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首都 이전은 鄭鑑錄을 따르는 정책

정감록을 국민이 모두 읽을 수 있게 하여 국민이 표로 선택하게 하라. 정치에 관심 둔 국민 치고 내로남불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도무지 균형이 맞지 않는 엉터리 造語임도 모두들 안다. 점잖은 말로 我是他非가 있지만 이 또한 지극히 無味해서 쓸 맛이 안 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미를 표시하고 싶은 상황은 자주 일어나는데 그 중 아주 크고 大局的인 事例를 들고자 한다.

所謂 보수대통령을 두 번 탄핵시킨 세력(더민당 및 追加의 추종세력)은 탄핵대상 대통령에게 國政에 非科學을 導入했다는 혐의를 씌우곤 했다. 건진법사 等 尹 前대통령에 관한 것은 알려진 것이고 朴 前대통령에게도 청와대 굿판의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더민당 및 追從一派는 오래도록 추진하는 국가의 重大事를 비과학적 예언서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다루는 정치행위가 자연과학처럼 인간 理性으로 理解하고 설명이 가능한 理論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면서도 정치에 超越力을 빌려오는 것에는 대체로 비판적이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是非를 가리기가 불가능한, 초월적 指示를 盲從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니 節制는 불가피하다. 그러면서도 미래설계 等의 목적에서 전혀 물질과학적 방법론에만 의지할 手도 없는 것이 정치이고 보니 是非의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민주주의가 있어서 이러한 非客觀的 가치평가는 국민에게 情況을 공개하여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면 된다.

노무현은 大韓民國 수천년 가치의 파괴자임은 언급된바 있다. 그 중 하나가 首都移轉이었는데 헌법재판소가 便法을 사용하여 일단 막은 바는 있지만 여전히 세종시의 건설은 現 국가상황에서의 충분한 구체적인 당위성의 설명 없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鄭鑑錄〉의 〈三韓山林秘記〉에 근거한다.

“國都錦江爲上 松岳次之 漢山又次之”

수도를 고르자면 금강(流域)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송악(개성) 그 다음이 漢山 즉 현재의 수도 서울이라는 것이다. 금강의 본류는 세종시 도심을 관통한다. 세종시청, 정부세종청사, 세종호수공원, 국립세종수목원 등 핵심 시설과 생활권이 錦江邊을 따라 있어서 금강의 風水를 全的으로 받아들이는 氣勢이다. 이 외에도 금강 위에 조성된 다양한 랜드마크는 세종시의 선택이 순전히 금강에 말미암은 것임을 강력히 示唆한다.

좋은 곳이라고 豫言되었기에 수도를 옮긴다는 것만을 문제 삼는다면 단지 超越力에의 依支를 비판하는 일반론에 그친다. 중요한 것은 특정 분파의 세력 확장욕구가 그 動機가 되었던 것이다.

“三國統合之後 一千餘年 土又派分 西自渤海 南至熊津 再爲靺鞨之境”

삼국통일의 일천여년 후에 다시 나라가 갈라져 한반도 북서부(발해)에서부터 충청도 공주(웅진)에 이르는 지역이 말갈의 땅이 된다고 한다. 삼국통일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말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말갈은 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층이자 만주 일대에 거주하던 非中華圈(非漢字文化圈) 변방 민족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지배층은 亡國後 신라와 고려에 망명했음을 우리는 國史에서 배웠다. 이는 중국 역사에서의 漢族의 南下 현상과 類似하다.

발해 멸망 후 고구려계와 발해왕족은 文化的 紐帶感이 있는 고려로 다수 남하했으나 말갈족은 그대로 남았다. 지배층과 달리 移動資源(馬, 食糧, 武力)이 없던 말갈족 하층민은 설령 ‘남쪽이 더 살기 좋다’는 말을 들었더라도 이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주에 남아 있던 말갈족(여진족)의 일부는 高麗末 東北面(咸鏡道)의 李成桂의 세력이 되어 世宗 때에 조선에 합병되었다.

그전까지 高麗에서 우리 민족은 規定된 表記法에 따른 吏讀로써 우리말을 표기해 왔으나 외래 귀화자가 대폭 증가하자 그들이 익히기 어려운 복잡한 표기법의 규정이 없이 소리대로 표기하는 공통적인 소통수단이 요구되어 훈민정음을 制定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는 몽고의 元에서 治下의 여러 민족을 아우르기 위해 파스파문자를 제정했던 것과 相通하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소설 〈나랏기틀과 나랏말쌈〉). 高麗末 士大夫의 脈을 이은 儒生들은 高麗朝의 正體性인 이두로서의 표기가 위축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 반대의 입장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세종대왕이 向化女真이라하여 귀화 여진족을 포용하려고 애썼다 해도 기존의 우리 민족과 풍습이 달랐던 여진족이 한반도에 원만히 정착했는지는 불확실하다. 官職을 받은 酋長들이나 따라온 일반부락민이나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근대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을 철폐했어도 인종차별이 오래도록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추정이 가능하다.

