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살하지 않았어. 살해됐어”

사람은 죽어도 그 영(靈)은 계속 존재하는 것일까. <죽었으나 떠도는>

이상한 동영상이 카톡을 통해 내게 날아왔다. 울긋불긋한 그림이 가득한 신당 앞에 진한 화장을 한 무당이 앉아 있다. 무당은 죽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저승에서 불러내고 있었다. 죽은 영(靈)에 빙의된 무당이 말하고 있다.

“어둠 속의 그림자가 ‘제발 잘 가라’ 하고 독극물이 든 주사를 내 척추에 찔렀어. 나 자살하지 않았어. 살해됐어.”

나는 죽은 시장과 같은 빌딩의 위아래 층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었다. 함께 ‘아름다운 가게 1호점’을 만들기도 했었다. 장례식 일년 후쯤 박 시장의 부인과 만난 적이 있다.

“방에 혼자 앉아 있는데 몸이 이상했어요. 남편의 영이 찾아왔어요. 통곡하면서 너무 억울하다고 했어요.”

시장 부인의 눈에는 한이 서렸다.

“길을 가다가 멀리에 서 있는 남편을 봤어요. 평소에 메던 등산배낭에 등산화 차림이었어요.저는 남편의 죽음을 의심하고 있어요. 죽은 남편의 입술 부위가 왜 그렇게 찢어지고 색깔이 변해 있는지 알 수 없어요. 목을 매달아 자살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예요. 부검조차 하지 않고 그렇게 빨리 화장해 버린 이유를 알 수 없어요.”

나는 두려웠다. 용기가 없어 침묵했다. 죽은 박 시장이 나의 꿈에 나타났다. 적막한 종로 거리였다. 도로 위 저쪽에서 말 한 마리가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청동판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할 만큼 단단해 보였다. 그 말이 죽은 박 시장이라는 텔레파시가 내게 왔다. 그 말은 내 옆을 스치면서 방향을 꺾어 옆 골목으로 사라졌다.

사람은 죽어도 그 영은 계속 존재하는 것일까. 죽음학을 전공하는 최준식 교수를 그의 왕십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었다.

“사람이 바닷물 속에 들어갈 때 잠수복을 입죠. 그리고 우주공간에서는 우주복을 입어요. 우리 영혼이 지구에서 살 때 필요한 옷이 우리 몸인 거예요. 그 영혼은 의학적인 뇌사상태와도 상관없어요. 몸에서 빠져나와 죽은 자기를 보니까요. 그런 체험이 의학적으로 인정되고 있어요.”

예수는 우리가 죽으면 새로 맞이하는 세상에서 영혼이 새로운 옷을 입는다고 했다. 내가 변호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철강 재벌로 알려진 유명한 분이 아들을 통해 두꺼운 소송기록을 보내 검토를 부탁했다. 밤을 새워 기록을 읽고 보고서를 썼다. 나름 정성을 다 했다. 그 보고서를 가지고 회장의 집으로 갔다.

넓은 잔디밭 뒤에 웅장한 석조건물이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회장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공손한 자세로 브리핑을 마쳤다.

“됐네, 알았어. 가봐”
그 한마디였다. 나는 얼떨떨했다. 그냥 나가면 병신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일진인 그의 아들 칼에 맞았을 때부터.

“일을 시키셨으면 품값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회장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까진 이마에 탁한 누런 빛의 눈이었다.

“뭘 그 정도 한 걸 가지고? 나 지금 지갑에 수표만 있지 현찰이 없어서.”
안 주겠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살아오셨습니까?”
“뭘 이렇게 살아와?”

그가 맞받아쳤다. 같잖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돈 한푼 받지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몇 년 후 신문에서 그가 죽었다는 부고를 봤다. 몸과 부자라는 두 겹의 옷을 벗은 그에게 남은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최준식 교수는 “때로 물욕이 강한 사람의 욕망은 사념체(邪念體)가 되어 허공에 남을 수가 있죠. 그걸 우리가 귀신이라고 말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회장의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수백 명의 회사원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이상했다. 분위기가 너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영정사진 속에서 그가 부루퉁한 얼굴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사셔야 했습니까?’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퍽’하고 뒤에서 누가 내 머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번쩍 떴다.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였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 보며 침묵했다.

누가 나를 때렸을까? 죽은 그 회장이 나를 때린 것 같았다. 귀신은 몸이 없다는데 어떻게 물리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시장의 영도 그렇게 몸 없이 종로 골목을 떠돌고 있었던 걸까. 나는 지금도 동영상 속의 붉고 검은 색깔의 섬찟한 신당이 떠오른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들은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다’
시장과 회장은 아직도 한과 욕망으로 떠돌고 있는 것일까.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