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된 사실’을 왜곡하여 영화의 핵심 모티브로 삼는 것은 창작이 아니다.
필자는 영화 <암살자(들)>은 역사 왜곡과 패륜도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의 비겁한 변명에 더 화가 난다.
허진호는 역사 왜곡 논란이 발생하자, “어떤 결론을 내기보단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의문점들을 계속해서 질문해 가는 영화”라며 “영화는 영화로 봐 달라”고 했다. 육영수 여사의 저격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고 확신하지 않았다며 영화 속 “중정 윗선”이라는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며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했다.
참 비겁하고 야비한 변명이다.
허진호와 제작진은 특정 배후를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박정희를 배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확정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부터 시작해서 영화 속 대사들이 이미 감독이 결론을 정해 놓고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에게 주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목부터 보자. <암살자(들)>이다. ‘암살자’도 아니고 ‘암살자들’도 아니다. ‘(들)’에서 벌써 배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관객들은 제목만 봐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한다. 특이한 행태의 제목에서 이 영화의 방향과 결론을 예측할 수 있고, 제목에서 암시받은 것에 맞춰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관을 떠나면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답을 받아가게 된다.
백번 양보해 그런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허진호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은 허진호의 주장이 한갓 허접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장 이 영화 시사회를 다녀온 배우들의 발언과 글들을 보라.
박병은 — “아프지만 진실은 이긴다”
임수향 — “진실을 찾아가는 숨 막히는 시간들”
김은희 작가 — “'진실.' 암살자(들)을 응원합니다”
김병철 — “진실과 현재 그리고 미래!”
김유미 — “진실… 누가 암살자인가”
허진호의 변명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결과는 변명과 정반대라는 사실을 허진호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허진호는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고, 기록에 남은 의문을 영화적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건 자신이 실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주입하고 싶었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거나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중정 윗선”이라는 대사에 대한 허진호의 해명도 이해할 수 없다.
허진호 감독은 영화 속 “중정 윗선”이라는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정보부 내부의 권력투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중정 윗선”이라면 당시에는 의당 최고 권력자(대통령)를 의미하지 어떤 다른 권력기관이 있을 수 있나? 경호처는 중정 윗선이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권력기관일 뿐이었고, 중정 내부의 권력투쟁이라고 하면 중정부장과 중정부장 이하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지 어떻게 중정 윗선이 되는가?
허진호는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고 하지만, <암살자(들)>은 단순히 영화로 볼 수가 없다.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그 대상에서 특정 사건(역사)이나 특정 인물이 예외여서는 안 되며 어떤 성역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감독이나 작가가 지켜야 하는 선이나 룰이 있다. 감독이나 작가는 ‘확정된 사실’, ‘논란이 되고 문제가 되는 의혹들’,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된 허구’를 섞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의혹들에 대해 치밀하게 추적하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 상상력을 동원해 영화의 밀도를 높이거나 몰입감을 배가하는 장치로 사용하는 허구는 얼마든지 창작하고 표현해도 되지만, ‘확정된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특히 영화의 핵심적인 모티브가 되는 ‘확정된 사실’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로 보장받을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감독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영화는 “근데 부장, 문태광(문세광)이 제압당한 뒤에 총성이 또 울렸었거든요.”이라는 이 대사에서 출발한다. 이 대사는 이 영화를 시종일관 이끄는 핵심적인 의혹이고, <암살자(들)>은 이 의혹을 푸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사는 문세광이 제압된 후에 울린 총격(총성)에 의해 육영수 여사가 피격 당했다고 암시한다. 문세광이 아니라 제3의 인물(중정 요원?)이 일부러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는 뜻이다.
문세광이 제압된 뒤에도 별도의 총성이 있었고, 그 총탄이 육영수 여사를 맞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영화의 핵심적인 미스터리로 설정했다.
그런데 이 대사가 암시하는 내용은 명백한 왜곡이고, 거짓이다. 육영수 여사는 문세광의 네 번째 총격으로 사망했다. 첫 발은 총을 꺼내다 오발로 자신의 허벅지를 쐈고, 두 번째는 박정희 대통령이 연설 중인 연단에 맞았고, 세 번째는 불발, 네 번째가 육영수 여사의 머리를, 다섯번째는 행사장 중앙에 있는 태극기를 맞았다. 문세광이 제압된 후에 들린 총성은 경호원들의 총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호원이 쏜 총격으로 합창단으로 참여한 여고생이 피격되어 사망했던 것이고.
