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캉디쉬의 劍 나이스와 부시의 刀 버시바우 |
1997년에 야당이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세계기준에 걸맞는 새 노동법에 찬성해 주고 노조와 경영층이 말아먹은 기아를 국민기업이라고 호도하여 더없이 희극적인 구명운동에 나서지 않았으면, 외환위기가 왔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야당이 구국의 차원에서 협력했다면, 틀림없이 그 공은 김영삼 정부에 돌아가, 여당의 후보가 십중팔구 새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나라가 잘못되면 잘못될수록 여당에겐 불리하고 야당에겐 유리하다. 야당은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 대통령 당선자는 거칠 게 없었다. 전 국민이 분노로 들끓고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일흔 노인의 용안은 이팔청춘처럼 활짝 피어났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인간 세상에 환생한 '큰바위 얼굴'의 그것처럼 국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한 DJ도 벌벌 떤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IMF의 총재 캉디쉬였다. 어쩌고저쩌고 세계금융의 횡포에 대해 국내용 인기발언을 한마디했다가 혼쭐이 났다. 그 뒤로는 멀리서 캉디쉬가 헛기침만 해도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시키는 대로, 아무리 불리한 조건도 두 말 없이 받아들이고 감지덕지했다. 그 당시 캉디쉬의 검(劍) 역할을 했던 사람이 후버트 나이스! 그는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었는데, IMF 조사단의 단장으로 한국에 왔다. 캉디쉬의 분신! 대통령 당선자는 4800만의 슈퍼스타처럼 군림했지만, 큰소리도 안 치고 말도 많지 않고 키도 자신보다 훨씬 작은 나이스 단장 앞에만 서면 가능하면 말을 적게 공손하게 하고 금방이라도 낮은 포복을 감행할 듯이 자세를 최대한 낮추었다. IMF의 검객이 정색을 하고 보검을 빼어 들고 만신창이가 된 한국 경제에 한번 휙 휘두르거나 푹 찌르는 순간, 한국에는 일시에 거지와 강도와 폭도가 수천만 명 들끓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용상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차기 왕은 상도동 뒷방 늙은이나 백담사 처사보다 가엾게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의 낮지만 단호한 말이 남북 정권을 동시에 강타하고 있다. 그는 신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 러시아 대사에 전 NATO 대사이다. 서울이 주중대사보다 격이 낮은 주미대사를 파견할 때, 워싱턴은 도리어 세계를 양분했던 모스크바의 전 대사를 서울에 파견했다.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NATO의 전 대사를 서울에 파견했다. 과연, 그는 듣는 이의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는 외교적인 언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말을 주워담거나 말에 분을 바르지도 않는다.
'북한인권대회에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모든 당사자들이 참석하기 바란다.'
'북한은 범죄정권이다.'
'북한은 달러를 위조했다.'
'위폐를 만드는 정권은 아돌프 히틀러 이후 북한이 처음이다.'
'한국에도 북한의 위조 달러가 흘러 들어왔다.'
'북한은 6자회담에 인위적 장애를 만들지 말라.'
외환위기 직전에 김영삼 정부가 큰소리쳤듯이, 노무현 정부도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아프리카 토고의 대사라도 되는 듯이 그를 소환하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자도 있다. 평양방송과 노동신문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나 발설할 수 있는 막말을 연일 쏟아낸다. 평양의 주석궁을 단칼에 두 동강 낼 수 있는 번개 칼[刀]을 숨기고 있음이 분명한 듯한데, 절정고수답게 그는 목소리도 높이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 칼은 아예 단도 하나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자객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몸 전체가 칼인지도 모른다.
핵무기보다 무섭고 경화(hard currency)보다 무서운 게 있다. 그것은 법이다. 오늘날 국제법은 거의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특히 초강대국이 자신을 상대로 깡패국가가 벌인 범죄 행위에 대해 국내법을 국제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동하면, 어떤 국가도 이에 맞서지 못한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너무도 낭만적으로 들릴 안보위기가 각일각 다가오는 듯하다. 아마 지금 이런 상황을 제일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남북의 두 최고사령관일 것이다. 그들은 밤마다 가위눌리는 잠을 잘지도 모른다.
(2005. 12.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