 性格은 달라진다. 여기서 國紀의 본질은 언어의 含意(무엇을 전달하는가)가 아니라 어떠한 형식과 규칙에 따르는가이다. 國家公共 장소에서 민족고유의 형식과 규칙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변질어휘와 외국어를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곧 그 국가의 魂이고 正體性이다. 언어는 단지 思想을 담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精神이 현실에 존재하는 형식 자체이다. 어느 민족이 오랜 기간 사용해 온 문자와 표기법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각 時代의 지식체계와 개념구조가 축적된 歷史的 形式이다.

한국어에서 漢字表記와 縱書의 構造를 함부로 폐지하고 억압하면서 의미표현이 曖昧(애매)한 한글표기를 강제하는 것은 글자표기를 바꾸는 階梯(계제)를 넘어 民族精神과 國體의 단절이다. 언어의 틀이 달라지면 그 언어를 쓰는 민족의 의식구조도 해체되고 사라진다. 헤겔에 따르면 언어는 假飾이나 回避가 불가능한 순수 자아의 함유체이며 주관적 내면에 갇혀 있던 自意識을 타자에게 定立시키는(對他存在化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媒介이다. 국가와 민족을 이끌고 묶어세우는 힘은 강제적 물리력이 아니라 언어에서 나온다. 왜곡된 표기법으로 전통언어의 틀을 무너뜨리는 것은 단지 문자의 변화가 아니라 민족정신과 국가체계의 파괴이다. 韓民族 언어가 지녀온 전통적 형식을 올바르게 지켜내는 것은 우리의 국체와 민족혼의 영원한 實存을 위한 崇高한 철학적 국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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