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정일 앞에만 서면 작아집니까?

육군중장에게 육군병장이 드리는 공개장 육군병장이 육군중장 님께 드리는 공개장(제13신)

천용택 장군님! 지난번 제1신(2006년2월17일자 55582번)에 이어 제2신(2006년2월18일자 55644번)과 제3신(2006년2월21일자 55786번), 제4신(2006년3월8일자 56518번), 제5신(2006년3월13일자 56732번), 제6신(2006년3월16일자 56886번), 제7신(2006년3월17일자 56957번), 제8신(2006년3월18일자 56996번), 제9신(2006년3월21일자 57142번), 제10신(2006년3월24일자 57346번), 제11신(2006년3월27일자 57442번), 제12신(2006년3월30일자 57650번)까지 공개장을 드렸는데, 오늘은 좀 부드러운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好歌唱唱不好(좋은 노래도 부르고 또 부르면 좋지 않다)”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他國) 땅에서 오래 살다보니 그러한지 우리 가요(歌謠)를 들으면 눈물날 정도로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1990년대 초에 김수희(金秀姬)씨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 「애모(한자로 쓴다면 아마 愛慕?)」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합니다. 노랫말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을 뿐만 아니라 김씨의 호소력이 뛰어난 가창력(歌唱力) 또한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으니까요. 잘 아시겠지만 우선 노랫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너머 우리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 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 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 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요”

노랫말이 참 좋지요? 아주 호소력이 있지요? 한때는 일부 지식인 입네 하는 사람들에게 건방기가 잔뜩 들어 우리 가요를 “뽕짝”이네 “트로트”네 하며 백안시(白眼視)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정서(情緖)에 맞는 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척 좋아합니다.

제 동갑네들 중에 약간 늦게 입대(1942년 생들은 1963년 1월 31일에 첫 입대)한 친구들이 맹호부대 일진으로 월남에 갈 때(1965년)에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당시 웬 영문인지 방송금지곡(放送禁止曲)이 되었던 이미자(李美子)씨가 부른 「동백아가씨」를 목이 터지도록 부르기도 했습니다. 「동백아가씨」는 한동안 파월장병(派越將兵)들의 애창곡(愛唱曲)이었지요. 지금은 방송금지곡이라는 것이 없어져 어떤 노래든 방송에 다 나오므로 우리 가요를 방송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들을 수 있어 좋더군요.

「애모」의 노랫말 중에서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할 나는 당신의 여자”를 한국의 좌파(左派)와 천용택 장군님께서 “햇볕정책”을 시행하며 그대로 행동에 옮긴 듯한데, 이제부터 자초지종을 말씀드려 볼까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구절을 빌어 천용택 장군님과 한국의 좌파(左派)들에게 묻습니다. “북한(김정일) 앞에만 서면 천용택 장군님과 한국의 좌파들은 왜 작아지는가?” 막상 지적 당하고 나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저는 「애모」의 이 노랫말을 한국의 모든 남성들이 아내에게 바쳐야할 헌사(獻辭)라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위정자(爲政者)란 자기를 뽑아준 “국민 앞에만 서면 작아져야지”하는데, 한국의 좌파(左派) 집권자들은 국민 앞에서는 커지고 북한 김정일 일당들 앞에서는 날로 작아지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될 말입니까? 분명히 안 될 말이지요?

“그대 등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할 나는 당신의 여자” 또한 “햇볕정책”에서 비롯된 대북(對北) 저자세와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하루 세끼 밥도 해결 못하는 북한의 등이야 너무 작아서 등뒤에 서고 말 것도 없지 않습니까? 북한 김정일 일당의 만행(蠻行)이 드러날 때마다 침묵 또는 대변인이라도 된 듯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좌파정부의 철면피(鐵面皮)한 행동은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기본 양심(良心)조차도 저버린 행위가 아니었습니까?

북한 인권문제에는 한없는 인내를 보이면서 미국정부가 달러위조문제를 제기하자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즉각 반응을 보였지요? 미국정부에서 증거를 가지고 내한하자 이번엔 역시 침묵으로 일관하더군요. 좌파의 속성이란 게 워낙 철면피(鐵面皮)한 것이라 지만 북한 위조달러문제에 대해 좌파정권이 한 짓은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며느리가 더 미운” 격이 아니었습니까?

고생하는 동족(同族)에 대한 연민(憐憫, 불쌍하고 가련함)의 정(情) 때문에 침묵하고 변명에 나섰다고 할지 몰라도 북한에서 고생하는 건 김정일을 두목으로 하는 공산도당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그들의 말 대로라면 인민)이므로 잘못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김정일의 등뒤에 서서 눈물을 찔끔대거나, 그들 때문에 침묵한 것은” 중대한 과오(過誤)이지요. 소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분들이 불특정 다수(국민)를 상대로 “도청(盜聽)질”이나 해댔습니까?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도청(盜聽)질을 했으니, 이런 경우를 두고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태(作態)였지요? 천용택 장군님의 후임자와 부하직원이 재판에 계류되어 있지요?

