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帝가 그렇게 패망할 줄 누가 알았으랴! |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친북좌파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국회와 대법원이 황금의 권력 삼각형을 이루고 각 권력의 꼭지점을 방송과 인터넷과 시민단체가 직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황금의 권력 삼각형 안에는 거대한 조직의 정부가 있고 그 머리에는 각종 위원회가 친북좌파의 다루가치로 군림하고 있다. 황금의 권력 삼각형 바깥에는 오합지졸의 거대 야당 하나와 눈만 반짝일 뿐 초라하기 그지없는 북한인권 시민단체와 늙수그레한 향토예비군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자세히 보면 청와대를 겹겹이 옹위(擁衛)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노조와 한총련과 국가인권위원회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인 단체와 농민 단체와 여당보다 더 여당다운 한 작은 야당은 국회와 법원을 에워싸고 어쩌다 그 곳에서 진실의 법안과 정의의 판결이 흘러나올 때마다 무시무시한 독설의 죽봉을 휘두르고 쑤신다. 거대 야당마저 내부에 친북좌파 무리들이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나날이 그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의 내응(內應)으로 신문법과 과거사법, 사학법 등이 어렵지 않게 통과되었다. 이제 보안법과 헌법이 남았는데, 이마저 유명무실하게 된 지 오래다.
제일 고집 센 무리가 법원이었지만, 무차별 언어폭력과 코드형 인사권 발동으로 이젠 그 수장이 공공연히 헌법보다 국민정서법을 우선하겠노라고 당당히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헌법의 보루인 헌법재판소도, 민족의 지성들이 태평양전쟁의 와중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하나둘 일제에 굴복하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내란이 일어날 것 같은 위협에 직면하여 국회 3분의 2에게 찬물을 끼얹더니 아주 고분고분해졌다.
두 여중생의 교통사고에 이은 촛불 시위와 이라크 파병에 전후한 한반도기 흔들기로 반미(反美)가 곧 애국애족으로 둔갑하여 그 입지를 굳혔다. 북괴군이 치밀한 계산 하에 일으킨 두 번의 서해교전에 웬 봄빛이 비추더니, 언젠가 밝은 세상이 오면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와 나란히 교과서에 실릴 여섯 영웅은 일제가 대한의 두 의사를 기억의 저편으로 보냈듯이 7천만 민족의 기억에서 아스라이 사라졌다. 이를 지켜보던 70만 군대의 66%가 아예 주적(主敵)을 바꿔 버렸다. 대한민국의 천리장성이 반 이상 허물어졌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방패와 창인 국군마저 친북좌파에게 넘어갔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유라시아에서 북한 외에는 모든 공산국가가 자본주의에 슬그머니 동서남북 4대문을 열어준 지가 언젠데, 왜 세계 10대 시장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마르크스와 스탈린과 김일성의 유령이 득의의 미소를 띠고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문민 출신의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더 이상 '군부독재'를 내세울 수 없게 된 주사파가 전대협의 깃발을 내리고 한총련의 깃발을 내걸고, 차곡차곡 그 힘을 비축하여 1996년 연세대에서 광란의 밤을 보낼 때만 해도 다들 1960년대의 일본 적군파처럼 철부지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 여기도 운동권 저기도 운동권 동서남북에 온통 운동권이다. 그들은 백바지, 청바지, 나비넥타이, 개량한복 등으로 갈아입고 대한민국의 어깨에 올라타서 채찍을 휘둘러 멸망의 구렁텅이를 향해 씩씩하게 달려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째는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번 것은 전혀 없으면서 반찬 투정하고 떼쓰는 데는 프로인 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을 그대로 간직하고서 줄기장창 불만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프랭클린과 트루먼이 선사하고 한국의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가 감사히 받아서 노심초사 키운 자유와 풍요를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서도, 왜 프랑스만큼 스웨덴만큼 만들지 못했느냐고, 북한에 태어났거나 북한으로 넘어갔으면 한 달에 10달러도 못 벌고 불평불만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할 자들이 마치 자유는 제 가문의 피 말리는 독립운동과 본인의 피 끓는 데모로 쟁취하고 풍요는 하늘에서 절로 떨어진 것처럼 대한민국과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에 조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1%의 진실만 있으면 그것을 기초로 하여 거짓말의 성(城)과 누각을 짓는 데 프로인 자들이 처음에는 토론과 금서, 다음에는 시위, 다음에는 선거, 다음에는 방송을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20세기말과 21세기초를 [1984년]의 나라로 만드는 데 거의 성공했기 때문이다. 불과 한 시간 후에 들통날 것도 그 자리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천지신명에 맹세코 능청스레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은 그 때마다 속아 넘어갔다. 마침내 3대 의혹 사건이 3대 거짓말 작전이었음이 물증에 근거한 법원의 판결에 의해 드러남으로써 친북좌파의 거짓말 솜씨가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이제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문화권력마저 이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은 동해에 돌멩이 던지듯이 아무런 파장이 없다.
