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유불리에 따라 골대를 옮겨버리는 축구 경기를 야유 없이 지켜볼 관객은 없다.
왜 기준이 권력자의 유불리인가. 지원이 필요할 땐 댓글도 ‘개혁의 동력’이라더니, 비판이 쏟아지자 졸지에 ‘오물’이 되었다. 자신이 사용한 은어 '좌아하게'는 위트이자 언어유희고, 시민의 풍자와 비판은 차단해야 할 저급함인가.
결국 무엇이 동력이고 무엇이 오물인지를 가르는 기준은 오직 권력자 개인의 유불리뿐이다. 유리하면 민심의 에너지가 되고, 불리하면 청소할 오물이 된다. 기준도 원칙도 없이 권력의 입맛대로 작동하는 선택적 검열이다. 그때그때 대통령의 유불리에 따라 골대를 옮겨버리는 축구 경기를 야유 없이 지켜볼 관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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