春園 李光洙의 〈端宗哀史〉에도 조선초기 이후 여진족과 韓民族 간에 맺혔던 깊은 원한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갈등이 깊어지면 怨恨이 맺힌 내부의 敵을 외부의 敵보다 증오하게 마련이다. 國統을 斷絶해서라도 外勢 아래의 구멍가게로라도 저네가 상대적 主導勢力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노무현은 국어기본법을 만들고 국립국어연구원을 법원과 같은 강제성 있는 규범적 통제기관의 의미가 있는 국립국어원으로 强化하여 ‘개혁된’ 언어로써 전통세력을 破毁하고자 했다. ‘말갈세력’의 영향은 그 전에도 이승만 시대의 한글전용법제정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한글전용과 중고교평준화(學問習得의 資質이 덜한 그들이 사회중심부 진입에 불리해지는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함) 실시 그리고 김대중 정권에서의 한자사용 주장자 탄압 등으로 계속 영향을 미쳐왔으나 정식으로 제도권의 首長이 된 것은 노무현이 최초라 하겠다.

집권하여 이미 漢山을 점유한 말갈세력이지만 예언을 이루려면 웅진에 이르기까지를 확실한 영역으로 두어야 하기에 웅진 즉 공주 근방의 금강유역에 遷都하고자 만든 것이 세종시이다. ‘북방족속’이 수도를 더 南下하려는 것이 언뜻 理解 안 갈 數도 있지만 지배권의 영역을 상징하기 위하여 중국의 北京처럼 수도를 중심부가 아닌 邊境에 두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前方首都’는 특히, 그대로 두어도 所有領域인 ‘後方’ 지역과는 달리, 자기네의 특색을 의도적으로 두드러지게 하여 분명한 소유권을 못 박는다. 세종시의 洞里 이름을 所謂 순우리말로 한다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언서를 충실히 따르는 더민당 및 追從一派의 최종목표는 무엇일까. 역시 같은 책에 관련구절이 있다.

“北國女君 來惑平王 麗朝之亡”

북쪽 나라의 여군이 와서 남쪽의 평왕 즉 평화를 사랑하고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세를 높이지 않는 겸손한 왕을 감화시켜 마음으로 복속케 하니 고려조가 멸망한다는 것이다. 一說에는 北國은 元나라를 뜻하고 女君은 원나라의 공주로서, 고려로 시집와 국왕을 感化시킴으로 因해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고 멸망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역사를 조선시대에 논했다면 흥미 거리가 없는 것이고 역사의 평행이론에 따른 반복성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고 봐야 의미가 있다.

조선은 기존의 高麗朝에다가 동북면 등의 북방세력을 합해 건국되었으니 麗朝란 조선에서도 이어지고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온 남쪽의 전통 보수세력인데 결국 북국의 女君에게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력한 ‘女君’이 이미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훗날 북한의 김주애가 집권하면 한국에 남은 高麗朝 즉 傳統精神이 드디어 멸망한다는 것이다. 북국여군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남한의 宥和的인 정권(平王)과 타협하면 결국 남한 중심의 전통보수의 命脈이 완전히 해체된다.

北國의 君主의 호칭이 王보다 格이 낮은 女君인 것은 그래도 南을 正統으로 보아주는 것이라고 볼 數도 있지만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김정은의 각별한 김주애 챙기기를 보건대 김정은이 만약 세간의 기대와 달리 오래 산다고 해도 김주애에게 미리 권력을 넘겨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김주애가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와 같은 지위가 되어 王보다는 아래지위의 君으로서 平王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신흥 여성 권력체가 남한의 평화주의 정권을 정서적으로 정치적으로 압도하여 주도권을 잡으니 麗朝之亡은 이천년 넘게 남한을 지탱해 오던 전통적 보수 체제의 종말이다.

高麗朝 즉 所謂 기득권층이 민중을 착취해왔다며 세력교체를 정당화 하는 것은 미국의 백인 기득권층이 美國民을 착취했으니 非主流였던 흑인들이 정권을 잡고 미국을 흑인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로 바꾸자는 것이나 같다. 물론 말갈족의 일파가 만주족이 되어 明나라의 부패한 기득권층을 물리치고 淸나라의 지배층이 되어 다수 漢族을 다스린 지난 業績을 再現하려 하는 것이겠지만, 정신병의 가장 典型的인 것이, ‘前生’의 상황보다 못해진 현재의 형편을 인정 못해 과거와 같은 ‘영광’을 반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세종시의 건설과 機關移轉에는 국힘 측도 상당히 동조하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거침이 없다. 이는 한자억압의 어문정책도 국힘의 상당수가 동조하기에 국민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과 상통한다. 건국이후 외세의 영향력에 의해 ‘소수 말갈세력’이 얼마나 國權을 점유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이제 국힘당 및 所謂 汎保守 세력은 확실히 半으로 나뉘어 노무현 잔당이 상대적으로 없는 쪽을 국민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들은 고도의 술책으로 양쪽으로 고루 분포하여 국민의 선택을 피하며 暗躍하려고 애쓰겠지만 조금이라도 잔당이 적은 쪽을 支持하기 위한 세심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한편 더민당 等 所謂 汎進步 세력도 제대로 分派되어 민족보존을 위한 政派가 남는다면 역시 국민의 선택이 가능하다.

국정에 큰 영향을 주는 이러한 예언서가 과거에는 禁書였지만 지금의 민주사회에서는 모두가 읽어도 좋은 것인데 현재의 ‘지배자’는 이상한 방법으로 국민 대다수로 하여금 읽어보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정권 핵심부들도 자기네 자식들에겐 한자를 알려주고 정감록을 一讀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무교육을 마친 국민 모두가 한자를 알아 정감록을 읽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정감록에 따른 首都移轉에 관하여 그 정책이 옳다 그르다 曰可曰否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책의 근거를 국민 모두가 參照 가능하도록 해서 자유로운 비판 그리고 관련한 事案의 민주적인 결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