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確證偏向을 자극하는 人士 다수는 인문학 전공자, 참된 인문학의 不學에 따른 主思派的 思考.
1974년 8월 15일의 총격사건은 사건 직후부터 음모론의 소재가 되었다. 문세광은 진범이 아니라든가 심지어 권력 내부의 企劃이라는 說들이 茂盛했다. 당시의 사건배경인 경호의 허술함 그리고 보안에서의 연이은 실책을 보면 당혹스러울 정도지만 一角에서 사건의 원인을 누군가의 계산된 意圖에 따른 거대한 陰謀로 보는 상황은 多分히 인문학적 연구대상이다.
이는 8·15 총격사건에만 局限되지 않는다. 대구지하철화재와 세월호 침몰 사건 역시 비극 完成機制의 평행이론을 보여준다. 음모론적 視角으로는 이들 사건이 누군가의 工作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理解 못할 연쇄실책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할 만하지만 인간 社會體系의 局地的 균열들이 최악의 순간에 일직선으로 맞아떨어지며 일어난 총체적 붕괴라고 봐야 한다.
8·15 총격사건에서는 일본 파출소의 총기 도난, 라디오內 隱匿 銃器의 공항 통과, 고급승용차를 탄 外賓行世에 따른 無檢問, 대통령 도착 직전 혼란 속의 無秘標 통과, 지시 없이 행동 말라는 경호실과의 압도적 位階秩序 때문에 사건발생시 섣불리 몸을 날리지 못한 경찰 等 연달은 부적절한 대처가 이어졌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건도 放火된 객차 승객 全員의 義俠心 不在, 역무원과 기관사 간의 통신 부재, 마스터키를 뽑고 대피해 버린 기관사, 異常狀況인데도 停車한 반대쪽 열차, 가연성 내장재와 재난 매뉴얼의 부재 等의 악조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세월호 침몰사건 또한 무리한 증축과 過積, 항해중의 급격한 變針 等의 물리적 악조건에 더해 선장과 선원들의 비겁한 탈출, 승객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잘못된 안내방송, 신속하고 果敢하지 않은 구조활동 等 도덕적 악조건이 동시에 엮인 결과였다. 모두가 인간은 세상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으며 사회적 체계는 언제든 붕괴할 수 있음을 보이는 事例이다.
인간 개인의 정신건강을 지키고 인간의 사회체계를 건강히 유지하기 위해 인문학은 필요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오늘날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한다며 음모론을 부추기고 대중의 確證偏向을 자극하는 人士 다수는 인문학 전공자에 속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思惟의 깊이는 참된 人文學의 精髓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理由는 인문학을 진실로 공부하지 않았다든가 했더라도 특정의 한 가지 思想에만 몰입되었다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사고방식 底邊에는 모든 역사의 결과는 인간이 완벽하게 의도하고 통제한 결과라는 오만 즉 고삐 풀린 人本主義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모든 凶事에는 반드시 명확한 惡意를 가진 기획자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이러한 집착은 超越的 섭리와 인간 능력의 有限性을 배격하고 인간 主體性만을 강조한 主體思想과 相通한다. 神이나 영적 질서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이 자기 운명의 완전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이 세상을 謀略의 각축장으로 보는 유물론적 착각을 낳는다. 진정한 인문학은 인간을 세상의 全能한 통제자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自然人 너머 작동하는 거대한 동력을 겸허히 직시한다.
헤겔(Hegel)은 역사를 움직이는 動力을 絶對精神으로 보았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情念과 착각마저 역사적 목적을 위해 쓰이는 理性의 狡智(List der Vernunft)를 論했다. 인간이 아무리 주체적으로 계산하여 행동한다고 믿어도 결국은 世界史라는 거대한 上位 존재의 움직임 아래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성이 정열을 자기 멋대로 활동시키면서 그 때에 손해를 입고 타격을 받는 것은 (理性이 아니고) 이 정열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이성의 狡智(List der Vernunft)〉라고 부른다.”— 『歷史哲學講義』 (金淙鎬 譯, 三省出版社, 1986年 - 104面)
막스 베버(Max Weber)는 인간이 효율을 극대화하려 합리적 社會體系를 만들었지만 그 시스템은 도리어 인간의 의도를 벗어나 스스로 거대해지며 인간을 억압하는 쇠창살이 된다고 했다. 역사적 비극과 대형참사에서 관계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연쇄적 실수와 판단 마비는 바로 이 비인격적 시스템이 붕괴하며 드러내는 전형적인 인간적 무력함의 傍證이다.
“퓨리턴敎徒는 職業人이 되려고 意慾하였다. (中略) 禁慾이 修道院에서 職業生活의 內部로 옮겨져 世俗的 道德을 主宰하기 시작하자 그것은 近代 經濟秩序의 강력한 世界體系의 形成에 공헌하였기 때문이다. (中略) 그러나 運命은 이 外套를 鐵과 같은 殼으로 변하게 하였다.”
— 『베버 社會科學論叢』 (梁會水 譯, 乙酉文化社, 1988年 - 267面) (殼 : 껍질 각)
이외에도 칼 융(Carl Jung)의 ‘집단무의식 原形 說’ 等 超越者의 논의는 인문학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것이다.
음모론자는 이러한 上位 動力의 존재가 念頭에 없어 저들이 理解 안 되는 현상이라면 기획된 공작으로 置換해 버린다. 누가 사건으로 이익을 얻었는가를 살펴 그 이익을 얻은 者가 사건을 만들었다는 논리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은 子息은 부모를 죽였다는 論理나 같다. (위에서 언급된 헤겔도 아직 제대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형편 중에 부친의 사망으로 재산을 상속받아 연구에 精進할 수 있었던 바 있다.)
초월적 차원을 度外視하고 인간의 限界를 否定하는 유물론적 사회는 비극 앞에서 인간이 有限하고 不完全한 존재임을 겸허히 자각하고 성찰하는 대신 상대를 惡魔化하고 음모의 배후로 낙인찍는 無限한 책임공방의 혼돈으로 빠져든다. 진정한 인문학적 省察은 내가 세상을 완전히 관리할 수 있다는 主體思想的 오만이 아니라 인간은 불완전하며 上位의 攝理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自覺이다. 음모론의 자극적 환타지에 매몰되어 實相을 왜곡하는 伊들이야말로 유물론적 관념의 쇠창살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들을 주사파라 하여 비판하는 伊들도 그들의 分派性만을 糾彈(규탄)하기보다 그들이 젖어든 主體思想的 觀念을 叱咤(질타)해야 할 것이다.
오만한 人本主義가 낳은 음모론의 망상
- 박경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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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2, 08: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