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현실을 보고도 정반대로 말하는 작가들/게으른 노동자들을 보는 두 가지 시각.
프랑스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였던 앙드레 지드는 1936년 6월 17일 소련 작가 막심 고리키 문병을 위해 동료 작가 6명과 같이 소련에 도착, 장례식에 이어서 한 달에 걸쳐 소련 작가 동맹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각지를 여행했다. 만민 평등의 이상적인 사회가 소련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본 소련은 지상낙원이 아니었다. 지드는 돌아와 1936년 11월에 출간한 ‘소련 방문기(Retour de l’URSS)’에 소련의 인상을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소련은 노동자의 빈곤, 급료의 엄청난 격차, 부활한 특권, 비밀 경찰 제도의 강화와 민주의 소멸로 사회주의 10월 혁명 정신의 모두를 잃어가고 있다. 3개월 만에 150만 판의 ‘소련 방문기’에 이어 지드는 1937년 6월 ‘소련 방문 수정기’도 출간한다. 이런 시도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 소련 비판은 금기, 거의 자살행위였을 정도로 지식인 사회가 좌편향이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예전 소련 예찬자였던 지드는 단 한 달 남짓의 여행 기간 동안 소련 당국이 자랑하려고 보여주는 각종 이면에 숨은 보이지 않는 모순을 꿰뚫어보았다. 지나친 환대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매수의 꼬리표이며 이에 넘어가지 않았음을 자랑스러워했다. 한편 이 환대는 너무나 비참한 일반 소련인들에 비해 지나친 것이며 평등의 나라에서 특권과 차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지드는 ‘지난 3년 간 마르크스주의 서적에 몰두해 있었는데 정작 소련에 와보니 그 차이가 엄청난 것에 너무 놀랐다. 거리와 모든 사람이 거의 같은 스타일, 같은 색의 옷, 전혀 개성이 없었다. 어느 집이나 모두 똑같은 초라한 가구에 스탈린 초상이 걸려 있었고 그 밖에는 사소한 개인 물품도 없다. 행복은 비(非)개성화에서 얻어지는 듯했다. 모두가 서로 닮고 생각도 일치해야만 한다. 한 사람과 얘기하면 전 소련인과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최초의 인상은 놀라울 정도의 느긋함인데 그 이유는 매일 아침 프라우다 신문의 가르침 범위를 벗어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편 외부와의 접촉을 철두철미 차단하여 다른 나라보다 더 행복함을 가지도록 만든다. 그 덕분에 프랑스 노동자와 비교해 열악한 생활 조건하에서도 오히려 자기들이 더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소련인에게는 ‘우월 콤플렉스’가 생겨나고 있다.’
그러면서 지드는 사람이란 오랫동안 결핍된 상태에서 지내다 보면 사소한 물건에도 만족하는 법이라면서 또한 이웃이 자기가 가진 것 이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이라고 쓴다. 모든 물건들은 마치 사람들의 사고 싶은 욕망을 없애기 위해 되도록 볼품없게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꼭 필요해서라면 모를까 기호로 사는 일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호라는 것은 비교가 가능할 때 비로소 세련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소련처럼 비교 여지가 없는 곳에서는 어려운 일이며 결국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지드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던 소련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면서 이런 단호한 표현을 사용한다. 현재 소련 인민들은 모두 순종과 찬성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특히 지드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거론하지 않던 시베리아 수용소의 유형수(流刑囚)에 대해서까지 언급한다. 머리 숙이지 않아 시베리아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혜안에 가득 찬 지드의 책들이 10월혁명이 일어난 지 채 20년도 안 되는 시점에 나왔다. 그만큼 소련이 혁명 초심을 빨리 잃고 망가졌음을 예리하게 파악해 내서 용감하게 세상에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지드의 책이 나온 지 10년 후인 1946년 8월, 이번에는 북조선 작가들이 소련을 석 달간 방문한다. 이태준, 이기영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다. 이들은 정반대의 방문기 책을 낸다. 이태준, 이기영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다. 이들은 지드의 책과 정반대의 방소 인상기와 소련 기행 책을 낸다.
당시만 해도 월북작가의 글이 남한 언론에 실리던 시절이었다. 이기영은 남한 언론에 쓴 <방소 인상기>에서 특히 지드의 책을 거론한다. 지드가 비판한 소련을 오히려 발전된 인민의 나라에서 만백성이 즐길 줄 아는 나라라고 한다.
이태준은 더 나아가 ‘소련기행’이라는 180쪽의 긴 기행문 책을 남기는데 거기서도 이기영처럼 감탄하고 환대에 감격한다.
<참으로 황홀한 수개월이었다. 인간의 낡고 악한 모든 것은 사라졌고 새로운 생활, 관습, 문화의 세계였다. 마치 영원한 안정체 바다로 향해 흐르는 대하처럼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태준은 이렇게 쓴다.
<문을 당겨 주고 짐도 부려주나 오직 사무적인 딱딱한 표정에 굽신거림이 없기 때문에 나도 그들에게 미안함이 없다. 식당에서 차를 가져오고도 설탕 그릇이 비어있다. 이를 말하기 전에는 먼저 알아내는 적이 적다. 채근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천천히 무거운 걸음으로 가져온다. 미안하다고 덤빔으로써 손님이 무안해 할 일은 조금도 없다.