이런 상황은 당시 중계되었던 영상을 보아도 확인된다. 문세광이 제압되기 전, 그리고 경호원의 총격이 있기 전에 이미 육영수 여사는 피격되어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저 대사는 문세광이 제압된 후에도 육영수 여사는 피격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으로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문세광 1차 총격 : 10시 25분 24초, 오발로 자신의 허벅지를 맞음.
문세광 2차 총격 : 10시 25분 30초, 대통령 연설 연단 상단 2/3 지점 맞음.
문세광 3차 총격 : 10시 25분 31초, 불발.
문세광 4차 총격 : 10시 25분 32초, 육영수 여사 머리 관통.
문세광 5차 총격 : 10시 25분 33초~34초, 참석자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태극기에 맞음. 이후 바로 문세광 제압당함.
경호원 총격 : 10시 25분 45초, 합창단으로 참석한 여고생 장봉화가 맞음.
문세광이 오발한 첫 발사 이후 두 번째 발사부터 다섯 번째 발사까지는 순식간에 연달아 일어났고, 마지막 경호원의 발사는 문세광의 발사가 모두 끝난 후 약 10초 뒤에 일어났다. 문세광이 제압당한 뒤 울린 총성은 경호원에 의한 것이고, 이 총격이 육영수를 맞힌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대중들을 호도하기 위한 간악한 술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무려 10초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시간적 간격을 인식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귀와 눈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확정된 사실’을 왜곡하여 영화의 핵심 모티브로 삼는 것은 창작이 아니다. 불순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증거이자, 허진호의 변명이 거짓이라는 증거이다.
‘확정된 사실’ 모두를 감독이나 작가는 알 수 없으며, 사소한 ‘확정된 사실’을 잘못 알거나 왜곡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적인 기제로 작용하는 ‘확정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확인하지 못했다거나 잘못 알았다고 변명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영화의 핵심적인 내용(사실)을 확인하지 않거나 잘못 알았다는 것은 감독이나 작가의 실수이거나 불찰이라고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순한 의도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확인하지 않거나 잘못 알았다고 변명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혹자는 총성이 6~7번 울렸으며, 탄피는 4발 밖에 수거되지 않았고, 7발 중에 1발의 총흔은 확인하지 못했다며 이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한다.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타깃으로 해 박정희 대통령을 쏘았는데 박정희 대통령과 떨어져 앉아있던 육영수 여사를 맞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총성이 6발이 울렸는지, 7발이 울렸는지에 따라 문세광의 총격에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사실이 바뀌는가? 탄피를 4개 밖에 찾지 못했다 하여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사실이 달라지는가? 7발 중에 1발의 총흔을 찾지 못했다고 하여 육영수 여사의 사망의 원인이 문세광의 총격이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가?
자신들이 제기한 의혹과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지 않았다는 것의 연관 관계는 하나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수사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이 마치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아니라 제3의 인물에 의해 피격된 증거인 것인 양 떠드는 작자들의 뇌회로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문세광의 첫 번째 발사였던 오발이 있자 그 때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모르고 있다가 두 번째 발사가 박정희 대통령이 연설하는 연단에 피격되자 경호원이 뛰어나오고 주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문세광을 제지했으니 세 번째 발사부터는 문세광이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거나 제지에 의해 타깃과 다르게 총알이 날아가 육영수 여사가 맞고 태극기가 맞았던 것인데 이를 제3의 인물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것으로 의심하는 증거로 보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허진호가 비겁해 보이는 것은 차인표의 처신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차인표는 할리우드 영화사로부터 북한군 대령으로 출연을 요청받자, 대본을 보고 북한을 비하하는 역이라고 판단하고 출연을 거절했었다. 고액의 출연료를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포기한 것이다.
허진호도 자신의 목적과 의도를 당당히 밝히고 논란에 당당히 대처하거나, 비평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될 인데 허접한 변명으로 소신을 지키지도 못하고 용기 있는 사과도 하지 못한 그냥 상업성만 추구한 딴따라 감독으로 전락했다.
지식인연 하는 사람들이나 진보연 하는 사람들은 역사문제만 나오면 단재 신채호가 이야기했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이 말은 단재 신채호가 한 말도 아니고 처칠이 한 말도 아닌데 출처도 잘 모르면서 우리나라에서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역사라 믿는 국민들이 태반인 현실을 보면, “영화를 보고 역사를 아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을 국가 정책으로 밀어붙인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나라에서 “영화는 영화로만 봐 달라”는 허진호의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⑥ 朴正熙 저격, 陸英修 피살>
허진호 감독은 비겁하다
- 류종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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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1, 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