셋째는 파렴치하기 때문이다.
거짓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당한 놈이 바보!
그들의 표정을 보고 행동을 보면 오히려 고소해 하고 득의만면해 하면서 양극화 해소, 부동산 투기 근절, 헌법개정, 민족화해 등의 새로운 거짓말을 양산하거나 심화발전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넷째는 반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옛 공산권에는 자본주의 후진국 정도의 자유도 없었을 뿐 아니라 봉건사회 정도의 평등도 없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마르크스교를 김일성교로 이름만 살짝 바꾸어 민족과 정통성과 진보와 평화를 제 멋대로 해석해서 젊은 날의 과오를 끝내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김씨공산왕조가 나치나 일제보다 간악하고 흉악하다는 것을 그들도 이미 다 알게 되었지만, 그 원인을, 스탈린이 강요한 분단체제에서 분단이라는 말만 따와서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며, 온통 미국과 대한민국에 덮어씌움으로써 거짓과 폭력으로 부귀영화를 독차지하는 북한의 공산독재에 맞장구침으로써 친북좌파가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찬탄하는 대기업도 이들에게 걸리면 내놓고 또 내놓아야 한다. [노인과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내놓고 또 내놓아야 한다. 1%의 진실로 99%의 거짓을 언제든지 대량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내놓고 또 내놓아야 한다. 상류층이든 중산층이든 빈곤층이든 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직접세로 또는 간접세로 또는 준조세로 내놓고 또 내놓아야 한다. 조선시대 중기 이래로 한국인이 권력에 무한히 약하다는 것을 알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전 주민을 거지와 깡패와 아첨꾼으로 만든 것을 벤치마킹이라도 한 듯 제멋대로 민주와 진보와 평등과 민족과 평화와 통일을 독과점하여 이에 이의를 다는 자는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의 채찍을 휘둘러 만신창이로 만든다.
거짓이 언제까지나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길게는 70년, 짧게는 40년, 철옹성같이 쌓아놓았던 공산국가의 거짓말이 무너질 때는 단 한 방의 총도 필요 없었다. 1%의 진실 위에 쌓아올린 99% 거짓말 성은 사상누각이기 때문에 가만 두어도 어느 순간 임계치에 도달하면 절로 무너진다. 따라서 그들의 거짓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
북핵과 북한인권, 위조지폐, 마약 등이 서서히 그 진실의 리바이어던(Leviathan) 몸을 드러내고 있다. 거북이보다 느린 걸음걸이지만, 그 입에는 용의 불이 머금어 있고 그 손에는 제우스의 번개가 들려 있다.
이에 한국에서도 뉴라이트 등이 나와 친북좌파의 어두운 과거를 낱낱이 증언하고 있다. 김대업과 설훈 등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국민정서법을 헌법보다 우선하는 사법부이지만 어쩔 수 없는 물증 때문에 양심에 따라 땅땅 정의의 봉을 내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친북좌파가 60년 동안 쌓아올린 거짓의 성이 밑뿌리부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큰 희생이 없이는 남북의 거짓말쟁이들이 반의 반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을 감싸고 있는 이 칠흑 같은 어둠이 한밤중의 그것이 아니라 새벽 직전의 그것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1%의 진실 위에 세운 남북의 99% 거짓 철옹성이 처참하게 무너질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누가 있어, 일제가 그렇게 벚꽃이 지듯이 일시에 패망할 줄 알았으랴!
(2006. 2.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