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셨어요?” “다시 청탁하러 왔습니다. 봐 달라구요.”
<자빠져 있는 사람>
병아리 변호사로 잠시 국회의원 사무실에 빌붙어 있던 때였다.
“지역구 민원인데 판사 만나서 부탁 해 봐.”
의뢰인들이 판사와의 인연을 묻고 몇 번이나 찾아갔는지 확인하던 시절이었다. 담당 판사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들어줄 리가 없었다.
오후 두 시경 북부법원 정문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고 있었다. 발길이 무거웠다. 부탁은 간절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 판사에게 영양가 없는 D급 정도로 판정이 된 느낌이었다.
법원 3층의 판사실은 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담당 판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판사가 책상의 열어놓은 맨 위 서랍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에 등을 눕힌 채 낮잠을 자려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점심 때 낮술을 한 게 틀림없었다. 그의 책상 앞에 머뭇거리며 섰다. 순간 그가 옆 눈으로 나를 힐끗 보았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라는 걸 순간적으로 간파한 눈빛이었다.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판사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양팔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물었다.
“왜 왔어요?”
그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 묻어 있었다.
“기록을 잘 검토해 달라고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당시 변호사가 부탁을 할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었다. 순간 판사의 얼굴에 비웃음의 표정이 스쳤다.
“판사가 법률 지식에 따라 자기 기록을 검토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왜 그런 말을 하죠?”
모멸감이 똥물같이 흘러내렸다.
“정직하게 말하죠.”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자빠지듯 누워있는 그를 내려다 보았다.
“봐달라는 소리 아닙니까? 청탁하러 온 거죠. 모르십니까?”
그날 밤이었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씁쓸했다. 앞으로 끊임없이 비굴하게 청탁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 삶인가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책상 귀퉁이에 성경이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물으면서 성경을 펼쳤다. 몇 페이지를 들췄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 간곡히 조르면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절실함은 없지만 오기가 일었다. 다음날 오후 두 시 같은 시각에 나는 다시 판사 책상 앞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왜 오셨어요?”
“다시 청탁하러 왔습니다. 봐 달라구요.”
그가 주춤했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삽니다. 어제 그 자세로 그냥 편하게 말하세요. 피곤하실 텐데요. 일단 청탁을 다시 했으니까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또 가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내 사건도 아니고 절실하지도 않았다. 그만둘까? 그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정말 가기 싫었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싸움이었다. 다음날 그 시각, 나는 다시 그를 찾아갔다. 나를 발견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청탁하러 왔습니다.”
그가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제 밤 성경에서 과부와 재판관 얘기를 읽었습니다. 나쁜 재판관이라도 귀가 닳도록 괴롭히면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만 말하고 나왔다. 다음날 같은 시각에 그를 또 찾아갔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을 돌아나와 내 손을 잡았다.
“그러지 마시고 소파에 앉아 얘기합시다.”
“바쁘실 텐데 뭘 그러십니까? 그냥 청탁만 하고 가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발 앉읍시다.”
그가 내 손을 강제로 끌고 소파에 앉혔다.
“부탁하시는 걸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말씀하시는 건 내가 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성경을 봤습니다. 친구 부탁은 들어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온 겁니다.”
법원 언덕을 내려오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나님 앞으로 이렇게 살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보고 명령한 국회의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일을 해 냈어. 잘했어.”
울컥했다. 나는 실컷 얻어맞고 고기 한 조각을 얻어온 개는 아니었을까. 그 얼마 후 일요일이었다. 압구정동의 현대 백화점 명품관 옆을 지나갈 때였다. 그 판사가 어떤 여성과 물건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그 판사도 나를 본 것 같았다. 그는 얼른 발길을 돌려 도망치듯 가버렸다.
실컷 얻어맞고 고기 한 조각을 얻어온 개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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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31, 17: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