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노예 할아버지와 60년 노예 동포

그러나 60년 노예 동포 2천만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양심이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다. 왜? 그 누구도 생방송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50년 노예 할아버지와 60년 노예 동포

노예 할아버지가 장안의 화제다. SBS가 5월 2일 ‘현대판 노예-할아버지의 짓밟힌 50년’을 방영한 이후, 전국이 분노의 바다로 변했다. 머슴으로 들어간 청년 이흥규는 대를 이어 50년간 종살이를 강요당했다고 한다. 일 기계인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개밥과 폭언과 폭행과 넝마와 헛간이었을 뿐이다. 식모가 사라진 지가 까마득 옛날인 나라에서, 소작인이 부재지주의 땅을 골라서 기업영농하는 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도 한 달에 100만 원을 우습게 버는 나라에서, 한 푼의 임금을 받기는커녕 국가에서 지급되는 매달 30여만 원의 생계비마저 주인에게 원천징수 당한 72세의 노예 할아버지가 스스로 인간임을 잊고 생존본능 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전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다행히 서울방송 덕분에 50년 후에나마 정의의 분노가 폭발하고 온정의 봇물이 터져서 이흥규 옹은 인간의 삶을 되찾게 되었다.

이흥규 옹보다 결코 낫지 않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무려 2천만에 달하는 그들이 60년간 대를 이어 노예 생활을 강요당하면서도 한 줄기 햇빛도 훔쳐보지 못한다면, 이런 참극을 노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었듯이 위대한 서울방송이, 또는 죄 많은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긴급출동하여 있는 그대로 전국에 생중계한다면,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인정이 넘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방송은커녕 대한민국의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은, 탈출자의 한결같은 증언과 인공위성의 사진과 휴대폰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천만 노예 주인이 동서남북에 쳐놓은 고압 철조망을 절대 건들지 않고 그 근처에도 가지 않고 2세 노예 주인이 이따금 열어 주는 뒷문과 쪽문과 개구멍으로, 2세 노예 주인이 원하는 사람들과 물자를 부지런히 들여보낼 따름이다. 방송과 사진과 말과 글도 오로지 2세 노예 주인이 보여 주고 싶고 들려 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 주고 들려 줄 따름이다.

보다 못한 대한민국의 인정 많은 사촌들이, 세계의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2천만 노예를 구출하자고 목이 터져라 외치면, 대한민국의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은 펄쩍 뛴다. 발작하듯이 언성을 높이고 꼿꼿이 집게손가락을 세워 당장이라도 그 눈들을 찌를 듯이 내뻗는다. 별의별 구실을 갖다 붙여서 2세 노예 주인의 친척과 그 친구들이 50년 노예 할아버지에 대한 현장 취재를 가로막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 천만 다행으로 대한민국에는 50년 노예 할아버지의 생방송을 아무도 가로막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양심이 아침햇살처럼 빛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60년 노예 동포 2천만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양심이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다. 왜? 그 누구도 생방송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2세 노예 주인 몰래 현장취재하여 신문과 포털에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송과 신문과 포털이 침묵하고 침묵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대한민국에만 가지 마시고 북조선에도 오소서! 요덕에도 오소서!”
전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유지되고 있는 강제수용소의 생생한 체험을 노래와 춤으로 보여 주어도 여당 의원과 정부 각료는 단 한 명 보러 가지 않았다. 어떻게 단 한 명도 가지 않을 수 있을까? 2천만의 2세 노예 주인이 그렇게도 무서운가. 아니면, 그렇게도 좋은가. 그도 저도 아니면, 억누르고 억눌렀던 양심이 태양이 폭발하듯이 터질 것이 두려운가.

50년 노예 할아버지는 임금을 한 푼도 못 받았다. 60년 노예 동포 2천만은 임금을 한 푼도 아니 받는 것보다 못하다. 노예 할아버지는 임금은 못 받아도 최소한 일할 수 있을 만큼은 먹었지만, 60년 노예 동포 2천만은 허리가 부러지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도 아닌 돈으로 일주일치의 양식도 못 산다. 그래서 3백만이 굶어 죽었다. 2천3백만 인구가 2천만으로 줄었다.

50년 노예 할아버지는 국가서 주는 최저생계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 60년 노예 동포 2천만도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답지하는 달러를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북한의 배와 트럭을 총동원해도 도저히 실어 나를 수 없는 식량과 북한의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다 많은 달러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갔지만, 관광이다, 경수로사업이다, 공단이다, 하여 북한 노동자 임금의 50배 내지 100배가 흘러들어갔지만, 60년 노예 동포 2천만은 식량은 시장에서 사 먹어야 하고 월급은 화폐가치가 매년 10분의 1로 떨어지는 북한 돈으로 다른 노동자와 ‘평등하게’ 받을 따름이다. 달러 환산 1달러 내지 2달러를 받을 따름이다. 이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일반 노동자보다 많이 받는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 홍보하고 반박한다.

50년 노예 할아버지는 평생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다. 60년 노예 동포 2천만도 평생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면 돈을 내야 하고 돈이 없으면 말 그대로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50년 노예 할아버지는 노예 주인을 대를 이어 신처럼 받들어야 했다. 60년 노예 동포 2천만도 노예 주인을 대를 이어 신처럼 받들어야 한다. 50년 노예 할아버지는 주인을 신처럼 받들었지만, 식사 때마다 노예 주인에게 감사 기도하고 밤낮으로 그 초상에 먼지 한 올 앉지 못하게 조심하면서 절을 한 적은 없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다. 세계제일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날마다 찬양하고 노래하고 춤춘 적도 없다. 때로는 방긋방긋 웃으며 때로는 씩씩하게 걸으며 사람들에게 노예 주인을 자랑한 적도 없다. 1세 노예 주인이 죽었다고 3년 상을 치르고 날마다 곡하고 날마다 산과 들의 꽃을 꺾어 바친 적도 없다. 그러나 60년 노예 동포 2천만은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러다가 3백만이 굶어 죽었다.

50년 노예 할아버지는 밤이 되면 불빛 하나 없는 헛간에 틀어박혀야 했다. 60년 노예 동포 2천만도 밤만 되면 전깃불도 없고 수돗물도 안 나오고 난방도 안 되고 냉방도 안 되는 헛간 같은 방에서 오로지 희망의 나라, 꿈의 나라로 가야 한다.

요덕수용소가 아니더라도 60년 노예 동포 2천만이 연명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무런 멘트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50년 노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었듯이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만 하면, 인정 많고 정의감 넘치고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 하느라 정신없고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여 경찰과 군인도 두들겨 패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심이 긴 최면에서 깨어나 눈물로 강을 넘쳐 흘리고 분노로 바다를 메울 것이다. 60년 노예 동포 2천만을 한 달 이내로 해방하고 비몽사몽 구렁텅이로 빠져가는 대한민국을 극적으로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200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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