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년 전 낯선 동해 바닷가로 왔다. 더 이상 일을 하기 싫었다.
바닷가 나의 집 지붕은 평평하다. 거기에 작은 데크를 깔고 의자를 올려놓았다. 내가 명상하는 장소다. 옆으로 동해항이 보인다. 길다란 방파제 사이로 화물선이 미끄러져 나간다. 정겨운 뱃고동소리를 내면서. 내가 사는 집이 어느새 배가 되어 드넓은 바다 위를 떠가는 느낌이다.
나는 뺨을 스쳐가는 바람을 즐긴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아 누가복음을 펼쳤다. ‘먼지를 떨어 버려라.’ 그게 뭘까. 방바닥을 전기 청소기로 밀면서 계단을 밀대로 닦으면서 생각해 봤다.
오년 전 낯선 동해 바닷가로 왔다. 더 이상 일을 하기 싫었다. 법정에 나가면 공기 중에 떠있던 원망과 증오 절규들이 먼지가 되어 어깨위에 내려 쌓이는 것 같았다. 사십 년 동안 내려앉은 먼지를 털고 떠나고 싶었다. 내 마음의 방은 먼지투성이였다.
도망치듯 처음에 찾은 곳이 실버타운이었다. 적막함과 완만한 죽음이 고여있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우울이란 먼지들이 내게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해변가의 집을 구해 이사했다. 해변을 끼고 소나무 숲과 철길이 있었다. 철길 위로 노랑나비가 이리저리 날았다. 투명한 녹색물이 모래밭에서 찰랑거렸다.
망상해변을 걸으면서 옥계에 산다는 한 노인을 만났다. 심 선생이었다. 서울에서 바닷가 마을의 자그마한 집으로 옮겨 십육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나의 집 옥상 데크에서 그와 종종 얘기를 나눈다.
“은행원으로 근무했어요. 월급 받아먹으려고 올바르지 못한 윗자리에 앉은 놈에게 굽실거리는 게 싫었어요.”
그는 부리부리한 눈빛이었다.
“강릉지점 대리로 근무할 때 본 옥계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언젠가는 거기 가서 살자고 결심했죠. 퇴직을 하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아내와 함께 내려왔죠.”
마을 귀퉁이에 있는 그의 집에 가 봤다. 마당에는 잔디와 싱그러운 잎을 가진 나무가 있었다. 마당에 활짝 핀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집을 샀다고 했다.
“바닷가 내 방에서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시를 공부했어요. 매일 망상해변을 산책했죠. 바다 안개를 자주 봤어요. 짙은 안개가 사람 모습으로 춤췄어요. 그 팔이 내 허리를 안아 주기도 하구요. 그래서 우리집 이름을 ‘무율제’라고 지었죠. 안개가 율동을 한다는 의미죠.”
그가 싱긋 웃었다.
“마을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 문을 항상 열어뒀어요. 사람들이 찾아오면 커피를 대접하고 사는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가 탁자 위의 과자를 한 조각을 집었다.
“종착역이 가까워 오면 기차가 속도를 줄이듯 생활의 속도도 줄이고 있어요. 나도 그래요.”
그가 고개를 돌려 바다로 시선을 향했다.
“자식은 나를 걱정하지만 순간순간 색깔이 바뀌고 다양한 파도 소리를 내는 저 바다를 보세요. 나는 하나가 되어 버렸어요.”
칠월 오후 두시의 태양이 내려 쬐는 창 밖을 내다본다. 쏟아지던 폭우가 멈췄다. 낮게 내려온 하얀 뭉게구름이 나를 내려다 본다. 창틈으로 바다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들어온다.
나의 방 책장 한 칸에는 아직도 법률 서적들이 도열해 있다. 이십대 나의 청춘이 담겨있는 책들이다. 그 책이 내게 사십 년 동안 밥을 제공했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아직도 고정 컬럼에 매여 있다. 아직도 먼지를 떨어내지 못했다. 변호사 자격증이라는 오래된 밥그릇을, 나는 손에서 놓지 못하니까.
변호사 자격증이라는 밥그릇
- 엄상익(변호사)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26-10-27, 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