대한민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북한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강성대국 운운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름》이지요. 경제력을 바탕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그리고 2002월드컵도 성대하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한창 경제개발을 위해 정신없이 뛰고 달리던 시절 우리는 유치(개최)확정됐던 제6회(1970년) 아시안게임을 반환하여 국제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다행히 제5회 대회(1966년)를 개최했던 태국 방콕에서 연달아 개최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아시안게임을 중단시키는 망신을 당할 번했던 우리나라가 그 후 국력(경제력)을 크게 신장시켜 이제는 동계올림픽을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국제대회를 모두 성대하게 개최하였습니다. 이런 국제행사는 국력(경제력)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그런 대단한 대한민국이 어찌 “북한(김정일) 앞에만 서면 왜 작아져야 합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어린아이 예쁘다고 오냐오냐하다가 수염까지 뽑히고” 있는 게 오늘날 대북(對北) 정책(政策)의 결과가 아닙니까? 책임을 통감하고 석고대죄(席藁待罪)해야 할 분이 뻔뻔스럽게 재향군인회장에 출마하겠다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므로 지금까지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천용택 장군님이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수염 뽑히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나라까지 바치는 일은 없어야할 게 아닙니까?

중화인민공화국을 보십시오. 제 몸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북한에 대해 이따금 동냥 주듯 경제원조를 제공하면서 “죽지도 못하게, 살지도 못하게”하면서 후견자역학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봉건시대(封建時代)에 종주국(宗主國)이 제후국(諸侯國)에 대해 했던 통치기법(統治技法)을 그대로 원용(援用)하며 분단상황을 오래오래 유지해 나가는 게 전통적인 중국의 한반도 외교정책 실상이지 않습니까?

지금 중국은 국경지역에 정예군 15만 명을 전진배치하고 압록강 도하(渡河)훈련까지 하며 힘을 과시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지요? 자국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한반도의 분단현상을 고착화(固着化)·영구화(永久化)하여 한반도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완충지대(緩衝地帶)로 써먹으려는 중국의 원모심모(遠謀深謀)를 잘 알고 계시지요? 모르신다면 전임(前任) 국정원장으로서 체면이 안 서지요. 중화인민공화국은 19세기말까지 조공국(朝貢國)이었던 조선왕국(朝鮮王國)을 대하듯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후견(後見)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조공체제(朝貢體制)였던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조선이 1897년 10월 12일 원구단(圜丘壇, 일명 皇壇. 지금 조선호텔 서편에 있음)에서 거행한 대한제국 황제즉위식(皇帝卽位式)을 전후하여 이른바 칭제건원(稱帝建元, 임금을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완전한 독립국가임을 선포)절차를 완료하면서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조약체제(條約體制)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아시지요?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8·15광복이후 소련의 후견을 받다가 6·25사변 때에 팽덕회(彭德懷)가 이끄는 중공군《중국측 표현으로는 항미원조군(抗美援助軍)》이 참전하면서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지요? 구소련(舊蘇聯)이 경제난으로 허덕이며 자신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김일성은 급격히 중국측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저간(這間)의 사정은 잘 아시지요?

중국이 등소평(鄧小平)의 개혁과 개방이전에는 자신들도 살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옥수수가루와 석유를 “죽지 못할”만큼씩 원조해주다가 경제력이 점점 강해지자 “죽지도 못하게, 살지도 못하게” 수준으로 원조규모를 조금 늘렸지요. 노회(老獪)한 중국지도자들이 “잘 살게” 만들어주면(많이 원조해주면) 흥청망청하며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을 터이니까 「국민의 정부」처럼 무식하게 뭉떵 뭉떵 실어다 주지는 않았지요.

천용택 장군님 「국민의 정부」 등장과 함께 시행한 “햇볕정책”을 겸허하게 돌아보세요. 무작정(또는 무식하게) “퍼주기”를 감행하다보니 얼마나 버르장머리가 나빠졌습니까? 브레이크 없는 전차(戰車, 탱크)가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아시안게임 반환성명을 발표했던 장기영(張基榮)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1964. 6.~1967. 10.)에게 당시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는 진퇴(進退)를 알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은 그런 걸 아랑곳하지 않는 몰염치한 자들이었는데,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퍼주기”로 기(氣)를 길러주다 보니 “대한민국 좌파정부 앞에만 서면 자신이 거인(巨人)”이라도 된 듯 착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깊고도 한없는 반성을 촉구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祈願)합니다.

2006년 04월 02일 도이칠란트 본에서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병장 金學培 드림
E-mail∶hong-se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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