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산 밑 마을까지 걸어와”

멋모르고 상석(上席)에 앉으면 자리를 내어달라는 말을 듣는다. <끝자리>

고시 낭인 시절이었다. 먼저 합격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었다. 식당의 맨 앞쪽에는 하얀 테이블보를 하고 꽃을 장식한 식탁이 있었다. 좋아 보이길래 무심히 그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신랑의 친척이 오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리를 옮겨 주시겠어요? 저쪽으로.”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문가 가장자리였다.

“이 자리는 고시에 합격한 사법연수원생들의 자리입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가 말하는 대로 하객들의 맨 끝자리로 가서 앉았다. 부끄러웠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겨울 눈이 하얗게 덮인 가야산 원당암에 묵은 적이 있다. 수은주가 영하 15도를 밑돌았다. 칼같은 냉기가 문풍지를 울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장학재단의 돈을 받고 그 암자로 갔다. 장학금을 받는 대신 그 재단의 룰에 절대 복종해야 했다. 그 재단에서는 고시생을 일곱 명 정도씩 조를 짜서 암자로 보냈다. 그 중 한 명을 대장으로 지명해 수시로 동향을 보고하게 했다. 암자에서의 외출도 고시생 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법대 학장인 김 교수였다. 거기서 쫓겨나면 고시를 계속할 돈줄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연기됐던 영장이 바로 나와 군대로 끌려가게 되어 있었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생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갑자기 학장인 김 교수님이 절 아래 호텔에 왔다는 전갈이 암자로 왔다. 고시생 일곱 명이 부리나케 하산을 했다. 더부룩한 수염에 하얗게 바랜 얼굴 그리고 낡은 군복 복장이거나 한복바지를 입은 우리들은 영락없는 빨치산의 모습같았다.

학장인 김 교수는 온돌방의 보료 위에서 앞에 놓인 밥상을 대하고 있었다. 자개 밥상 위에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정갈한 반찬들이 보였다. 주홍색의 명란젓과 구운 김을 보니까 군침이 돌았다. 고시생에게 주는 암자의 밥은 솔직히 개밥보다 나을 게 없었다. 베니어로 대충 만든 길다란 밥상은 얇게 얼어있었다. 멀건 동치미 그릇이 이리저리 미끄러졌다. 밀 쌀을 삶은 밥에 된장을 멀겋게 푼 시래기국이었다. 신도들은 우리들도 자기들이 먹는 절밥을 먹는 걸로 착각했다. 밥을 먹을 때 고시생들은 입으로 반찬을 만들어 귀로 먹곤 했다.

자개 밥상을 앞에 놓은 학장 주위로 우리들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투명한 안경에 하얀 얼굴인 고시생 대장이 눈빛으로 지시했다. ‘너는 저기 윗목 문가에 앉아’

나는 그중 제일 신참이었다. 그들 모두 서울법대 출신인 데 나만 고대였다. 학장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고시생을 하나하나 뚫어 보며 입을 열었다.

“공부에 필요한 에너지만 나올 정도로 음식을 먹어야 해. 절대로 잘 먹으면 안된다 이 말이야. 조금만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젊은 놈들은 여자 생각을 하니까 말이야. 못 먹게 해서 기운을 다 빼놔야 하는 거야.”

내 눈은 밥상 위의 기름이 흐르고 깨가 뿌려진 명란젓에만 가 있었다.

“모두 다방으로 가서 커피 한 잔 하자”

훈시를 끝낸 학장님이 말했다. 다리가 저렸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까 학장님이 타고 온 자가용이 보였다. 새로 나온 승용차, 반들거리는 포니가 빛을 퉁겨냈다. 신기했다. 자가용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높은 사람만 타는 차였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학장과 눈이 부딪쳤다.

“앞에 타거라.”

내가 기사 옆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등을 쿡쿡 찌르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봐, 네가 아니야.”

돌아다 보니 고시생 대장의 투명한 안경이 보였다. 학장님이 나를 본 게 아니라 그를 보고 한 말이었다. 고시생 대장이 차에 타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너는 산 밑 마을까지 걸어와.”

나는 언젠가 그 호텔 방에서 그 밥상을 앞에 놓고 먹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해 겨울 나는 그 장학재단에서 쫓겨났다. 고시 일차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해 군에 입대했다.

칠십 고개를 넘은 지 몇 년 됐으니 오랜 세월을 살았다. 나의 머리 속에는 젊은 날 친구의 결혼식에 갔었을 때의 일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해인사 암자 때의 일도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멋모르고 상석에 앉으면 자리를 내어달라는 말을 듣는다. 어떤 모임이나 행사에 가도 맨 끝자리에 앉기로 했다.

변호사로 사십 년 법정을 드나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세요.”

법정 질서를 지키는 정리가 소리쳤다. 방청객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판장이 배석판사 두 명을 데리고 법정으로 느릿느릿 들어왔다. 법정 뒤의 조명이 판사들을 비추고 있었다. 재판장이 법대 가운데 있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았다. 넓적한 얼굴에 작은 눈이었다. 아는 판사였다. 법무장교 훈련 동기생이었다. 판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인사받는걸 당연 하게 여기는 표정 같았다. 내가 첫 사건의 담당 변호인이었다. 변호사석에 올라가 앉았다. 그가 나를 빙긋 내려다 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해 탁자 위의 서류들을 보았다.

어느 순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상석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눌렀다. 체념하고 내 자리를 받아들였다. 40년간 그렇게 살아왔다. 세월이 흘러 바닷가에 사는 노인이 된 나는 블로그 글로 세상과 소통한다. 어느 날, 블로그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노가다 일을 하며 삽니다. 먼발치에서 평화로운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을 봅니다. 돈이 없어 여행은 못 가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파란 하늘을 보고 들꽃과 나무를 봅니다. 먼발치에서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도 여행과 결을 같이 하는 게 아닐까요?’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창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긴 방파제 끝에 무인 등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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