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교회와 한국 교육부의 공통점

교육 개혁에 관한, 한 작은 목소리(8): 이 두 집단은 일반 국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렵고 고상한 말을 골라 쓴다.
서양 중세교회와 한국 교육부의 공통점

[중세 서구 교회와 현대 한국 교육부의 유사점]

중세 교회와 한국의 교육부가 가장 닮은 점은 '권위주의'이다. 권위주의는 '절대 권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들은 절대로 상대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 권력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는 절대 가치를 지니는 법이다.
이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으면 권위에 대한 도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자로 낙인찍힌다. 이에서 조금 더 나가면 마녀로 찍힌다.

권위주의자의 공통점은 자기가 절대 권력을 지녔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말을 가끔 스치듯 듣지만, 그 때는 너무나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사람 좋은 해맑은 웃음을 띤다. 말할 필요가 없이 자기는 인자한 자라는 걸 보여 준다. 아니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힘도 없는 어린이, 순진무구한 자라는 걸 웃음과 행동거지로 보여 준다. 특히 개인적으로 만나면 더욱 그러하다. 꼭 아버지 같고 아저씨 같고 형님 같다. 꼭 어머니 같고 이모 같고 누나 같다.

그러나 권좌에 앉아 한 말씀할 때, 그 말씀을 집행할 때 그들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일요일에 교회서 기도할지라'라고 말하면, 누구도 예외가 없다.
'내신을 40% 이상 반영하라. 학교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단 한 학교도 예외가 없다.

서양의 중세 교회와 한국의 교육부 사이의 공통점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몇 개 더 들어보자.
그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권위를 배경으로 가진다.
'성경에 의하면 엿새 일하고 하루는 쉬라고 했나니, 하나님도 그러하셨다.'
'민주주의 경전에 의하면 모든 학교는 평등하느니라. 약간의 학력 차이로 학교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평등의 지엄한 원리를 깨는 일인지고. 인간은 다른 점이 무수히 많으니만큼 지극히 부분적인 것만으로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일이네라.'

중세 서양인들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평등을 반대할 수 없었고 교육 민주화에 역행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현실을 하찮게 여겨서 이를 거의 무시한다는 점도 닮았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어렵느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 생각만 하는 자는 천국에서 더 이상 받을 게 없느니라.'
'학교 수업만 충실하게 받은 학생은 누구나 맞출 수 있는 문제를 냈노라. 이러한 데도 점수 몇 점 더 받으려고 자식에게 불법 과외 시키는 사람은 과연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개인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법은 언제든지 어길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가르치지 않는가.'

가난한 사람일수록 양심을 지키려고 무리하게 헌금을 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정부 말을 잘 들어서 학교 공부만 충실히 시킨다. 결과는 부의 세습이요, 지식의 세습이다. 가난하고 양심 바른 사람만 손해 본다.

현실을 하찮게 여기는 자는 현실에 위기가 닥치면 전혀 이에 대처하지 못하고 고상한 말만 하면서 허둥지둥하다가 어린 양떼를 이리의 무리에게 다 빼앗기는 법이다. 중세에 흑사병이 돌 때, 교회가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자기만 믿으라고 강요하다가 애꿎은 사람들을 무수히 죽였듯이, 한국에 교육 위기, 교실 붕괴가 누구 눈에도 분명해지자 교육부는 허둥지둥 갈팡질팡 무수히 많은 학생들을 멀쩡한 바보로 만들고 있다.

많은 실업계 고등학교는 아예 교육 포기다. 한 반에 겨우 정원이 30명인데, 1교시에 10명, 2교시에 12명, 3교시에 두 명 나가고 다섯 명 들어와서 15명, 4교시에 한 명 가고 한 명 와서 15명, 5교시 되어야 간신히 20명 정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담임의 제일 큰 업무는 출석부 정리이다. 이게 인문계까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교육부가 기껏 하는 소리는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 실업계가 죽어 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실업계 나오면 대학 가기가 더 쉽다.
2002학년도부터는 대학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보다 많아진다. 이제야말로 전인 교육을 할 때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획기적으로 고칠 시기가 드디어 왔다.

중세의 바티칸이나 현대 한국의 교육부나 일반 교인이나 일반 국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렵고 고상한 말을 골라 하는 것도 흡사하다.
사제들은 언제나 성경을 라틴어로 낭송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일시 도취되어 스스로 천사가 되어 낭랑하게 거룩한 말씀을 읊조렸다.
시정잡배가 쓰는 말로 거룩한 성경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 성령의 인도함으로 신도들은 다 이해한다고 굳게 믿었다.

교육 개혁을 들고 나올 때마다 교육부 장관과 그 아래 교육학자나 교육부 관리들은 교육 선진국의 아름다운 교육 이론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무식한 국민을 상대로 하느라고 원어로 이야기 못하는 게 아쉽기 그지없다. 일반 서민들이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제발 이번만은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일선 교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공부 좀 하라고 은근히 핀잔을 준다. 즉시 공문, 공문, 공문을 끝없이 내려보낸다.

중세의 바티칸이나 현대 한국의 교육부가 돈 되는 일도 없는데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한다는 것도 참 많이 닮았다. 속세의 왕실이나 한국의 경제부처 등 다른 행정부와는 달리 중세의 바티칸이나 한국의 교육부는 권세만 막강할 뿐 돈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성스러운 교회 업무와 성스러운 교육 사업을 하느라 그들은 눈코 뜰 새 없다. 종교와 교육은 둘 다 성직(聖職)이다.

교육청의 장학사와 장학관에 이르면 이건 숫제 사람이 아니다. 초인(superman)이다. 집에 가서 겨우 쪽잠만 잘 뿐이다. 교감, 교장이 되기 위해서 그 고난을 참을 수밖에 없다. 파탄 직전인 가정이 그 때는 다시 회복되리라 믿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이 하는 일이 말짱 '헛일'이라는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 90%이다. 서민들이 가는 마을 교회나 일선 학교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예배 드리러 가면 중세 교회의 신부는 할당된 성전 건립 헌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난한 서민들의 양심을 콕콕 찔렀다.

일선 교사 중 담임을 맡은 이, 그에 더하여 학교의 중책을 맡은 이는 90%가 쓰레기인 서류를 예쁘게 정리하여 기안하느라고 교재 연구할 수가 없다. 허겁지겁 수업 들어가기에 정신없다. 수업을 잘하려면 밤을 샐 수밖에 없다. 양심이 콕콕 찔린다. 매일 밤을 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 엄청나게 많이 만든 새 서류가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한 무더기로 쓸어 담아 즉시 예전에는 난지도로 지금은 김포 쓰레기 매립지로 실려 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또 다시 새로운 공문을 만들어 보내기에 바쁘다. 오로지 일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을 할 뿐이다.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교육부와 교육청은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 놀고먹는 게 아니라고 자위한다. 이건 마치 멀쩡한 땅을 여기저기 끝없이 팠다가 묻었다가 팠다가 묻었다가 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거기 나무 한 그루 안 심는다. 생산이 있을 리 없다. 그러면서도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말짱 '헛고생'이다. 일선 학교를 괴롭히는 일만 골라 한다. 수업 못하게 방해만 할 뿐이다.
(2000. 3. 2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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