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의 몽상, 30대의 환상, 40대의 망상 |
안톤 체호프의 [외투]에는 달팽이처럼 사시사철 외투를 입고 다니는 사나이가 나온다. 그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닌다. 그림자 외에는 친구도 없다. 외투의 깃이 점점 올라가서 얼굴도 가리고 머리도 가리더니 이윽고 사람은 아니 보이고 외투만 보인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교과서를 달달 외고 있던 사춘기 소년 싱클레어가 교과서의 틀을 훌쩍 벗어나 참고서도 두루 꿰고 개론 어쩌면 각론의 단계에 들어선 듯한 친구 데미안을 보고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마침내 그는 알을 깨는 아픔을 이기고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성리학은 수명을 다한 고려왕조를 대신한 조선왕조의 멋진 외투였다. 150년 정도 그것은 훌륭한 새 교과서요, 새 참고서요, 새 개론이요, 새 각론이었다. 그 이후로 그것은 도리어 조선을 옥죄는 갑옷이요, 칼이요, 족쇄로 둔갑했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에 걸쳐 면면히 이어오던 1500년 개방성을 멀리한 폐쇄성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조선이 황제국으로 받들었던 명나라의 영향도 컸다. 고려의 개성에서 러시아의 키에프까지 동서를 하나로 연결한, 최초의 인터넷 사회였던 개방적인 원나라를 몰아내고 들어선 명나라가 그 반동으로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자급자족형의 폐쇄적인 체제를 고수했던 것이다.
중국은 큰 나라라 후에 양명학이란 새 외투가 등장하고 명의 몰락 후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고증학이란 새 외투도 등장했다. 그마저도 서구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바람이 불자 갈가리 찢겨졌다. 조선은 최악이었다. 양명학과 고증학마저 거부하고 곧 죽어도 성리학이었다. 그 결과는 1700년 이래 200년 동안 지속적인 생산성 하락이었다. 주관적으로는 한민족이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객관적으로는 1910년 나라를 빼앗긴 이후에 수리안전답이 급속히 늘어나고 종자가 개량되고 화학비료가 보급되고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생산성이 쑥쑥 올라가기 시작했다(차명수).
조선의 성리학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와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소련 공산주의로 분화되고, 이것이 다시 한국의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북한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눠졌다. 한국과 북한의 가장 큰 차이는 개방성과 폐쇄성이었다. 그 결과 1960년대부터 한국은 세계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면서 생산성이 약 30년 동안 거의 수직적으로 상승했고, 북한은 1970년대부터 역시 세계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면서 생산성이 약 30년 동안 거의 수직적으로 하락하더니 아시아 제2의 공업국가에서 인력과 채찍에 의존하는 전근대적인 농업국가로 전락했다.
북한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주체사상 곧 김일성교로 통합된다. 반면에 한국의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박종홍이 한때 제2의 원효가 될 싹을 보였지만, 아무도 그 뒤를 이어받지 못하는 바람에 새로운 사상을 태동시키지 못하고 개방성과 실용성의 도구적 방법론만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바로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원시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공산주의와 사교적(邪敎的) 주체사상이었다.
개혁개방 후 급격히 생산성이 증가한 중국의 존재 덕분에,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다가 절벽 한가운데 삐죽 뻗어 나온 나무에 걸려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북한이 와중에 3백만을 희생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구원의 빛은 천만뜻밖에도 건너편 남쪽 산으로부터 비쳐 왔다. 거기에 한반도기를 죽어라 흔들며 '민족'을 소리 높여 외치며 주체사상의 외투를 눈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린 자들이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사다리를 던진다, 밧줄을 던진다, 식량을 내려보낸다,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1980년 광주사태를 호기로 삼아, 성리학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한국의 명분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청바지를 사회주의의 노란 외투 또는 주체사상의 붉은 외투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자유의 열풍이 불었다. 스스로의 무게와 더위와 갑갑함를 이기지 못하여 소련과 동구가 일제히 마르크스의 붉은 망토를 벗어 버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당근 한국의 상식 있는 수많은 명분론자들이 일제시대의 대학생들이 뽐내듯 입었던 교복 외투처럼 자랑스럽게 멋있게 생각했던 사회주의의 붉은 외투를 슬그머니 벗어 던졌다. 지난 10여 년간의 삶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무서운 일은 바로 이 때 벌어졌다. 주체사상의 붉은 외투가 자유민주주의의 청바지와 사회주의의 노란 외투마저 접수해 버린 것이다.
1980년대 20대들의 몽상(夢想)이 1990년대에 30대의 환상(幻想)으로 풍선처럼 부풀려져 현실세계를 벗어나 사이버 세계로 푹 빠져 들어가더니, 밤의 지하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청바지와 사회주의의 노란 외투까지 접수한 그 주인공들이 한 손에는 화염병을 다른 한 손에는 투표용지를 들고 낮의 지상 세계로 성큼성큼 걸어나와 지독하게 편식한 붉은 참고서에 쓰여진 대로 대한민국의 교과서를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눈 깜짝할 새에 방송과 인터넷을 장악하여 세기말과 세기초에 세 번에 걸쳐 잇달아 권력의 칼을 잡았다. 이들은 대뜸 권력의 칼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역사 바로 세우기!'
'제2의 건국!'
'지금까지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는 득세했다.'
'제국주의 미국은 물러가고 우리 민족 북한은 오라!'
'민족 반역자는 거(去)하고 혁명 동지는 내(來)하라.'
40대의 망상(妄想)이 만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20년 동안 전혀 성장하지 못한 자폐증 환자들이 반성은 눈곱만치도 않고 눈만 뜨면 20세기의 기적 대한민국을 헐뜯고 20세기의 악몽 북한을 보듬고 감싸느라, 억지에 억지를 부리고 있다. 날마다 풍차를 향해, 양떼를 향해, 포도주통을 향해 창을 꼬나들고 돌진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일은 이들은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문화권력마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기득권의 기득권이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과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절대 망상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풍차(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있는 대로 부수고, 양떼(70%에 육박했던 중산층)를 무수히 죽이고, 포도주통(자유통일의 축하주)을 온통 찌르고 찔러 '미제 마귀'의 피를 다 흘린 후에야, 지난 20년 동안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성장한 대다수 한국인이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비로소 저들이 뿌린 최면제의 마취에서 화들짝 깨어나 든든한 친구 샘 아저씨와 손을 잡고 '붉은 외투들'의 뒤통수를 쳐서 실신시킨 다음, 그 전신에 한 동이씩 찬물을 끼얹어야 저들이 깨어날 둥 말 둥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때가 서서히 다가오는 듯하다. 새벽닭은 이미 두 번 울었다.
'북한인권!'
'위조지폐!'
새벽닭은 각각 이런 소리를 냈다.
(2006. 2.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