손님의 비위를 맞추려 굽신거려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태도가 편하고 정이 든다. 호텔 밖에서 구두 닦는 사람을 보았기에 다시 나와 보았으나 없다. 이런 것들이 과연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 밤에도 상점들이 문을 열고, 늦도록 구두 닦는다면 그들의 가족과 즐길 시간을 뺏는다. 이런 사회가 정말 편한 사회일까?>
지드와 이기영, 이태준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지드는 소련 방문기간이 한 달이고 이기영, 이태준은 석 달이다. 하지만 본 관점은 정반대로 나타낸다.
방문단에 대한 매수적인 지나친 환대를 지드는 평등 사회에서 특권과 차별로 인식했고 이기영은 감탄, 이태준은 황홀해 한다. 지드는 소련인들의 게으름으로 나타나는 의욕 부족, 개성 상실, 희망이 없다고 보는데 이기영과 이태준은 영원이 안정된 바다로 가는 발전 과정으로 본다. 또한 서비스 태도가 나쁜 것도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함을 주지 않게 한 것으로 자위한다. 상점 문을 일찍 닫고 구두 닦는 일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퇴근하는 것도 그 가족을 빨리 만나는 행복으로 그래야 한다고 긍정한다.
공산주의는 사람이 사람을 부리는 것을 착취로 본다. 일한 대가를 주어도 잉여가치론을 거론하며 착취한다는 것이다. 호텔 문을 열어주고 짐을 부려주고 식당에서 차를 가져다 주는 것도 착취에 해당된다. 그러니 설탕을 잊고 차를 갔다 주어 채근하여 마지못해 갖다 주듯 느긋해도 착취를 하는 미안함으로 오히려 그들이 잘된 행동으로 위안한다.
그러면 사람을 어떻게 부려야 하는가? 오직 개인이 아닌 국가적 단체가 해야 한다. 여기는 잉여 가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세금이 없고, 무료 교육, 무상 치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먼 소련이 아니라 이기영, 이태준의 공산 나라 북한을 놓고 보자. 공산농장원 일인이 옥수수 기준 최대 생산량은 20톤이다. 하지만 배급은 그 백 분이 일인 200kg이다. 99%를 국가가 착취하는 꼴이다. 일을 많이 할수록 손해 본다. 왜냐면 일한 대가의 기본 가치인 식량 배급은 고정되어 있고 일을 많이 한 초과분은 월급으로 준다. 이 월급의 가치는 하루 분의 식량 가치밖에 안된다. 즉 한 달 월급으로 쌀을 사면 하루 분의 가치라는 소리이다.
북한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이해가 안 갈 것 같아 다시 설명한다. 북한에서 일한 대가는 돈(월급)이 아니라 식량 배급이다. 일단 식량 배급은 출근하면 준다. 출근하지 않으면 배급을 주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출근해야만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북한에서 딱 맞는 말이다. 먹는 것 가지고 짐승 다루듯 꼼짝 못하게 통치하는 식량 배급제이다. 이 식량 배급은 일을 많이 해도 더 주지 않는다. 대신 월급으로 준다. 그 월급은 하루 분의 쌀 가치밖에 안된다. 한 달 일한 급료로 쌀 한kg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돈(월급)이 아니라 식량 배급에 매이게 만든 공산 시스템인 것이다.
잘했든 못했든 출근하면 식량은 나오니 일은 게으름 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기에 지드이든 이기영·이태준이든 소련인들의 느긋한 태도는 일치하게 목격한다. 왜 그런지 원인만 다르게 평가할 뿐이다.
일을 게으르게 해야 상책이니 생산이 안된다. 극심하게 가난해지는 원인이다. 생산된 제품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지드가 말한 기호 없는(개성이 없는) 제품들인 것이다. 이를 감추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철두철미 폐쇄를 한다. 방문객에게는 지나친 환대로 매수를 한다. 이 매수에 넘어가지 않는 방문객이 공산 국적이라면 숙청 감이다. 아마도 지드가 프랑스 사람이어서 다행인 것이다. 이기영, 이태준은 공산 북한 국적이기에 살아남지 못했을 조건도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추후 이태준은 무(無) 정치적 글을 쓴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게으르게 만들고 폐쇄하여 유지하던 공산 국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산종주국 소련은 70년 만에 붕괴되었다. 북한이 마지막 공산국가라고 하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훨씬 전에 붕괴되었다. 남한 식으로 보면 1970년대에 무너졌다. 서울 백화점들에 물건이 텅텅 비어 있다면 망했다고 할 것이다. 북한의 모든 것을 털어 보장하는 평양의 백화점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필자의 일기장에 분명 기록 되어있다. 1977년 1월 9일 자 나의 일기장인데 현재 세계적 기록 보존소인 후버 연구소에 기증되어 있다.
북한에서 식량 배급이 비정상적인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이다. 그 열악한 옥수수 배급마저 제대로 주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묘하게도 이밥에 고깃국 준다고 한평생 떠들던 김일성이 죽은 1994년에는 식량 배급이 딱 끊어진다. 전쟁도 아닌 평화시에 300만이 아사되었다고 북한의 정신, 주체 사상을 만든 황장엽 노동당비서가 탈북하여 증언한다. 공산북한의 근간인 식량배급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니 망한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망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공존공영으로 포장한 햇볕정책 때문이다. 식량 배급이 끊어 진지 30년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하다. 핵과 미사일만 늘어났다. 그래도 일편단심 햇볕이다.
앙드레 지드와 이태준·이기영의 소련 방문기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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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30, 0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