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 일당으로 일주일 먹은 때를 그리워한 서울 출신 장인 어른.
북한의 장인 어른은 함흥에 살았다. 그 딸과 내가 사귀던 때에는 이미 돌아가셨다. 서울 출신으로 막노동자였다고 한다. 가난한 자를 잘살게 한다는 공산군 따라 월북하였다.
전쟁 시기나 전후 시기나 항상 배가 고팠다. 전쟁의 후과이겠거니 했지만 평화 시기에도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쌀도 찬도 부족하니 짜게 찬을 준비하여 덜 먹게 할 수밖에 없다.
짜도 배가 고프니 많이 먹게 된다. 그게 누적되니 50대에 중풍을 맞는다. 중풍 속에서도 배고품을 견디지 못해 자식들의 밥을 본능적으로 잡아 당긴다. 그것을 말리느라 장모님은 골머리를 앓는다. 장인은 그러다 돌아가셨다 한다. 아들 셋, 두 딸을 남겨두고 가셨다.
장인은 서울 막노동꾼, 장모는 단천의 평범한 여인이었다. 그 속에서 낳은 맏딸은 전국 대학 2등 성적의 수재였다. 그래서 과학원 연구원이었던 나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 맏딸은 항상 아버지가 멀쩡하시던 시기의 말씀을 되뇌이듯했다. 서울에서 막노동 일당으로 일주일 먹을 것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수 계산으로 한 달 일하면 210일 식량 이는 7개월 분의 식량이다.
북한은 한 달 일한 월급으로 하루 분의 식량을 살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지? 아버지가 기억력이 나빠서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한 경험의 말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일당을 많이 받았을 때를 기준으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나 엄청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차이이다. 20161102
*현재 무작위로 네이버 검색 - 찬찬미 10kg 3만5050원, 대한민국 평균 월급 350만 원으로 998.6kg 약 1톤을 살 수 있다. 북한은 1kg 그마저 공장가동률이 제로이니 거의 못 받고 있는 실정.
너무나 엄청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차이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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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1-02, 19: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