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대한민국 판사들

목에 칼이 들어오자 비로소 꿈틀하는 것을 어떻게 기개(氣槪)라 부르고 정의라고 합니까? 최근 인천지방법원의 한 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소설 동물농장에 관하여」라는 글을 올려 이재명 정부의 사법부 압박(壓迫)을 비판하고 법관들의 침묵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세상은 "용기 있는 판사의 소신 발언", "정의가 살아있다"며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칭찬들을 보며 헛웃음만 나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합니다. 이미 수없이 밟힐 때는 침묵으로 일관(一貫)하다가, 여권에서 대법원 국정감사까지 운운하며 자신들의 목에 칼이 들어오자 비로소 꿈틀하는 것을 어떻게 기개(氣槪)라 부르고 정의라고 합니까?

내 목에 들어온 칼을 막아서는 것은 지렁이와 같은 미물(微物)도 합니다. 참된 용기와 정의는,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힘없고 빽없는 약자(弱者)를 위해, 자신의 안전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법부를 영어로 'Department of Justice(정의부)'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판사는 판결을 통해 세상에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대한민국 판사들이 그동안 타협(妥協) 없이 정의를 지켜주었다면,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용기 있는 이들이 정의를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용기 있는 자가 불이익을 보고, 정의를 외치는 자를 법에서조차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판사들은 이 비겁한 침묵과 방조(幇助)에 대해 뼈아픈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판사는 퇴직 후에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루하루 생존이 급급한 일반 시민은 때로 어쩔 수 없이 불의와 타협할지 몰라도, 판사만큼은 그 무엇과도 타협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루(堡壘) 뒤에 서서, 자신의 기득권이 흔들릴 때만 겨우 한마디 던지는 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오직 정의만을 위해, 타인의 아픔을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십시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무력하고, 실천하지 않는 정의는 무너진다." 나치에 맞섰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경고를 대한민국 판사들은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사족, 현 국회의원의 20%가 법조인 출신입니다. 판검사 시절에 정치권과 타협하여 공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한 것입니다. 이런 실태이니 법조인들에게 정의를 바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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